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하시면 억울하옵니다.
히트를 친 미드(로 대표되는 해외드라마)들은 절대 한 시즌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시즌 마지막 회에는 다음 시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장치를 심어서 팬들을 대환장 파티 속으로 몰아넣는다. 다음 시즌이 이미 나와 있다면 팬들은 시즌이 끝나든 말든 거침없이 다음 화를 재생하며 밤을 새우고 만다. 미드를 접한 드라마 팬들은 시즌제가 주는 고통만큼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다음 시즌에서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들을 또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충족감, 시즌 사이의 텀 덕분에 매 시즌 안정감 있는 퀄리티의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만족감 등등. 그렇게 미드에 익숙해진 한국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시즌제 드라마를 기대하곤 한다.
“이 드라마도 시즌2 만들어 주세요!”
한국에서 시즌제 형식의 드라마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시즌의 기획만 가져오고 등장인물과 스토리 전체가 교체되었던 <별순검> <궁> <로맨스가 필요해> <응답하라>와 같은 시리즈물은 꾸준히 나왔다. 다만 ‘시리즈’가 아닌 시즌1과 연속성을 갖는 ‘시즌제’ 드라마는 매우 희귀하다. 게다가 우리가 보던 시즌제 미드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왜일까?
한드는 명확한 기승전결과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애초에 미니시리즈로 기획된 한드는 16회의 틀에 맞춰 짜여 있는 이야기다. 1~4회에서는 주요 인물들과 반대 세력 혹은 미스터리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5~8회에 걸쳐서는 소소한 사건(이지만 사실은 반대 세력과 관계된 사건들)이 발생하며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반응이 그려진다. (로맨스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키스신이 한 번 나오기 마련이다.) 9~12회 동안에는 반대 세력 혹은 미스터리의 실체가 드러나며 커다란 갈등, 결국 드라마가 주로 다루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써 갈등을 겪고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13~16회에서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문제를 해결하고 (대체로) 해피엔드-.
즉 한국 미니시리즈는 16회에 딱 맞추어 줄기가 되는 커다란 하나의 사건, 주축이 되는 반대 세력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갈등을 둘러싼 인물의 관계성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캐릭터와 이를 방해하는 악역 캐릭터로 뚜렷하게 나뉘는 것이다. (가끔 여기에 반대 세력에서 우호 세력으로 넘어오는 인물 몇 정도?) <낭만 닥터 김사부>의 경우에도 시즌1에서 ‘도윤완’으로 대표되는 거대 병원 세력과 돌담 병원 의료진의 갈등이라는 큰 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러니 16회에 걸쳐 문제가 해결되고 미스터리가 풀리면 사실상 더 이어질 이야기도, 인물의 쓰임도 희미해진다. 따라서 미니시리즈가 시즌2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캐릭터가 필수적으로 등장해야 하고, 큰 줄기가 되는 또 다른 갈등이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시즌제 미니시리즈의 한계가 나타난다. 시즌1에 이어 역시나 미니시리즈로 기획되는 시즌2는 몇몇 인물이 교체될 뿐, 앞선 시즌과 비슷한 갈등 구조와 비슷한 인물의 쓰임을 보이게 된다는 것. <김사부2>에서는 결국 도윤완이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렇게 시즌2를 맞이한 드라마들이 별로냐? 그건 아니다. <김사부>는 시즌1의 시청률을 이어받아 시즌2도 4회 차만에 시청률 20%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했다. <식샤를 합시다> 경우에도 시즌2까지 화제성을 놓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이 시즌1의 영광을 이어받은 시즌2에서, 또다시 시즌3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봤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식샤를 합시다3> 이 이를 명확히 보여줬다. 시즌3이 흥행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욕까지 먹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역 여성과 로맨스로 엮이는 식샤님의 먹방’이라는 틀이 그대로 이어진 것도 문제였다. 앞 시즌들에 비해 차별적인 흥미를 일으키기 어려웠던 것이다. <검법남녀>나 <보이스> 같은 장르물은 시즌이 거듭되어도 한계가 덜 드러난다. 새로운 범죄는 계속되고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은 늘 새롭고 짜릿하다. 그럼에도 결국 특정한 갈등 구조와 캐릭터 틀을 갖는 한국 미니시리즈의 특성상, 시즌을 거듭하며 기시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흥미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시즌1보다 못하다고 비교되는 시즌 2,3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한계가 시즌제 한국 드라마 전체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한국의 미니시리즈는 한 편의 (16시간짜리) 영화와 같이 기획된다. 여러 시즌으로 이어지는 방식에 적합하지 않을 뿐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살려서 앞선 시즌과 이어지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가진 2탄을 기획하는 것 자체가 작가와 감독에게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에도 등장인물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캐릭터 서사 위주로 시즌을 이어간 <막 돼 먹은 영애씨>나 <청춘시대> 같은 케이스가 존재한다. 시즌1에서 끝내도 되지만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도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드라마들이었다. 최근에는 <킹덤>, <보좌관>, <좋아하면 울리는>처럼 한 시즌 내에서 사건이 일단락되지 않고 시즌을 거듭하며 사건이 전개되는 시즌제 드라마들도 등장하고 있다. ‘16부작 미니시리즈로 기획했는데 흥행에 성공했으니 시즌2까지 해볼까?’의 기획이 아니라 애초에 시즌제를 염두하며 기획된 드라마들이다. 케이블에 이어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까지, 드라마 공급 채널이 많아지면서 드라마의 기획이 다양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는 호평 속에 시즌제 한국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미드는 잘만 하는 시즌제를 한국 드라마는 왜 못하냐고 물으신다면 한국 드라마 팬으로서 좀 억울하다. 권덕은 애꿎은 미니시리즈 붙잡고 시즌제를 외치고 싶지 않다. 대신 시즌제로 기획된 한국 드라마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2020.1.20
by 권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