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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16]

by 데일리아트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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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동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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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동길


정동길은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의 왼편에서 시작되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 사거리를 지나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가수 이문세의 노랫말에서도 등장하는 정동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걷고 싶은 길이다. 이 길의 역사가 만만치 않다. 원래 정동에는 사랑과 권력으로 인한 미움의 스토리가 전해져 온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결정하고 개경에서 내려올때, 함께한 부인이 신덕왕후 강씨, 그의 두번째 부인이다. 이성계가 강씨를 얼마나 사랑했는 지는 세자 책봉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세자 책봉 과정에서 조선 건국에 막대한 공을 세운 첫번째 부인의 소생 이방원으로 세우지 않았다. 두번째 부인의 두번째 아들 방번을 세자로 책봉했다. 이방원과 그의 의붓어머니 신덕왕후 강씨는 왕권을 사이에 두고 다투는 정적관계였다. 그런데 신덕왕후가 병사하자, 태조 이성계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을 현재 정동 언저리 조선일보 근처 즈음에 조성하고 이름을 '정릉'이라했다.


원래 사대문 안에는 무덤을 쓸 수 없다는 원칙을 왕인 이성계 본인이 깬 것이다. 이성계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광화문루에 올라가 무덤을 보며 아내를 그리워했다. 이성계 마저 죽은 후,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죽은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을 현재의 강북구 정릉으로 옮겼다. 무덤에 있던 병풍석과 신장석을 떼어내 다리를 만들어, 백성들이 다리를 밟고 지나 다니게 했다. 그 다리가 청계천의 광통교이고, 정릉 무덤이 있던 이 일대는 정릉이 있던 곳이라하여 '정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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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명과 어울리기라도 한 듯,  가장 걷고 싶은 길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연인들은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1989년까지 이곳에는 서초동으로 이전한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 중에 가정법원이 있었다. 대한문 앞에서 이어지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가정법원에서 이혼 도장을 찍고 나와서 정동교회 앞에서 갈라졌기 때문에 이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와 무색하게 길 양 옆 잘 가꾸어진 느티나무, 단풍나무 가로수 사이로 연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특히 가을에는 고풍스런 분위기가 뿜어내는 정취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과거 대법원 건물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변모해 정동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취를 더해준다.


 덕수궁 궁궐에서부터 시작해서 미술관, 정동교회, 정동극장, 배재공원, 이화여고, 경향신문까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미술관, 역사를 간직한 근대 건축물과 공연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까지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서 모든 낭만의 요소가 겸비한 길이다. 겨울에 눈덮힌 덕수궁 담장,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러시아 공사괁 터를 가면 잊어버렸던 낭만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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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 손자들은 나의 설명을 들으며 둘이서 손깍지를 끼고 흔든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는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며 나도 잠시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젊은 시절에 그리 많지 않았던 데이트 코스였기 때문이다. 지금과 다르게 내가 젊은 시절에는 데이트를하더라도 갈 곳이 많지 않았다. 남산이나 창경원 그리고 이곳 정동길이다.


정동의 역사가 태조 이성계에서 비롯될만큼 길지만, 정동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수교를 맺은 후 1883년에 미국 공사관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미국에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각국의 공사관이 들어서며 이곳은 외교타운이 조성되면서 손탁호텔 등 많은 부대 시설이 들어와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인 거리로 변했다. 고종이 러시아의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이후에 들어선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정치와 외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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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앞 로터리 옆길을 따라 올라가면 1885년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동 길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최초의 근대식 호텔인 손탁 호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교회당인 정동 제일 교회,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 등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닌 장소와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서울 중구의 대표적인 축제 ‘정동야행’은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인 정동길과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펼쳐지는 특별한 야간 프로그램이다. 역사 문화 시설, 덕수궁 안에서 진행되는 고궁 음악회, 근대 역사 체험 프로그램 등을 즐기면서 100년 전 근대의 역사와 문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이국적이고 때로는 정겨운 이 길을 손자들과 나란히 걷는 행복은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 2번 출구를 이용하면 바로 정동길과 연결되고,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16]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정동길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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