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향한 복수, 그 끝에 남은 것
지난 글에서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를 통해 고래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시선이 바뀝니다. 인간을 관찰하던 고래의 눈은 사라지고, 이제는 인간이 고래를 응시합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 비친 것은 자연의 위엄이 아니라, 그것을 정복하려 했던 인간 자신의 오만한 얼굴이었습니다.
인간은 오랜 세월 자연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다가, 기술의 힘을 등에 업고 점차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꾸어왔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바로 그 오만이 어떤 비극으로 이어지는지를, 깊고 무거운 바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품입니다.
“나를 이슈마엘이라 부르라.”
소설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화자인 이슈마엘은 포경선을 타기 위해 낸터킷으로 향하고, 그 여정에서 식인종 출신의 작살잡이 퀴퀘그와 운명적인 우정을 맺습니다. 두 사람은 선장 에이해브가 이끄는 피쿼드 호에 함께 승선하게 됩니다.
과거의 항해에서 하얀 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는 집요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항해가 시작되자 그는 금화를 내걸며 선원들에게 고래 사냥을 독려하고, 모비 딕과의 재회를 필연처럼 이끌어갑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그의 광기를 막으려 하지만, 복수라는 이름의 항해는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광풍 속으로 흘러갑니다.
오래전 인간에게 자연은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폭풍과 지진, 가뭄과 홍수는 신의 분노로 여겨졌고, 인간은 그것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자연이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아닌,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밑바닥에는 오랜 세월 자연에 짓눌려 살았던 인간의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피조물이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주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인간은 자연의 분노 앞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습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심어준 자연 정복의 희망은, 결국 인간의 오만이 낳은 ‘헛된 용기’였을 뿐입니다.
에이해브 선장을 파멸로 몰아간 근원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축적된 인간의 폭력과 욕망이 그 씨앗이었습니다. 인간은 고래를 쫓았고, 고래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피하거나 반격했습니다. 에이해브는 다리를 잃고, 그 상처는 복수심으로 바뀌어 또 다른 공격을 낳았습니다.
이 복수의 순환은 끝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복수는 복수를 낳고 결국 모두를 소모시킵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애초에 복수심을 품지 않는 것이며, 설령 내가 상처를 입었다 해도 그 고리를 내 선에서 멈추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늘 자신이 피해자로만 남기를 거부하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파멸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모비 딕』에는 두 명의 상반된 리더가 등장합니다. 선장 에이해브는 복수심이라는 불꽃을 품은 채, 선원들을 광기의 여정으로 몰아가는 인물입니다. 반면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신앙심 깊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로, 배의 안전과 이성적 판단을 중시합니다. 그는 끝까지 선장의 무모함을 막으려 하지만, 결국 광기의 열기에 눌려 침묵하게 됩니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인 스타벅의 침묵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질문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이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광기의 리더를 따르는가? 『모비 딕』은 한 인간의 비극을 넘어, 리더십과 집단 심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복수에 사로잡힌 에이해브는 끝내 모비 딕에게 작살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 작살줄에 스스로 얽매인 채 고래의 몸에 묶여 심연으로 끌려갑니다. 그의 최후는 파멸 그 자체입니다. 피쿼드호와 선원들 역시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이 모든 광기를 목격한 관찰자, 이슈마엘만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습니다.
에이해브의 파멸은 단지 한 인간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에 맞서고자 했던 인간 전체의 오만한 도전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저한 경고입니다. 『모비 딕』이 고전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어두운 질문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넘어설 수 없는 운명의 벽 앞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무너진 에이해브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다른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인간의 의지와 운명이 충돌할 때, 어떤 모습이 만들어지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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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