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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동물 이야기 ③] 백택(白澤) 1

by 데일리아트

-고대 중국에서 탄생한 신령한 동물-


흔히 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현자(賢者)’라고 부른다. ‘성자(聖者)’ 다음 가는 이를 뜻하는 현자는 지식에 능통하며, 이를 통한 올바른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자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계에도 현자가 있다. 바로, 만물의 모든 정보를 꿰뚫어 본다는 ‘백택(白澤)’이다. 사자와 유사한 이미지를 지닌 환상동물 백택은 예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악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게 되었다.


황제의 멘토가 된 현자


중국 청(淸)나라 기록인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는 “백택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고 동망산(東望山)에 산다. 왕의 덕과 총명이 그윽하여 멀리 비추면 출현한다.”라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백택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가장 이른 사례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갈홍(葛洪, 281-341)이 편찬한 『포박자(抱朴子)』로 알려져 있다. 도교 경전인 『포박자』 「극언(極言)」편에는 “귀신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백택의 말을 적어두어야 한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만물의 모든 지식을 지닌 백택이 이승은 물론이요, 저승의 존재인 귀신에 관한 지식까지 해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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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화상석에 표현된 황제(후한대) 화상석으로 표현된 치우(후한대)


그렇다면 귀신을 꿰뚫어 본다는 백택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는 중국 송(宋)나라 때 편찬된 『운급칠점(雲笈七籤)』에 찾아볼 수 있다. 『운급칠점』 「헌원본기(軒轅本紀)」 편에는 백택과 ‘헌원씨(軒轅氏)’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헌원씨란 중국 전설 속 제왕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한 명인 ‘황제(黃帝)’를 말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제가 시찰을 나가 동해에 이르러 항산(桓山)에 올랐는데 바닷가에서 백택(白澤)이라는 신령한 동물을 얻었다. 그는 말에 능하고 세상 만물에 통달하였다. 황제가 백택에게 천하의 귀신에 관해 물어보니 옛날부터 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되고 떠도는 혼(魂)이 변한 것이며 모두 1만 1,520가지에 대해 말하였다. 황제는 그 형상과 글을 기록한 뒤 이를 공포하여 사악한 것들을 쫓아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먼저 편찬된 중국 당(唐)나라의 천문서인 『개원점경(開元占經)』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황제는 세상을 평정하기 위해 전쟁의 신 치우(蚩尤)와 전쟁을 치렀고, 자신을 방해하는 악귀들을 쫓아낼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삼라만상을 꿰뚫는 백택을 만나게 되었고, 귀신에 관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백택이 중국 전설 속 황제에게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벽사의 상징이 된 백택


귀신에 관한 정보를 준 백택은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상징이 된다. 불교 경전인 『법원주림(法苑珠林)』에는 ‘백택도험(白澤圖驗)’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백택도(白澤圖)의 영험함’이라는 뜻이다. 백택도란 『백택정괴도(白澤精怪圖)』라고 불리는 일종의 벽사용 부적인데 다양한 괴물과 귀신 종류를 나열하며 이들을 쫓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여주듯이 『법원주림』 기록에서도 뒷간의 귀신 ‘의(倚)’부터 불의 귀신 ‘필방(必方)’, 나무의 귀신 ‘팽후(彭候)’ 등 수많은 귀신을 열거하며 이를 물리치는 방법이 백택도에 담겨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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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석굴 출토 『백택정괴도(白澤精怪圖)』(당대, 프랑스국립도서관)


이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백택도의 영험함은 『법원주림』 뿐만이 아니라 중국 육조시대의 괴이소설인 『수신기(搜神記)』부터 북송 때 백과사전인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영국국립도서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에는 중국 돈황(燉煌)에서 출토된 『백택정괴도』가 소장되어 있다. 비록, 백택의 모습은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백택이라는 환상동물이 벽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험한 이미지의 환상동물


그렇다면 백택은 어떻게 생겼을까? 중국 원(元)나라 때 문학 도서인 『초각시집(草閣詩集)』에는 기린(麒麟)의 뿔에 자라의 발가락, 용의 몸통에 호랑이 이마를 지녔다고 말하고 있으며, 명(明)나라 때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에는 용의 머리에 푸른 머리칼, 이마에는 뿔이 있고 네 발이 달려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백택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환상동물이기에 그 이미지에 관한 내용이 매우 다양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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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백택기(청대 1725년) 『황조예기도식』백택기(청대 1759년)


중국 미술로 표현되는 백택은 크게 세 가지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첫 번째는 위 기록을 반영된 호랑이와 용이 합쳐진 모습, 두 번째는 발굽 달린 기린의 모습, 마지막 세 번째는 사자 이미지로 표현된 모습이다. 백택은 의장용 깃발부터 관복에 부착하는 흉배(胸背),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 주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흉배와 도자기 문양으로 등장하는 백택은 폭포와 바다 등 주로 물가에 배치된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는 황제가 백택을 바닷가에서 만났다는 『운급칠점』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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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재도회』 백택(명대 1609년) 백택 흉배(청대 18세기경,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백택을 표현한 중국 미술 가운데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현재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청궁수보(淸宮獸譜)』의 백택도이다. 18세기인 1760년경에 제작된 『청궁수보』는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부터 환상동물에 이르기까지 총 180여 종이 수록된 왕실 회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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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의 백택(중국 17세기경, 벨기에 마스터옥션 ) 『청궁수보』의 백택도(청대 1760년, 북경 고궁박물원)


여기서 백택은 기암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는 호수 앞에서 용맹하게 포효하고 있는데 다른 작품과는 차별되게 환상동물에게 자주 표현되는 화염 갈기 조차 없으며, 오로지 순백의 흰 털만을 지닌 모습이다. 예로부터 동양 문화 속 흰 동물은 신령한 존재로 인식되었으니, 이 역시 백택이 영험함을 지닌 환상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고대 중국에서 탄생한 신령한 동물-


흔히 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현자(賢者)’라고 부른다. ‘성자(聖者)’ 다음 가는 이를 뜻하는 현자는 지식에 능통하며, 이를 통한 올바른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자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계에도 현자가 있다. 바로, 만물의 모든 정보를 꿰뚫어 본다는 ‘백택(白澤)’이다. 사자와 유사한 이미지를 지닌 환상동물 백택은 예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악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게 되었다.


황제의 멘토가 된 현자


중국 청(淸)나라 기록인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는 “백택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고 동망산(東望山)에 산다. 왕의 덕과 총명이 그윽하여 멀리 비추면 출현한다.”라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백택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가장 이른 사례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갈홍(葛洪, 281-341)이 편찬한 『포박자(抱朴子)』로 알려져 있다. 도교 경전인 『포박자』 「극언(極言)」편에는 “귀신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백택의 말을 적어두어야 한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만물의 모든 지식을 지닌 백택이 이승은 물론이요, 저승의 존재인 귀신에 관한 지식까지 해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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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화상석에 표현된 황제(후한대) 화상석으로 표현된 치우(후한대)


그렇다면 귀신을 꿰뚫어 본다는 백택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는 중국 송(宋)나라 때 편찬된 『운급칠점(雲笈七籤)』에 찾아볼 수 있다. 『운급칠점』 「헌원본기(軒轅本紀)」 편에는 백택과 ‘헌원씨(軒轅氏)’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헌원씨란 중국 전설 속 제왕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한 명인 ‘황제(黃帝)’를 말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제가 시찰을 나가 동해에 이르러 항산(桓山)에 올랐는데 바닷가에서 백택(白澤)이라는 신령한 동물을 얻었다. 그는 말에 능하고 세상 만물에 통달하였다. 황제가 백택에게 천하의 귀신에 관해 물어보니 옛날부터 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되고 떠도는 혼(魂)이 변한 것이며 모두 1만 1,520가지에 대해 말하였다. 황제는 그 형상과 글을 기록한 뒤 이를 공포하여 사악한 것들을 쫓아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먼저 편찬된 중국 당(唐)나라의 천문서인 『개원점경(開元占經)』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황제는 세상을 평정하기 위해 전쟁의 신 치우(蚩尤)와 전쟁을 치렀고, 자신을 방해하는 악귀들을 쫓아낼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삼라만상을 꿰뚫는 백택을 만나게 되었고, 귀신에 관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백택이 중국 전설 속 황제에게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벽사의 상징이 된 백택


귀신에 관한 정보를 준 백택은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상징이 된다. 불교 경전인 『법원주림(法苑珠林)』에는 ‘백택도험(白澤圖驗)’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백택도(白澤圖)의 영험함’이라는 뜻이다. 백택도란 『백택정괴도(白澤精怪圖)』라고 불리는 일종의 벽사용 부적인데 다양한 괴물과 귀신 종류를 나열하며 이들을 쫓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여주듯이 『법원주림』 기록에서도 뒷간의 귀신 ‘의(倚)’부터 불의 귀신 ‘필방(必方)’, 나무의 귀신 ‘팽후(彭候)’ 등 수많은 귀신을 열거하며 이를 물리치는 방법이 백택도에 담겨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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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석굴 출토 『백택정괴도(白澤精怪圖)』(당대, 프랑스국립도서관)


이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백택도의 영험함은 『법원주림』 뿐만이 아니라 중국 육조시대의 괴이소설인 『수신기(搜神記)』부터 북송 때 백과사전인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영국국립도서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에는 중국 돈황(燉煌)에서 출토된 『백택정괴도』가 소장되어 있다. 비록, 백택의 모습은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백택이라는 환상동물이 벽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험한 이미지의 환상동물


그렇다면 백택은 어떻게 생겼을까? 중국 원(元)나라 때 문학 도서인 『초각시집(草閣詩集)』에는 기린(麒麟)의 뿔에 자라의 발가락, 용의 몸통에 호랑이 이마를 지녔다고 말하고 있으며, 명(明)나라 때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에는 용의 머리에 푸른 머리칼, 이마에는 뿔이 있고 네 발이 달려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백택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환상동물이기에 그 이미지에 관한 내용이 매우 다양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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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백택기(청대 1725년) 『황조예기도식』백택기(청대 1759년)


중국 미술로 표현되는 백택은 크게 세 가지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첫 번째는 위 기록을 반영된 호랑이와 용이 합쳐진 모습, 두 번째는 발굽 달린 기린의 모습, 마지막 세 번째는 사자 이미지로 표현된 모습이다. 백택은 의장용 깃발부터 관복에 부착하는 흉배(胸背),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 주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흉배와 도자기 문양으로 등장하는 백택은 폭포와 바다 등 주로 물가에 배치된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는 황제가 백택을 바닷가에서 만났다는 『운급칠점』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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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재도회』 백택(명대 1609년) 백택 흉배(청대 18세기경,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백택을 표현한 중국 미술 가운데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현재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청궁수보(淸宮獸譜)』의 백택도이다. 18세기인 1760년경에 제작된 『청궁수보』는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부터 환상동물에 이르기까지 총 180여 종이 수록된 왕실 회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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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의 백택(중국 17세기경, 벨기에 마스터옥션 ) 『청궁수보』의 백택도(청대 1760년, 북경 고궁박물원)


여기서 백택은 기암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는 호수 앞에서 용맹하게 포효하고 있는데 다른 작품과는 차별되게 환상동물에게 자주 표현되는 화염 갈기 조차 없으며, 오로지 순백의 흰 털만을 지닌 모습이다. 예로부터 동양 문화 속 흰 동물은 신령한 존재로 인식되었으니, 이 역시 백택이 영험함을 지닌 환상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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