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작가 ③] 살아 있는 것들의 극장 : 리움

by 데일리아트

비인간 존재들이 주체가 되는 무대 위에서, 피에르 위그는 인간 중심의 세계를 낯선 감각으로 다시 구성한다.
위그의 세계는 멈추지 않으며, 관람자는 예술이라는 시물레이션을 통해 다른 존재의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현대미술의 흐름은 점점 더 감각의 외연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술은 더 이상 고정된 오브제로서의 ‘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작가들은 이야기의 서사, 전시장의 구조, 감각의 범주 자체를 해체하면서, 예술이 머무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b.1962)는 그 최전선에 있는 예술가다. 그가 구축하는 세계는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고, 관람객의 개입 없이도 나름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허구의 공간 안에서, 비인간 존재들이 출현하고, 관람자는 그들을 마주하며 자신 또한 낯선 객체로서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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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Huyghe / 제공: Esther Schipper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위그는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수학한 뒤,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그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고,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의 휴고 보스 상을 비롯해 다수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단순히 수상 경력이나 전시 이력으로는 그의 작업을 정의할 수 없다. 그의 예술은 형태가 아니라 과정에 있고, 객체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를 생성하는 방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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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Huyghe, Untilled, 2011–12, Alive entities and inanimate things, made and not made. Courtesy the artist; Pierre Huyghe / 제공: Esther Schipper


대표적인 예가 <무제 Untilled>(2012)이다. 카셀 도큐멘타(13)에서 공개된 이 설치 작업은 핑크색 앞다리를 지닌 백색 그레이하운드‘휴먼(Human)’을 등장시킨다. 이 생명체는 위그의 작업 안에서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주체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인간과 동물, 자연과 인공,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리는 동시에 인간중심의 서사를 비틀고 관람자에게 "누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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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Huyghe, Human Made, 2014, 영상, 컬러, 사운드, 19분, 스틸 이미지피노 콜렉션, 안나 레나 필름 제공. ©리움 미술관


이후 <휴먼 마스크 Human Mask>(2014)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폐허를 배경으로, 인간의 소녀 얼굴 가면을 쓴 원숭이가 등장한다. 식당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반복되는 동작들, 그리고 그 반복 속에 깃든 슬픔과 공허함은 인간의 부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기억하는 비인간’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인간 없는 세계에서 오직 본능과 잔상만이 남은 존재는 마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유령처럼 떠돌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Liminal》 전시는 이러한 위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센서와 인공신경망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 형상은 주변 환경 데이터를 학습하고 반응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얼굴 없는 형상이 보내는 시선, 움직임, 침묵 속에 관람객은 자신의 인식 체계를 다시 묻게 된다. 이처럼 위그는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감각 구조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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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널 전시 전경, 2025 ©리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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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Huygye,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Cambrian Explosion 16, 2018, 수조, 투구게, 화살게, 아네모네, 모래, 바위작가, 하우저&워스 제공. 델라 도가나, 베니스, 2024 사진: 슈테판 알텐부르거 사진, 취리히 ©리움 미술관


피에르 위그의 예술은 자율성과 예측불가능성에 기반한 복합적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한다. <주드람 4 Zoodram 4>(2011)에는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얼굴을 본뜬 조각이 수족관 안에 설치되어 있고, 그 안의 생명체(게)의 움직임에 따라 조각 역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기적 딜레마 Circadian Dilemma>(2017),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Cambrian Explosion 16>(2018) 역시 각각 멕시코의 수중 동굴 생태계와 캄브리아기 고대 생명체를 재현하거나 상상하며, 생명 그 자체의 기원에 다가가는 예술적 실험이다. 그의 수족관 속 세계는 생명과 비생명, 예술과 과학,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불분명한 경계 위에 놓여 있다. 비인간 존재들은 인간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그 자체로 행위성을 갖는다. 전시장에 오가는 인간들과 작품 안에 살고 있는 비인간들은 소리 없이 소통하되 서로의 행동을 제한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들의 삶에 참여하는 객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위그의 예술에는 철학, 생태학, 비인간 존재론, SF적 상상력 등이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론적 설명보다 ‘경험의 구축’을 중시한다.


그는 “공간은 뮤즈처럼 노래한다


위그는 예술을 인간중심주의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바라본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재구성,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의 상호작용까지도 주체적인 사건으로 인식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작품’의 개념을 다시 쓰게 만든다. 위그에게 예술은 의미를 전달하는 장치가 아닌 존재를 구성하는 실재의 한 방식이다. 그는 말한다.


가상이라는 말은 일상 언어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이해된다. 문제는 인간 구성(construction)의 한계에 있다. 인간은 세계를 자신이 가진 감각도구로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우주에 우리가 예속되어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며, 이 설정 자체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구성하고, 주체가 되는 것 모두는 내러티브의 그물망을 짜는 과정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가상이지만, 진정한 현실도, 사실도 없다


피에르 위그의 작품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집결된다. 우리는 왜 인간만을 ‘주체’로 간주하는가? 세계의 구성원을 비인간까지 넓혀갈 때,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 비인간, 기계, 사물, 생명,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우주를 상정한다. 그의 작업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자율적이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피에르 위그는 꾸준히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예술의 가장 진실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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