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날 것 같아요.’라 말하면 더 눈물이 난다.

호르몬의 노예

by D보노

출산하고 나서 지독한 쿨병에 걸렸었다. 씩씩하게 해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대체 누구한테? 왜??) 그래서 유독 그 시기엔 ‘산후 우울증’이나 ‘호르몬 때문...’이라는 말 자체를 꺼려했다. 제발 내 앞에서 이런 말들을 꺼내지 않기를 바랐다.


천국이라는 말만 믿고 계약한 조리원에서는 비싼 돈을 지불했지만 천국은 구경도 못했다. 조캉스? 천국??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분들은 어디 천만원대 조리원 다녀오셨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가 있던 조리원은 모자동 시간이 하루 2시간씩 2번이었고(아침 7시, 저녁 7시) 중간 중간 수유콜을 다 받으면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코로나 발병 초기여서 병원에서는 (제왕절개 입원 6일) 아이를 안아보는 것도 직접 수유도 불가능했다. 조리원에 와서야 직수가 가능했기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그렇다보니 더 조리원에서 이끄는 대로 끌려다녔던 것 같다.

밀크팩토리 집무실
"1번방 생산량을 늘려주세요." "넵넵"

첫날만 남편과 보내고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으로 혼자 보내었다. 벌써 2년 전 일이라 가물가물하다. 월요일 아침, 호로록 모유 촉친차를 홀짝거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직원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셨다. 미리 공지해주셨을 텐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침에 아이가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도 못 가누는 아기와 2시간을 씨름했다. 아이가 심하게 울거나 응가를 누면 전화로 직원을 부르라고 했다. 쉬 누는 기저귀정도는 연습하듯 갈아보라고 했다. 아기 침대 밑에는 기저귀와 산모패드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임신 기간 내내 못한 생리를 한꺼번에 다 쏟아내듯 몸에서는 쉴 새 없이 찌꺼기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계속해서 몸에서 마음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안 찍다 찍은 이유. 그나마 상큼한 반찬이어서 찍었던 듯.

아이가 다시 신생아실로 돌아갈 즈음 방으로 조식이 배식되었다. 조리원을 천국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쓴 리뷰에 늘 빠지지 않는 게 조리원 밥 사진이었다.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출산을 한 산모가 영양을 챙겨야한다지만 턱없이 부족한 운동량에 비해 너무 과한 양이었다. 늘 맛있게 먹고 후회하는 것의 반복. 코로나 초기라 외출도 제한되었고, 조리원 안에서 걷는 것만으로는 소화도 어려웠다. 그렇게 더부룩한 상태로 조리원 생활의 현실을 깨닫게 될 즈음 내방으로 원장이 들어왔다.


“똑똑. 어? 오빠야는 간 거예요?”

(이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을 오빠야라고 불렀다. ‘제 남편 연한데요?’하고 싶었음. 물론 내 남편 연상 맞음. 아오)


“조리원 생활 괜찮아요? 여기가 천국이야 나가면 얼마나 힘든데...

오늘 내가 가슴을 한번 볼 거예요.”


이미 수술한 병원에서 모유수유 시작을 위해 가슴마사지를 한 번 받고 눈물 쏙 뺀 터라 가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긴장이 되었다. (제발...) 하지만 이놈의 쿨병 때문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그만.


“저... 병원에서 마사지 받고 좀 힘들어서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아.. 지금 말하니까 또 눈물날 것 같아요.”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

갑자기?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정말 말 그대로 갑분싸. 원장도 당황했는지 아무 말이나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눈물이 나올 때지 나올 때야. 울어요 울어.

오빠야도 없고 힘들지. 알어 내가 다 알어.

출산하면 다 그래. 그게 다 호르몬 때문이야."

(네? 뭘 아신다는 거죠? 그리고 제발 그 오빠야 좀...)


"아니에요.

저 괜찮은데 갑자기... 아 진짜 왜 이러지?

저 산후우울증 그런 거 아닌데?

(괜히 더 씩씩하게 눈물을 닦는다)

아니에요. 저 진짜 괜찮아요."


"산후 우울증이 뭐 대단한 게 아니야.

출산하고 나면 다들 그래요. 괜찮아 괜찮아."

(네? 저 아니라니까요. 진짜 억울하거든요??)


대충 분위기를 수습하고 원장은 방을 나갔다. 조리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따사사로웠다. 내가 이 조리원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렇게 채광이 좋은 곳이라면 우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금세 괜찮아 질 것 같았다. 괜히 더 눈물이 났다. 한참을 숨죽여 꺼이꺼이 울었다.


"아 진짜 왜 눈물나고 난리야. 나 진짜 산후우울증 아닌데. 꺼이꺼이."


그렇게 난 퇴소할 때까지..

조금은 우울한 상태의 산모, 가슴이 예민한 산모로 대접(오해)받았다.



요즘도 괜히 씩씩한 척 하는 덕에 억울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그러면 또 그렇게 눈물이 난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달라진 점이라면 더 이상 눈물 속으로 들어가진 않는 다는 점이다. 울고 나면 그만이다. ‘왜 나는 울어야만 하는가...’같은 심오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나를 갉아먹는 일은 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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