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맘친구, 친정 엄마.

by D보노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조리원 가면 혼자 조용히 지내다 올 수 있을까?’ 뼛속까지 I인 INFJ맘은 부지런히 검색에 들어갔다. 중기쯤에는 조리원 예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조리원 시설을 보고 후보를 추린 후, 최종적으로 검토한 것은 단체 프로그램과 개별 식사 여부였다. 그렇게 해서 계약한 곳은 우선 채광이 아주 좋았다.(산후우울증 안 올 것 같은 희망이 느껴졌음) 그리고 한 블로그 후기가 결정적이었다. ‘너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조리원 동기도 못 사귀고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그 한 줄을 보고 난 바로 그 조리원을 계약했다. 물론 이후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조리원 복도에서 조차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기에, 내가 우려했던 상황은 어느 조리원에서도 벌어지지 않았다. 피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피해왔는데... 내 인생에서 맘 친구라는 관계가 이렇게 일찍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말 배우기에 한창인 아이는 핸드폰을 보며 크게 외친다. “핸! 할!” 핸드폰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달라는 말이다. 5년이라는 나름 긴 연애를 했어도 단 한 번도 영상통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영상통화 연결음이 익숙한 멜로디가 되었다. 아이가 그토록 원한 ‘할’이 화면에 나타났지만, 아이는 조금 시큰둥해진다. 사실 아이는 통화가 연결되기 직전 멜로디를 들으며 자기 얼굴을 크게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할’들은 모를 테지. 토끼 같은 손주들의 숨은 마음을. 아이가 좋아하는 화면 속 ‘할’은 나의 엄마이자 나의 유일한 맘친구다. 할의 무릎에 조카가 앉아있다. 엄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황혼 육아에 뛰어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저쪽 화면에서는 나를 반기기보다 뭘 자꾸 아니란다. 조카는 우리 아이보다 일 년 먼저 태어난 탓에 한창 모든 것을 부정하는 월령이다. 이쪽에서 계속되는 외계어와 저쪽에서 계속되는 부정어 사이에서 서로의 근황을 전하는 일마저 쉽지 않다. 하지만 경상도 네이티브인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하소연을 매섭게 귀에 때려 넣는다. 두 돌 쟁이 남아를 환갑 다 된 할미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일이긴 했다. 내 아이가 순한 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들. 아이는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대단히 화가 났으며, 자기를 혼내는 줄 알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그러면 엄마는 서둘러 주제를 전환한다. 이번엔 조카 자랑이다. 조카가 하는 말과 아는 문자, 읽는 책과 보는 영상, 식사량과 배변량까지 모든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을 듣게 된다. 나도 조카가 우리 아이만큼이나 좋아서(임신, 출산에 대한 깊은 결심도 조카 사랑에서 비롯될 정도였음) 모든 이야기가 다 흥미롭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묘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엄마는 다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흔들려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 나를 쥐고 흔든 사람. 경제적 독립과 결혼으로 겨우 자유를 찾게 됐는데... 이 답답함은 전조 증상이다. 이미 겪어본 일에 대한 경고음이다. 이제 나는 나를 잘 안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누구보다도 잘 흔들리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걸. 흔들리면 흔들리고 말면 될 일도 자책하고 스트레스 받아 할 것도 말이다. 엄마가 하는 말들은 내 안에서 또 나를 쥐고 흔들 것이다. 그게 나만의 문제라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그런데 이번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육아, 내 아이의 문제다.


나는 에두를 것 없이 말했다. 엄마에게 말하는 형식을 빌어 스스로에게도 다짐했다. 내 아이만의 특별함(재능 또는 장애)을 발견해도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시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크게 웃었다. 입이 간지러워 내가 말하고 말 거랬다. 적어도 육아에 있어서 일희일비하지는 않을 테니, 엄마도 너무 그러지 말라 당부했다. 어른들의 대화가 길어지자 아이들은 다시 칭얼댄다. '할머니 빠빠해야지. 나중에 전화할게.'로 전화는 대충 마무리되었다. 황혼 육아로 지칠 대로 지친 맘친구에게 더 이상의 매운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아이가 무언가 뛰어나다면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칭찬해줄 것이다.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면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격려해줄 것이다. 너무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들이 어려워질 날이 내게도 올지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아이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아이에게는 표현해주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받지 못한 것을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다는 말을 내 유일한 맘친구가 듣는다면 굉장히 서운해할 것이다.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들게 해서 미안해. 뭐 이런 상황이 되는 것이다.



keyword
팔로워 15
매거진의 이전글펜데믹 육아 : 모두가 갇혀있다는 묘한 안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