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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가면 딱 좋은 곳 ⑦] 잘 늙은 절 화암사

by 데일리아트

영원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 참 잘 늙은 절 한 채"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 「화암사, 내사랑」이라는 시에서 화암사를 '참 잘 늙은 절'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봄이 오는 소리 가득한 참 잘 늙은 절 화암사와 전북특별자치도 생태관광지 싱그랭이 마을에 가보려 합니다. 화암사는 완주군 경천면에 소재하고 있으며 국보인 극락전과 보물인 우화루가 있는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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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우화루


싱그랭이 마을


화암사에 가기 위해서는 싱그랭이 마을을 거쳐야 하는데요. 싱그랭이 마을은 옛날 전주에서 고산을 거쳐 경상도로 가는 길목으로 주막이 있었다고 해요.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들이 주막에서 쉬었다 길을 나서면서 낡은 짚신을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벗어 놓은 낡은 짚신을 나무에 걸어 놓았는데요. 이는 발병 나지 않고 긴 여정을 무사하게 미치길 기원하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요동마을을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신을 걸었다는 의미를 지닌 '신거(新巨)렁이'라고 불렀는데요. 신거렁이가 신거랭이, 싱그랭이로 변했답니다.


옛 교통로 주변에는 사찰이 있었는데요. 전주에서 고산과 용담을 거쳐 경상도권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싱그랭이 마을과 화암사가 있구요. 전주에서 고산을 거쳐 충청권으로 가는 길목에는 안심사가 있으며, 고산에서 금산 가는 길목에는 현재는 폐사된 봉림사가 있었어요. 교통로 옆에 있는 사찰은 불교 도량일 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지금은 도로도 좁고 사람도 많지 않은 시골 마을인데 옛날엔 이곳이 교통의 요지였다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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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랭이 마을 입구에 있는 시무나무와 솟대


시무나무


싱그랭이 마을 입구에는 시무나무와 장승을 보실 수 있는데요. 시무는 우리의 옛말 스무에서 왔고 숫자 20을 의미합니다. 20리마다 심어서 이정표 역할을 했구요. 마을 앞에 있는 시무나무에 봄 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어요. 잎이 적게 피면 흉년을 걱정했지요. 시무나무는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혹은 숲 언저리에서 잘 자라고요. 물속에서도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아요. 수형은 느릅나무랑 비슷하지만, 가시가 있어요. 그래서 한자로는 가시가 있는 느릅나무란 의미로 자유(刺楡)라고 해요. 중국, 우리나라, 몽고 등 동양에서만 자라는 1속 1종만 있는 희귀나무입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시무나무는 자연스럽게 당산목이 되었고,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처인 서낭당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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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랭이 마을 정월 대보름 당산제


5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


시무나무를 지나면 예쁜 돌담과 냇가에 줄지어 있는 느티나무를 만나게 되는데요. 느티나무들은 언뜻 보기에는 냇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심은 호안목(護岸木)으로 보이는데요. 마을 앞산이 홍어처럼 생겼는데, 홍어가 눈을 부릅뜨고 마을을 노려보는 것 같아 마을 사람들은 매우 불편했다고 해요. 그래서 주민들은 홍어가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 앞에 느티나무를 심었답니다. 호안목이 아니라 비보림(裨補林)인 것이지요. 느티나무들 중에 가장 연세가 많으신 나무할아버진는 500살을 훌쩍 넘겼고요. 지금도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당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연화공주 전설


화암사는 바위 위에 핀 꽃이라는 뜻으로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데요. 신라의 어느 왕에게는 유달리 어여쁘고 맘씨 고운 연화라는 딸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화공주가 병이 들어 유명한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었답니다. 사경을 헤매는 공주를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부처님께 기도하는 일뿐이었던 왕은 마음을 다해 불공을 드렸어요. 어느 날,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연꽃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이야기했어요. 잠에서 깬 임금님은 온 나라에 연꽃을 찾으라 명령을 내렸지만, 한겨울에 연꽃을 찾을 방법이 없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깊은 산 바위 위에 연꽃이 피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어요. 임금님은 기뻐하며 연꽃을 가지고 오기 위해 신하들을 보냈는데요. 정말 연꽃이 물속이 아니라 산속에 그것도 바위 위에 피어 있더래요. 신하들은 연꽃을 누가 키우는지 몹시도 궁금하여 숨어서 몰래 연꽃을 지키고 있었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산 아래 연못에 사는 용이 물을 가득 머금고 나타나 연꽃에 물을 주고 돌아가더래요. 용이 키운 연꽃을 먹은 연화공주는 병이 씻은 듯이 나았구요. 부처님 은혜에 감사한 임금님은 연꽃이 있던 바위 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화암사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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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이 영원한 행복인 복수초


영원한 행복 복수초


주차장에서 화암사까지의 산길은 대표적인 복수초 군락지입니다. 겨울에 피는 연꽃이 바로 복수초인데요. 겨울의 끝자락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은 깊은 산 속에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피어나는 복수초는 그 강인한 생명력과 흰색, 노란색의 절묘한 대비로 인해 너무나 아름다운 꽃입니다. 아마도 연화공주가 먹고 병이 나았던 연꽃은 복수초가 아닐까 싶은데요. 완주를 대표하는 생태관광지 싱그랭이 마을의 깃대종이 복수초입니다.


매년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겨울의 끝자락 아직 잔설이 남아 있을 때 화암사에 가시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복수초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복수초 모양이 꼭 황금잔처럼 생겼고, 꽃말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황금잔에 담긴 영원한 행복을 찾으시려면 화암사에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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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오르는 길에 피어 있는 얼레지


완주군 유일의 국보 극락전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인데요.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이 있어서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화암사 극락전은 선조 38년인 1605년에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 건축물입니다. 화암사에는 국보와 보물이 한 점씩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건축물인 극락전은 국보이구요, 꽃비가 내리는 우화루는 보물입니다.


하앙식 기법은 처마를 길게 뽑아내는 기술인데요.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처마를 길게 내밀 수 있게 하는 기술로 대표적 백제 건축기법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근세까지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하앙식 건축법이 백제에서 꽃 피우고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는데요.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의 건축물들이 대부분 소실되어 하앙식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일본학자들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로 전래된 기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요. 1981년 화암사에서 하앙식 기법이 발견되면서 중국전래설이 빛을 잃어버렸답니다. 극락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하앙식 기법이 확인되자마자 바로 국보로 등재되었습니다.


우화루는 정면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후면에서 보면 단층 건물로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경치가 한 폭의 그림입니다. 봄에는 우화루 앞에 있는 커다란 매화나무에 꽃이 피면 이름처럼 꽃비가 내리는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는 노란 단풍잎 비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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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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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하앙식 처마


화암사에서는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 외에도 얼레지, 노루귀, 너도바람꽃이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핍니다. 이맘때가 화암사를 찾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주말 영원한 행복이 담긴 황금잔을 찾아 화암사로 떠나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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