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균, 『재재소소』 함께 읽기
김동균 시인의 첫 시집『재재소소』
창가에 앉아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당신은 조용히 그것을 따르고 부드러운 빛이 쏟아졌다. 둘러맨 앞치마가 하얗고 당신의 얼굴이 희고 빛이 나는 곳은 밝고 빛이 없는 곳에서도 우유를 따르고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서 우유를 따르는 그런 사람에게 매일 우유를 따르는 게 지겹진 않나요, 그곳은 고요하고 그곳에서 당신을 계속 지켜보기로 하고
어떤 날엔 TV를 켰는데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출연한다. 책에서도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이 앉아 있는 지면에 부드러운 빛이 쏟아지고 서가가 빛나고 읽던 것을 덮어도 빛나는 창가에서 우유를 따르던 당신이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우유를 마시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차분하게 우유를 따르고 열 번을 쳐다보면 열 잔이 되는 우유가 있다. 실내는 눈부시고 새하얗게 차오르는 잔이 가득해지고
그런데 누가 우유를 옮겨요, 지켜봐도 우유를 옮기는 사람이 없는데 우유를 가져다준 적이 없는데, 당신도 환하고 실내도 환하고 당신이 우유를 계속 따라서 그런 거잖아요. 문밖에서 발목이 젖고 우유가 넘치고
우유가 흐르는 골목이 차갑고 당신은 계속 따를 수 있겠어요, 당신의 손이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김동균, 「우유를 따르는 사람」전문 -
김동균 시인 (출처 : 아침달 공식 블로그)
1. 김동균, 『재재소소』의 시 세계
김동균 시의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대상은 주체와 객체를 넘나든다. 예를 들어 「금붕어」(41p)에서 금붕어는 범람하는 객체이지만, 「금붕어」(42p)에서는 금붕어가 곧 주체가 되어 움직인다. 더 나아가 시인은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비튼다. 「티셔츠」에서 ‘티셔츠’는 ‘바이크가 들어간 티셔츠’로, ‘바이크가 쏟아지는 티셔츠’로 변주된다. 「테니스」에서도 테니스는 경기에서 테니스공뿐만 아니라 소파, 신호등, 수영장이 함께 날아온다. 이처럼 김동균 시의 대상은 사물 고유의 특성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물을 끌어안으며 확장된다.
시집의 제목이 『재재소소』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저곳 또는 여기저기”라는 뜻처럼 시의 화자들은 공간을 옮겨 다닌다. 왜일까? 그가 관찰하는 대상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공간의 왜곡을 만들기 때문이다. 「종활」이라는 시에서 공간의 왜곡을 살펴보자.
“상큼하고 좋은 유자를 고르는 아주머니에게 바구니를 나눠 주고 길쭉한 팔이 바구니마다 있다. 바구니 흔들리고 바구니에서 떨어지고 있다. (중략) 바구니도 없는 사람이 유자나무 아래서 유자를 거두고 있다. 나무가 그를 감추는 것 같다. 이제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시의 공간은 마트에서 유자나무 아래로 단숨에 이동한다. 「휘슬」의 화자처럼 시인도 처음엔 “의자를 옮기고자 합니다” “나경이가”
2. 금붕어 연작
『재재소소』 시집에는 「금붕어」라는 제목의 시가 여럿 나온다. 각각의 시에서 금붕어는 어떤 모습인지 함께 살펴보자.
"수도를 틀면 어김없이 금붕어가 쏟아진다. 금붕어는 너무 많아. 머릿속 금붕어를 개천으로 들고 나간다. // 여기에 쏟으면 안 돼요. 개천이 어지러워지고 있어요. 머리를 꾹꾹 틀어막고 수도를 끝까지 잠가두고 "(「세수」 中)
챗 GPT가 표현한「세수」
「세수」에서는 수도를 틀면 금붕어가 쏟아진다. 시적 주체는 이 난감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가 왜 당황하지 않을까? 그는 금붕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세수에 집중한다. 담담하게 금붕어를 개천에 풀어두고, 공항으로 향한다. 이는 처음으로 범람하는 대상과 마주한 시적 주체의 냉소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공항에서 그는 또다시 다가오는 대상과 마주한다. 이제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우리는 길모퉁이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술 취한 금붕어가 /내게 먼저 말했다. /나에게 금붕어가 있었다. /내게도 금붕어가 있었어. /남산 아래 지나갈 때마다 /극장 앞까지 함께 내려온 /볼 빨간 금붕어가 있었지. /이후에도 내게는 /금붕어가 있었다. /금붕어가 있었다./나랑은 무관하게 /혼자서 말하는 /금붕어가 있었다." (「금붕어」42p 中)
AI 일러스트 (출처 : 미드저니)
「금붕어」(42p)에는 ‘금붕어’라는 대상이 객체와 주체를 넘나들며 사건을 전개한다. 시는 “나에게 금붕어가 있었다.”취한 금붕어” “나에게 금붕어가 있었다.”
"그라프 씨는 금붕어가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야기 속으로 비가 내렸다. 그게 다 수첩에 적혀 있다. 그래서 수첩은 늘 젖어 있고 비가 올 때만 꺼내 쓰고, 그라프씨는 그런 수첩을 아끼는 눈치다. 확실한 건 그라프 씨는 금붕어도 몹시 아낀다는 것. 이야기를 아끼고 금붕어가 나오는 이야기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수첩을 마련한 모양이다. 진종일 비가 내려서 금붕어를 오래 살필 수 있었다. "(「금붕어」46p 中)
AI 일러스트 (출처 : 미드저니)
「금붕어」(46p)에는 그라프 씨가 나온다. 이 금붕어는 그라프 씨의 노트에 있다. 그의 노트 속 금붕어는 움직일 것이다. 견고하게 쓰인 문장 사이를 휘젓고 다니면서 문장을 느슨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느슨해진 문장들은 금붕어를 따라 출렁이며 묘한 리듬감을 만들 것이다. 그라프 씨의 노트 속 금붕어는 시인이 시를 대하는 방식이 아닌지 생각된다. 대상을 마음껏 활개 치도록 내버려두는.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사려면 아주 많은 집을 찾아가 하나하나 다 먹어봐야 하고 케이크 위에는 구운 아몬드. 마카다미아. 호두. 말린 블루베리. 캐슈너트…… 같은 것들이 있다. 밖으로 나가면 빵집과 빵집 또 빵집으로 이어지는 블록이 있고 건너편에서 발견한 네온사인에는 금붕어라고 쓰여 있다. 금붕어는 근방에서 제일 밝고 귀여운 빛을 낸다. 금붕어는 케이크 전문점이다. "(「금붕어」46p 中)
「금붕어」(47p)에서는 금붕어가 비로소 다른 대상이 된다. “네온사인에는 금붕어라고 쓰여 있다. 금붕어는 근방에서 제일 밝고 귀여운 빛을 낸다. 금붕어는 케이크 전문점이다.”
이제 금붕어는 모든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