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을 잃는다는 것, 존재를 잃는다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500년 전 사람이 깊은 잠에 들었다가 현대에 와서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이죠.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이뤄낸 과학혁명의 속도를 이보다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비유는 아마 없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울 만큼 발전해 왔습니다. 과학은 상상조차 어려웠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냈고, 그 변화의 속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속되고 있습니다.
먼 과거가 아니라 저의 어린 시절만 떠올려보더라도, 지금 우리는 훨씬 더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대가 없는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집중력’을 도둑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현대인의 집중력이 어떻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들여다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한 길을 함께 모색하는 책입니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스마트폰에 몰입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몸비(Smombie)’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우리는 현실보다 화면 속 세계에 더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중력 저하의 원인을 스마트폰에서 찾곤 합니다. 저자 역시 이 가설을 검증해 보기 위해 섬으로 들어가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합니다. 실험은 섬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지만, 일상으로 돌아오자 다시 예전의 습관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집중력 상실의 원인은 정말 개인의 의지력 부족 때문일까요? 저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문제는 절제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집중력을 훼손하는 진짜 원인은, 절제력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에 있다는 것입니다. SNS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자들의 집중력을 플랫폼에 붙잡아두려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알림’,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같은 기능들은 결국 주의력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된 구조입니다. 사용자 경험(UX)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인지 능력을 철저히 활용하는 방식이 만연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집중력 저하의 원인은 디지털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여러 연구를 인용하며,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부터도 인간의 집중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조명과 수면입니다. 과거의 인간은 태양의 주기에 맞춰 살았습니다. 일출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일몰과 함께 마무리하던 삶이었죠. 그러나 전기 조명의 등장은 밤을 무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면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수면 부족이 집중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와 같은 수면 과학 도서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스트레스에 의한 만성 긴장 상태, 가공식품 위주의 식습관, 단절된 인간관계 등 현대 사회의 구조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우리의 주의력을 침식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집중력 상실은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쌓인 구조 속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집중력 상실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집중력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절제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자극이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집중력을 지키는 일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함께 바꿔야 할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이 책은 집중력을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라고 정의합니다. 주의력은 단순히 어떤 일에 몰입하는 힘이 아닙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돌보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집중력’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중력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은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존재들의 집중력을 빼앗아온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시선과 욕망은 때로 자연을 상처 입히고, 파괴하며,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만들어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한 편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바다를 유영하던 하얀 고래가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상처 입고, 마침내 인간에게 대항하게 되는 이야기.『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은 작품입니다.
우리가 진정 집중해야 할 또 다른 목소리, 바로 ‘자연의 언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지요.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집중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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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