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레이보다는 까만 빠방, 민트 빠방

늦게 알아도 괜찮아.

by D보노

“저건 벤츠S클래스야. 저건 테슬라야.”

세네살쯤 되는 아이들이 어른도 모르는 차종을 안다고 소리 치는 게 마냥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아이들은 소리를 치고 부모를 본다. 그건 칭찬해달라는 신호다.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나이이니까. 아이를 칭찬하는 부모는 대부분 그 브랜드의 서열까지 알려준다.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그래서 아이들은 값비싼 차들을 우위에 두고 똥차(오래된 차), 국산차(상대적으로 저렴한 차), 경차(작고 저렴한 차) 등의 서열을 자연스레 배운다.


당연히 알아야 할까?

미혼 때부터 생각했다. 자동차 뿐이겠는가. 사는 집과 입는 옷 모든 것이 그러한데… 결국은 모를 수 없는 문제지만 ‘일찍부터 알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뱃속에 보노가 들어서고 부터는 함께 나눌 대화들을 상상했다. 적어도 물질적 가치의 우열을 지나치게 알려주지 않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말을 제법 하는 네살이 되었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민트 빠방이 있어요.”

“그래. 보노가 민트색 빠방 좋아하지.”

“저번에는 빨간 빠방이 있었는데, 오늘은 민트 빠방이 옆에 있으니 기분이 좋아요. 보노는 빨간색도 좋고 민트색도 좋아요.”


보노가 ‘민트 빠방’을 좋아하는 민트색 자동차가 아닌 ‘레이라는 국산 경차’라는 것을 미리 알 필요는 아직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우리는 같은 상황이어도 전혀 다른 결의 대화를 할 수 있다.


어디 북한사세요?

또다른 예로는 우리 가족은 ‘호텔’이라는 말을 안 쓴다. 남편이 숙소 위생을 엄청 따지는 편(덕분에 저는 편합니다만)이라 주로 호텔에서 묵는 편인데, 그 때마다 아이에게 호텔, 펜션 대신 ‘여행집’이란 말을 사용한다. 처음엔 ‘숙소’라고도 말해보았지만 ‘여행집’에 아무래도 아는 말들이 들어가니 더 빨리 이해하는 것같았다. 그 이후부터는 여행에서 머무는 곳은 여행집이 되었다.


이처럼 나와 남편이 경계하는 말들 중에는 물질적 가치를 포함하는 말들이 많다. 돈이면 대부분의 것들이 해결된다고… 돈이 최고라고… 찌들 대로 찌든 내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내 아이에게 일러주고 싶지는 않았나보다.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지독한 제한을 두는 것도 아닌데(외동이라 웬만한 거 거의다 사줌) 말에는 제한을 두려하는 게 모순이기는 하다.


언어는 생각을 제한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물질 만능주의와 닫힌 대화를 미리 배워야 한다면 조금 느리게 가고 싶다. 당장은 벤츠와 테슬라를 아는 아이에게 그것도 모른다며 무시당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미리 배운 것들을 모르면서 배웠던 다른 가치들이 보노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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