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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 봄에 읽는 동시

by 데일리아트 Mar 18. 2025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습니다


벚꽃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봄이 온다더니 아직 한차례 추위가 남아있단다. 다시 두꺼운 옷을 꺼낸다. 아, 봄 향기를 맡을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봄을 애타게 기다리며 정두리 시인의 동시를 떠올린다.


"저녁밥 반만 먹고 / 밤하늘 쳐다보고 // 뉴스 시간 아닌데도 / 텔레비전 틀어 보고 // 날 샜나 / 자다 깨 보니 / 한밤중 별만 총총. // 빠진 것 혹시 없나 / 배낭 다시 열어보고 // 늦잠 잘까 두려워서 / 탁상시계 맞춰놓고 // 꿈속에 / 미리 간 소풍 / 알밤 주워 옵니다." (정두리, 「소풍 전날 밤」 전문)


지난 글에선 ‘시’를 통해 봄을 불렀다. 봄은 어떻게 다가왔나. 향기롭게 다가왔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만족할 수 없다. 기왕 힘껏 불러본 봄을 ‘오감’으로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엔 ‘동시’를 통해 봄을 불러본다. 봄은 어떻게 다가올까. 잠든 당신의 어린아이를 깨우러 떠들썩하게 올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풀꽃」)


나태주 시인이 유퀴즈에 출연해 이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시는 나태주 시인이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 썼다. 시인은 어느 봄볕 좋은 날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민들레꽃, 제비꽃과 같은 풀꽃들을 그리게 했다. 아이들은 빨리 숙제를 끝내고 싶었는지 풀꽃들을 '너무 안 닮게, 대충'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그러면 예쁘고 사랑스럽다. 누가 가꾸는 사람도 없고, 흔하고,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지도 않고, 그저 그런 (꽃일지라도)"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만약 마지막에 내가 나만 그렇다고 했으면 여기 못 왔지" 


당신 옆의 사람을 한번 자세히 바라보라. 풀꽃도 자세히 보면 사랑스러운데, 사람은 자세히 보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사랑하고 싶어질까.

꽃 사진 /출처: 천리포수목원 


꽃은


손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꽃은


발도 없다


그러나


산을 넘어


먼 곳까지 잘도 간다


(이봉춘, 「꽃」)


손이 없고, 발이 없는 꽃. 그러나 꽃은 먼 곳까지 잘도 간다. 심지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어떻게? 다가오는 꿀벌에게, 바람에, 산짐승에게 씨앗을 내주면서. 그렇게 꽃은 산을 넘어서 우리에게까지 왔다. 이제 꽃은 당신에게 씨앗을 맡긴다. 다시 한번 산을 넘어보고 싶다고. 아름다운 꽃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어서 힘을 보태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자. 문자를 남기자.

시냇물 사진 /출처: 브라보마이라이프 


겨우내


시냇물과 조약돌


말 안하고 지내다 


어느 날부턴가


쉬지 않고 도란거리는 걸 보면


겨우내


옷 벗은 미루나무에 


잠시 눈길도 주지 않고


씩씩 지나치던 바람 


미루나무 연초록 잎새에 매달려


온종일 반짝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집 앞


산수유나무를 시작으로


꽃들


다투어 피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상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겨우내 침묵하던 이들이 갑자기 사랑의 언어를 쏟아내는 이유가 뭘까. 그건 봄이 왔기 때문이지. 봄이 오니까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법에 걸린 것일 테다. 봄은 이토록 사랑스럽다. 그리고 이를 간파해 낸 어린아이의 또한 사랑스럽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민하던 어린아이는 엄마에게 뛰어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겠지.


"엄마 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 엄마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꼭 안아주겠지. 아이는 엄마 품에 행복하게 안겨 방긋 웃겠지. 봄과 함께.

김종상 시인의 동시선집 /출처: 교보문고 


꽃이 되고 싶어


예쁜 옷을 고른다. 


꽃이 되고 싶어


곱게 화장을 한다. 


꽃이 되고 싶어


좋은 향수 뿌린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여쁜 꽃이고 싶다.


(김종상,「꽃」)


꽃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우리는 모두 꽃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예쁜 옷을 산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되고 싶은 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꽃은 무얼 하나. 사람을 기다리지. 누구를? 자신에게 다가와 향기를 맡아줄 사람을. 당신, 꽃이 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꽃처럼 예쁘게 앉아서 사람을 불러보자. 내 향기를 맡아 줄 사랑하는 사람을. 혹 아무도 안 온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당신이 먼저 찾아가 주위를 온통 꽃밭으로 만들면 된다. 그들을 향해 나태주 시인을 따라

"너도 그렇다"고 속삭여 보자.

아름답게 핀 벚꽃 /출처 : kg 모빌리티 


"문 열어 주세요."


냉이꽃이 똑똑똑


텃밭 한 귀퉁이가 밝아 온다.


제비꽃이 똑똑똑


개구리들도 문을 열고 나온다.


할미꽃이 똑똑똑


할머니께 봄 인사를 한다.


냉이꽃 제비꽃 


내가 지나갈 때마다


까딱까딱 봄 인사를 한다. 


(신새별,꽃들의 노크)


시를 읽고 꽃들이 노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 여린 몸으로 '똑똑똑' 소리를 내기 위해 몸을 힘껏 기울일 테지. 그리고 그 기울인 몸이 닿는 곳마다 문을 활짝 열어주겠지. 내가 있는 곳은 언제나 꽃들이 몸을 기울이는 그곳이면 좋겠다. 당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면 무척 좋겠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동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린 모두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때는 봄을 보며 이런 아름다운 생각을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 봄에 읽는 동시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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