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도 속의 창덕궁 금천교(錦川橋)
우리나라 전통 사찰 서원 궁궐 왕릉 등을 관람하려면 입구에서 흔하게 금천교(禁川橋)라는 돌다리를 만나게 된다. 전통적인 풍수 사상을 반영하여 다리 아래로 명당수를 흘려 자연과 잘 어울리도록 조성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는 궁궐에 입·퇴궐하는 사람들과 임금님의 거둥(거동,이동),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다리의 등으로 받아 내면서 올곧은 마음을 가지고서, 버선발로 즈려밟고 넘나들 수 있도록 거칠고 숨찬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내야 했다. 통상적으로 다리는 이용기능에 치중하여 장식이 별로 없지만 궁궐 대부분의 다리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다.
궁궐의 금천교는 제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경복궁의 영제교(永濟橋),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의 옥천교(玉川橋), 경운궁(덕수궁)의 금천교(禁川橋), 경희궁의 금천교(禁川橋)로 불리고 있다. 금천교 중에서 최초에 만들어진 후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돌다리는 금천교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에는 1410년에 신덕왕후 정릉의 병풍석을 가져다가 청계천의 광통교를 만들었다. 1411년에 세워진 창덕궁 금천교는 궁궐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고 ‘국가 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궁궐을 찾는 관람객들 대부분이 금천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해설사 경우도 시간에 쫓겨 건너뛰기 마련이다. 사실 금천교를 제대로 구경해 보려면 위아래 측면을 입체적으로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창덕궁의 돌다리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임진란, 선조 임금의 의주로의 거둥길 등등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현장에서 쭉 지켜보면서 살아남은 다리다.
창덕궁 금천교 밑을 흐르는 명당수 비단같이 맑고 깨끗하다는 금천(錦川)은 북악산에서 발원한 북영천(北營川)으로 창덕궁 후원의 신선원전 옆을 통과하여 일부를 제외한 전 구간이 도로로 덮힌 지점을 지나 금천교 밑을 통과하여 돈화문 오른쪽에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 청계천에 이른다. 지금은 지하철 공사 및 여러 이유로 물길이 왜곡되어 평소에는 유량이 적어 흐르지 않지만 가끔은 관람객들을 위해 강제로 흘려보내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금호문과 금천교 진선문이 동궐도에서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의 다리의 모습은 그 위치가 북쪽으로 옮겨져 축선이 뒤틀려 보인다. 때문에 금호문을 들어서 금천교에 이르면 진선문을 정면으로 바로 보지 못하고 옆에서 힐끔 쳐다보아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리고 다리 중간 가운데 부분은 위로 약간 부풀려 있게 하여 빗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관람 중 놓치기 쉬운 부분을 꼭 보려면 다리 갓길 중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아야 한다. 홍예(무지개 모양)의 선단석 남쪽에는 백택(해치), 북쪽에는 거북이 모양의 서수가 배치되어 있다. 풍수적으로는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에 해당 된다. 현재 선단석에 서수가 완전체로 남아 있는 금천교는 창덕궁 금천교가 유일하다.
다리 관람의 백미는 다리의 모습을 옆에서 자세히 보아야 한다. 다리는 무지개 모양 홍예(虹蜺)라고 불리는 교각이 두 틀로 위치하고 있다. 두 틀 사이의 벌어진 틈에 세모꼴의 돌로 잠자리 얼굴 모양을 닮은 역삼각형 모양의 청정무사(蜻蜓武砂)석에 도깨비 얼굴이 새겨 배치하고 있는데 무서워 보이기도 하지만 나쁜 기운이나 잡신을 물리치기에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금천교의 하단 백택과 무사석의 도깨비 형상, 멍엣돌 끝부분의 서수(=천록의 머리)
궁궐에는 모든 나쁜 기운과 질병들을 상징적으로 막을 수 있는 상스러운 동물 형상인 ‘서수’를 배치하고 있다. 금천교의 경우 돌다리, 네 귀퉁이 엄지기둥에는 사자 꼬리 모양이 새겨진 「산예」라고 하는 서수가 금호문 쪽을 쳐다보고 입궐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진선문 쪽에서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퇴궐하는 사람들에게 앙증맞은 얼굴로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질병이나 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많이 있어 공중과 지상, 물길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이나 액을 상징적으로 걸러내고자 여러 가지 서수를 배치하였는데 지상으로 들어오는 것은 금천교의 「산예」 물길로 침입하는 「백택(해치)」과 「거북이」 공중으로 들어오는 「잡상」 같은 것을 배치하고 있다.
국가 문화유산의 원형은 주로 화가들에 의하여 그려진 그림을 통하여 유추하여 볼 수 있었으나 1860년대를 기점으로 서양과 일제에 의한 사진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그중에 유리건판 사진이나 조선고적도보 같은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조선고적도보' 상의 금천교와 진선문
2002년에 발간된 창덕궁 금천교 발굴 조사서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 발굴 조사를 했다. 금천교의 원위치는 발굴지에 의하면 현재의 다리 남쪽이라고 추정되며 이전 시기는 “일제강점기라고는 확언할 수 없으나 그 이전 어느 시점에선가 이설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600년이 넘은 금천교는 하루에도 많은 관람객으로 인하여 조금씩 훼손이 되어 가고 있는 실정으로 이제는 보호가 절실해 보인다.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유산으로 남기를 절실히 염원해 본다.
현재 창덕궁 안의 모든 전각들은 기나긴 겨울 내부 깊숙이 바람 한줌 햇볕 한줌 받지 못하고 모진 추위와 풍파를 견뎌 내야 했다. 바야흐로 날씨가 따뜻해져 봄이 무르익어가는 3월 말 궁궐에서는 전각 내부 깊숙이 빛과 바람을 넣어주는 《빛 바람 들이기 행사》가 진행된다. 이때쯤이면 평소에는 전각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많은 문들을 열어 두어서 내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종묘의 정전 수리가 완료되어 정전을 수리하는 기간에 5년 동안 창덕궁 선원전에 모셔둔 위패가 정전으로 되돌아감을 고하는 고유제와 환안제 및 준공 기념식을 155년 만에 4월에 봉행한다고 한다. 이 행사에 시민들을 초대한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정환선의 문화유산 산책 ②] 즈려밟고 넘나드는 금천교(禁川橋)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