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구예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강가에 사는 파충류 '이구아나'를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머리가 크고 등에서 꼬리에 이르는 부분에 칼날모양의 장식 바늘이 있는 동물 이구아나. 그러나 '이구예나'는 '이구아나'가 아니다. "이 구역의 예술가는 나야"를 줄임말. 자기가 속한 구역에서 자신을 주목해 달라는 뜻이니 이름만 봐서는 다소 치기가 어려보이지만 꽤 당찬 이름이다. 파충류 이구아나는 공룡 머리에 솟은 장식 바늘을 가지고 있어, 공격성이 강해 좀 보기에도 무섭다. 그러나 이구예나는 전혀 공격성이 없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곧 세상으로 향해 돌진 할 젊은 조각가들. 그러나 이들의 강점은 개인적 예술적 성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서로 경쟁을 해야하는 예술가들이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예술적 성취와 서로를 응원해 주는 그 공동체성에 있을 것이다. 함께 모여 작업하고 먹고 추위를 이겨가며 젊음의 구슬땀을 흘리는 예술가들. 이구예나를 이끌고 있는 정의지 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작업실로 찾아갔다. 봄 꽃이 좋은 4월의 어느날이었다.
구룹전 끝나고 회원들과
모임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코로나가 막 기승을 부릴때인 2019년 무렵, 모임이 처음 생겼습니다. 당시 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과에 강의를 나가고 있었죠. 처음에는 중앙대 출신 후배들과 제자들 약 20명 정도로 시작되했습니다. 하지만 곧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면서 예정되어 있던 전시와 행사들이 모두 취소 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전시하고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럴 방법이 사라진 것이죠.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전시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 이 모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비대면으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예술가들끼리 정보를 나누고 동시대의 사회, 공간, 인간, 자연 등을 주제로 소통하기 위해 시작된 자리였습니다. 그러다 점차 뜻이 맞는 젊은 작가들이 하나 둘 합류하면서, 지금은 부산, 파주 등 전국 각지에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회원은 약 40명 정도이며 조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조형예술 분야의 작가들입니다. 연령대는 23세부터 39세까지 주로 20~30대 젊은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1 올미아트스페이스 단체전
자주 모이나요? 회원은 어떻게 뽑나요?
주로 전시를 할 때 모이는데 일년에 5번 정도 그룹전을 합니다. 지금까지 프로젝트와 전시를 합치면 20번 이상 행사를 진행 했네요. 정기모임은 한 달에 한번 줌 회의를 통해서 합니다. 회원들이 전국 각지에 있어서 다들 시간을 맞춰서 모이기는 어렵습니다. 줌회의에서는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이나 프로젝트 현황을 공유합니다. 삶도 나누고요.
저희 모임은 1년에 한 번 공개 모집을 통해 새로운 멤버를 선발합니다. 매년 약 10명 정도가 지원하여, 젊고 열정적인 작가들이 새롭게 합류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이미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등 39세 미만의 열정적인 조형예술가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24년부터는 회원들 간의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기 위해 <한끼잡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한 작가가 호스트가 되어 자신의 작업실로 멤버들을 초대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한 번 모이면 약 20명 정도가 참석하죠. 호스트는 직접 음식 컨셉을 정해 준비합니다. 참석자들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1인당 1만 원의 회비를 내고 팀 예산에서도 호스트에게 10만 원을 지원합니다.
식사를 함께 하며 각자의 예술 작업과 작업 과정을 소개하고 서로의 삶과 예술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가들의 작업실은 사용하는 공구나 공간의 구조까지 모두 저마다 다르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인데 그런 것들을 서로 공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식구입니다.
정의지 이브작가의 오픈스튜디오 한끼잡솨
정기전시회와 다른 프로젝트도 있나요?
작가에게 새로운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표현의 범위가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철학과 생각들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되지요. 그래서 저희는 그런 경험을 쌓고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버려진 폐교나 폐공장 같은 장소를 찾아다녔습니다.
첫번째 프로젝트는 한 폐공장에서 진행했습니다. 그곳에 남겨진 흔적들과 주위의 환경을 느끼고 소통하면서, 현장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일주일 동안 폐공장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물과 전기가 끊어져서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었고 전기도 한전에서 만들어 준 임시전기를 사용했는데 전압이 약해 용접기나 난로를 한번에 같이 사용하면 차단기가 내려가 버렸습니다. 화장실은 걸어서 10분정도 떨어진 다이소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죠. 여러 가지 악조건에 우리는 2월의 겨울을 폐공장에서 지냈습니다. 그래도 참 재미있고 보람있었습니다.
폐공장 프로젝트- 시작의: 궤도
장소: 구)삼풍전자 폐공장 프로젝트 , 경북 구미
기간: 2021. 2.17-2.23
함께 작업하는 회원들
이브, 윤보경, 전백진, 장태원, 정의지, 조하나, 최목운, 허은유, 김재규, 낙, 방주하, 박광민, 어형진, 이시, 윤리, 이정훈
그다음에는 경북 상주에 위치한 작은 폐교, 두릉초등학교에서 ‘폐교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상주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기획안을 제출하고 예산을 지원받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수많은 꿈과 상상을 품고 자라났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시절의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교실을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상주 WE센터'의 학생들과 협업해 캐릭터 디자인부터 조형물 제작, 설치까지 함께했습니다. 작업을 통해 각자의 어릴 적 꿈을 되새기고 그 상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완성된 작품들은 상주 함창중학교에 한 달간 전시하며 지역 주민들과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폐교 프로젝트-동심; 우리가 어릴 적 품었던 꿈
기간: 2021년 7월 28일-8월 3일
학교이름: 두릉초등학교
김지윤, 윤보경, 이브, 정의지, 최목운, 이찬주, 신채훈, 어형진, 전진우, 윤소빈, 황원규, 허은유, 윤리, 정도연, 정유진, 조하나
지역 학생들과 협업으로 We센터 마스코트 디자인 및 제작하여 설치
작가들은 개성이 강한 만큼 한 방향으로 팀을 이끌어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지요.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비영리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실상 수익은 전혀 없고 거의 모든 과정이 자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 같은 팀이 이 나라에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모인 팀입니다. 그렇기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더 활발하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작업하면서 그 선한 영향력을 더 멀리, 더 넓게 퍼뜨리고 싶습니다.
프로젝트을 진행할때는 예산이 항상 적어서 아끼기 위해 저녁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팀을 나눠 메뉴를 정해서 함께 만들어 먹었는데 이게 어쩌다 보니 서로 경쟁이 되어서 다양한 요리가 나오더라구요. 이탈리안, 냉면도 아란치니 등등 성찬이었습니다. 한끼 예산을 십만원 정도로 잡았는데 아주 맛있게 기대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발전되어서 <한끼잡숴>가 되었습니다.
식탁에 둘러 앉은 회원들
저녁 식사준비
가장 최근에 한 것은 <기억합시다>라는 부산에서 한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부산 재개발 지역 전포동에 다 떠나간 빈집에 가서 작가들이 한집 한집 빈집에 들어가서 주인 없는 집의 흔적들에 영감을 얻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집들은 비어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었고 집작에서 돌아온 피곤한 아버지들의 쉼터 였으며 함께 밥먹고 이야기 하는 가장 소중한 집이었죠. 그것을 환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우선 좁은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나름 사람사는 모양으로 그 일대를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맴버들은 남겨진 집들 중에 맘에 드는 집을 골라서 그 곳에 남겨진 가구와 벽지를 활용해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양한 작업들이 나왔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집 자체를 전시장겸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참 잊혀지지 않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부산에서의 프로젝트. 함께하면 우리들은 더 큰 힘과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기억합시다 프로젝트 진행중인 회원들
이구예나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에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표현하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구예나’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작가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만 아트페어에서
현재 제가 보고 있는 미술계는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는 작품 스타일과 방향이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많은 후배 작가들이 그것을 좇아 비슷한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따라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죠. 물론 저의 생각이 잘 못된 것 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다양한 스타일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해서 생긴 현상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다양한 작품들이 대중에게 소개될 수 있도록 힘쓰고 싶습니다. 더 많은 작가들이 무대에 설 수 있다면 대중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더 넓고 깊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구예나’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우며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작업은 작업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협업할 때,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해외아트페어 참여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물류, 비용, 현지 네트워크 등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해외에서 전시를 준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처음에는 많이 미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젊은 작가들에게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년 한 번은 해외 아트페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대만의 〈가오슘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프로젝트 팀 이구예나’라는 이름으로 타이페이 아트페어에 나갈 계획입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다양한 시선과 만나며 작가들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의 계획은 아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열정적인 작가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멋진 프로젝트와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해외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해 한국 작가들의 멋진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이구예나’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팀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이구예나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뜁니다. 이런 예술가와 예술 그룹이 있다는게 예술계는 물론 개인주의로 공동체성을 상실해 가는 우리 사회에 큰 힘과 도전이 됩니다. 이구예나의 성장과 발전에 데일리아트가 함께하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同好同樂 ⑥] 함께 나누며 삶을 조각하는 예술공동체 - 이구예나 < 인터뷰 < 뉴스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