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
제목과 포스터를 보면 그저 그런 잔잔한 로맨스 드라마 같아 보인다. 잔잔한 로맨스 드라마인 것은 맞지만 그저 그렇지는 않다. 드라마는 대형 사고가 사람들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그 트라우마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말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돌보며 살아가는지, 사랑이 그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은 단순히 눈물 바람의 신파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아프고 갑작스럽게 슬프다.
사고를 다루는 태도
드라마의 중심에는 ‘에스몰 붕괴 사고’가 있다. 붕괴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인물들이 드라마를 이끈다.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면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 문수와 강두, 건물의 설계를 맡은 건축사로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남자의 아들 주원. 하지만 사고는 단순히 “그 자리에 너도 있었어?” 하며 낭만적인 운명을 확인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사고는 트라우마가 되어 집요하리만치 인물들의 일상에 끼어든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맑은 날 하늘을 볼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찰나의 순간에도. 이미 트라우마는 일상이 되고 각자가 견뎌내야 할 감옥이 된다.
“2018년이다, 2018년! 언제까지 10년도 더 지난 일들을 우려먹을 건데!”
사고가 있었던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설 공사가 시작된다. 공사에 사사건건 태클이 들어오자 건설사 재무 이사 정유택은 골치 아파하며 하소연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인물의 일상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사고의 잔해를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일이 10년도 더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드라마는 16화 내내 예기치 않았던 한 사고가 개인의 몸을, 정신을, 일상을 어떤 식으로 비트는지 담담하게 전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
삶 전체에 널브러진 사고의 잔해들은 어떤 운명적인 계기를 통해 삶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인물들에게 남은 상처를 던져 주고 인물들은 아파한다. 대신 동시에 서로를 돌보는 힘을 준다. 상대가 혼자 있지 않게 옆에 버티고 서 있는 의지를 준다. 이 드라마가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지점이다.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드라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대사, 드라마가 보내는 메시지. ‘누구든 옆에서 살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일상이 된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삶을 살아내는 것은 옆에서 보듬어 주고 때로는 채찍질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문수의 엄마가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건 문수의 존재 덕이다. 다리를 다친 강두가 닥치는 대로 이 악물고 살아낸 것은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마마 숙희, 언제나 편이 되어 주는 상만과 마리 덕분이다.
하지만 인물들은 위로하는 역할, 위로받는 역할로 나뉘지 않는다. 위로를 받던 이는 언제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 위로를 하던 이는 언제든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구해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은 망가져 버린 주원에게 함께 있어 주겠다고 손 내미는 것은 다름 아닌 강두다. 엄마를 살게 하는 문수는 친구 원진에게 위로받는다.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죽어버리겠다던 원진을 문수가 지켜주었듯이. 모두들 ‘자기만의 감옥'이 있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며 살아낸다고, 옆에 누군가 있다면 슬픔도 삶을 살아갈 힘이 된다고. 드라마는 어느새 드라마 밖의 나를 위로한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그럼 마치 휴먼 드라마일 것만 같은 이 드라마의 제목은 왜 ‘그냥 사랑하는 사이'일까? 우선 이 드라마는 명확히 로맨스 함유율 99%의 멜로드라마다. 공사를 앞두고 엮인 강두와 문수는 호기심을 갖고 서로 지켜보다 각자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위로한다.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두 인물의 캐릭터와 관계성의 신선함, 그 달달함에 대해 논하자면 소논문도 쓸 수 있다.
“이유가 필요해? 내가 너 사랑하는 데.”
극 초반 주변 사람들은 문수와 강두에게 거듭 묻는다. “둘이 무슨 사이야?”
“...그냥 아는 사이.”
그냥 아는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이가 된 둘에게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너는 걔가 왜 좋아?”
“그냥 좋아. 싫은 게 없어.”
강두와 문수의 대답은 특별할 게 없다. 사고의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라는 처지가 서로에게 위로는 됐겠지만 그건 그들 관계의 일부다. 그들은 낭만적 운명에 취하지 않는다. 사고가 서로의 삶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알기 때문이다. 사고 ‘덕분’인 것은 하나도 없고, '불행 중 다행'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고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눈에 안 보이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됐을 뿐이다.
드라마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한 힘을 주는지 말한다. 인생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만 살던 강두가 문수로 인해 있는 힘껏 행복하기로 다짐하는 것, 언제든 무너질 것 같은 엄마를 일으켜 주며 속을 끓던 문수가 강두의 지지를 받으며 붕괴 사고 추모 공원의 설계를 완성해 내는 것. 둘은 서로를 단단하게 지탱하며 각자의 삶을 치유했을 뿐 아니라 사고로 고통받은 다른 사람들까지 위로하게 된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지켜본 수많은 참사들을, 2014년 4월의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2019년 12월,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의 한 아버지는 죽음을 선택했다.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는 드라마 속 정유택의 외침이 드라마 밖 내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이미 드라마는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참사는 그날로 완료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함께하는 일상이라고. 드라마는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얄팍한 보상 따위가 아니라 한 편이 되어줄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의 아픔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사람'이라는 것을.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배의 모습에서, 주인공들이 먼바다를 내다보는 티저 포스터에서 이미 드라마가 하고 싶은 말은 명확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들을 아무렇게나 내팽겨 치고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어쩌면 그것이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가장 귀하게 건져 내야 할 가치일지도 모른다.
2020.1.31
by.권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