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 ⑤]

by 데일리아트

18세기 중반, 봉건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계몽주의는 미술 양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존의 아카데미즘에 반발하면서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초의 낭만주의, 19세기 중후반의 사실주의, 19세기 후반의 인상주의, 상징주의,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나비파, 세기말의 초기 표현주의 등의 사조에 이르기까지 색채, 형태, 표현 기법 등에서 재현에 치중한 전통적 미술을 벗어나 표현 중심의 모더니즘 미술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그 결과다.


19세기의 여성 미술가들은 대개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고, 인물의 객관적 묘사가 중요한 초상화나 자화상은 더욱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여성 미술가들이 전문 화가로 받아들여지거나 제도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1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제도의 변화보다 사회의식의 변화는 더 느리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직업 화가로서의 여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인습과 보수적 통념 하에서, 여성 미술가들은 시대 정신 및 미술 양식의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고 수용하는 데 남성보다 불리했다.


미국 화가 세실리아 보(Cecilia Beaux, 1855-1942)는 1925년 우피치갤러리에서 자화상을 요청했을 정도로 지명도가 있는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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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보, 자화상(Self-portrait), 1925, 캔버스에 유채, 109×71cm, 우피치갤러리(Uffizi Gallery, Florence)


그녀는 1888년 파리 유학 기간에 인상주의 양식을 자신의 풍경화와 초상화에 적용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사실주의 양식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재현에 충실한 아카데미 교육을 받았던 당시 많은 여성 미술가들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는 모더니즘의 물결을 새로운 미술의 방향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화법으로 작품을 발전시켜 나간 작가들이 있음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2편에서 소개한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4편에서 소개한 마리아 슬라보나와 헬렌 셰르프벡, 엷은 물감, 빠른 붓 터치의 차별화되는 기법으로 그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두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자화상, 메리 커샛(Mary Cassatt)의 자화상 등이 그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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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 자화상(Self-portrait), 1885, 캔버스에 유채, 100×81cm, 마르모탕모네미술관((Musée Marmottan Monet,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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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커샛, 자화상(Self-portrait), 1878년경, 캔버스에 유채, 60×41.1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여기에 몇 명의 미술가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odersohn-Becker, 1876-1907)는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미술에서 중요한 인물로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다. 그녀는 독일 북부 보릅스베데(Worpswede)에 있는 예술 공동체에 참여했으나 그곳에서 추구하는 고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1899년 이후 여러 차례 파리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공부하면서, 상징주의 화풍을 익히고 야수파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를 구사하게 된다.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700점 이상의 회화와 1,000점 이상의 드로잉을 남겼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된 파울라모더존베커미술관이 독일 브레멘이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누드 자화상(1906)을 그린 첫 번째 여성 화가이기도 한데, 이 외에도 여러 점의 자화상을 1900년대 초반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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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모더존 베커, 자화상(Self-portrait), 1897, 구아슈, 파울라모더존베커미술관(Paula Modersohn-Becker Museum)


이 자화상은 1897년 구아슈(gouache)로 그린 자화상 두 점 중 하나다. 대범한 붓질에 담겨 있는 그녀는 의상이나 배경 묘사를 생략했다. 대신 4분의 3 각도로 왼쪽 얼굴을 보이면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입술은 꼭 다물고 눈은 치켜뜬 채 관람자를 자신 있게 주시하고 있다. 새로운 미술을 공부하고자, 혼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떠났던 용기와 자신감이 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얼굴에 담겨 있다. 현대 미술 출현의 선구자로서의 맹아(萌芽)를 단순화한 형태를 담은 자화상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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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모더존 베커, 자화상(Self-portrait), 1906-1907, 카드보드와 종이에 오일 템페라, 26.5×18.5cm, 개인 소장


이 자화상은 20세기 초에 그려진 자화상들 중 하나로, 앞의 1897년 자화상과 비교해 양식의 변화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단순하고 투박한 선묘와 두터운 물감, 검은 윤곽선, 평면적 표현과 과감한 얼굴의 색채 등이 표현주의적 화법에 익숙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루이즈 브레스라우 (Louise Breslau, 1856-1927)는 독일계 스위스 화가로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2편에서 소개한 마리 바시키르체프와 함께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1880년대 후반부터 작품이 인정받아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세 번째 여성 예술가이기도 했다. 인물화와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작품을 살펴보면 사실주의적 화풍에서 시작하여 인상주의적 화법을 적용해 갔음을 알 수 있다.


브레스라우는 여러 점의 자화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다음은 1891년에 그린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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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브레스라우, 자화상(Self-portrait), 1891, 마호가니 나무에 유채, 46×39cm, 스트라스부르근현대미술관(Strasbourg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France)


35세의 그녀는 녹색 케이프에 갈색 털모자 차림으로 품에 안은 황색 강아지의 두 발을 갈색 장갑 낀 손으로 받쳐주고 있다. 시선은 지그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녹색과 황색이 주조를 이룬 화면 표현은 거칠고 가라앉아 있는데, 그녀의 표정 또한 그러하여 우울감이 전해지는 자화상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녀가 평생 천식으로 고통을 받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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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브레스라우, 화가와 모델(The Artist and her Model), 1910년경 /출처: 위키피디아


이 작품은 55세쯤 제작된 자화상으로 보이는데, 사실적 형태로 두 인물과 정물을 배치했으나 분절적인 색채 표현이 두드러진다. 지속적인 화법 연구를 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은 15세 때부터 모리조, 르누아르, 로트렉, 샤반느 등 19세기 후반 당시 유명 미술가들의 모델로 10년 이상 활동했으며, 그들의 기법을 관찰하고 익혀서 자신만의 예술로 발전시킨 프랑스 화가다. 그녀는 남성 미술가들이 만든 규범을 뒤집고, 이상화되지 않은 솔직한 여성 누드를 그리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작품은 특정 스타일에 한정되지는 않았으나 상징주의와 후기인상주의 미학이 드러난다.


그녀는 사망하던 해인 1938년까지 꾸준히 여러 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19세기에는 두 점을 제작했다. 두 자화상은 인물 묘사가 단순하고 인물의 의상과 같은 계열의 단순한 배경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 작품은 모델 생활을 한창 하던 시기인 18세에 처음으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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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발라동, 자화상(Self-portrait), 1883, 종이에 목탄과 파스텔, 43.5×30.5cm, 퐁피두센터(Pompidou Center, Paris)


배경과 얼굴, 의상을 푸른색 계열로 통일하였고 우측 상단에 서명과 제작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가운데 가르마를 한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4분의 3 각도로 얼굴을 틀어 관람자를 쳐다보는 푸른 눈빛은 다부지다.

비슷한 시기에 그녀가 모델로 등장했던 남성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그녀가 보는 자신의 모습과 모델로 대상화되었을 때의 모습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부지발의 무도회>는 같은 해인 1883년에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제작한 르누아르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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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부지발의 무도회(Dance at Bougival)’ 부분 /출처: 보스턴미술관


얼굴 표현을 보면 인상주의적 기법에서 고전주의적 표현으로 회귀하는 르누아르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리깐 눈, 발그레한 볼, 입꼬리를 올린 채 약간 벌어진 입술 등을 통해 소녀적 관능미를 표현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의 18세에 그린 자화상에서는 이와는 달리 강단 있는 내면 세계가 읽힌다. 자화상 속의 얼굴은 남성이 욕망하는 뮤즈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의식의 주체가 된 모습이다.

33세에 그린 자화상은 18세 자화상에 비해 다양한 색채를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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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발라동, 자화상(Self-portrait), 1898, 캔버스에 유채, 40×26.7cm, 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ouston)


전체적으로 붉은 계열의 그림인데, 얼굴과 머리카락 표현에 붉은색, 노란색, 녹색을 자유롭게 섞어서 표현적인 붓질을 하고 있다. 15년 사이에 화법, 색채 표현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아카데미와 같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던 점이 예술적으로는 오히려 미술 전통이나 스타일에서 자유로운 작품을 창작하게 했던 요인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19세기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에 반영된 시대성을 네 유형(관습과 통념으로부터의 이탈, 자기 정체성 표현, 자기 성찰, 미술 양식의 변화)으로 범주화해서 살펴보았다. 어떤 화가들은 자화상을 여러 점 제작했는데 그중에는 시대성이 표출되는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자화상을 그리기도 한다. 프랑스 화가 오르탕스 오드부르 레스코는 1825년에 남성 자화상 형식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2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연도 불명의 자화상에서는 깃털이 달린 모자, 목에 두른 스카프와 목걸이, 하얀 레이스 깃이 있는 푸른 옷에 붉은 숄을 내려뜨려 한껏 치장한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폴란드 화가 엘리자베스 제리코 바우만(Elisabeth Jerichau-Baumann, 1818-1881)은 1845년에 어깨가 드러나는 화려한 레이스의 드레스를 입은 채 여성미를 강조하는 자화상을 그렸으나, 1858년에는 검은 옷을 입고 팔레트를 든 채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렸다. 이젤 앞의 그녀는 외모보다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역사 속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이전 상태와 병존하는 과정에서 자리를 잡는다. 19세기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에 드러난 근대적 변화도 19세기 전반에는 서서히 시작되었으나 19세기 중반 이후 세력을 더하다가 19세기 말이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밀물로 밀려 들어와서 20세기의 자유를 향해 간다.


여성이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 미술가를 전문 직업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조, 미술학교 입학 불허와 역사화 등과 같은 장르 제한 등 그들 앞에 오랜 기간 놓여 있었던 젠더의 불평등이 우선적 요인일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당시의 기록을 보면 여성 화가들도 남자들처럼 미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공부하고 당시 남성 화가들이 많이 찾았던 브루타뉴 지역 등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어떤 미술가는 인상주의를 접했으나 사실주의 미술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여성 미술가가 당시의 시대적 변화나 양식의 흐름, 즉 시대성에 둔감한 채 아카데미즘 미술에 안주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는 여성 미술가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미술사는 시대 정신을 선도한 화가 중심으로 기록된다. 당시에는 인정을 받았으나 이러한 역사 서술 방식 하에 잊혀진 화가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많이 있다. 새로운 미술을 이끈 선구자 중심으로 기록된 미술사는 자칫 단선적인 기록이 될 수 있다. 주제를 달리하여 기록되지 않은 미술과 미술가를 찾아냄으로써 미술사 기술이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글의 의의로 삼고자 한다.


[19세기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 ⑤] 변화하는 미술을 담다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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