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그 안에는 찬란한 순간도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장면들도 존재했습니다. 역사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라 말합니다. 기억은 상처를 곪게 하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지난 글에서 『징비록』을 통해 안일했던 평화의 끝, 그리고 그로 인해 감내해야 했던 참혹함을 돌아보았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비극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로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입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그날의 광주를 살아낸 여섯 사람의 시선을 통해, 끝내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중학생 동호는 도청에 있는 친구 정배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향합니다. 함께 한집에 살며 의지했던 정배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폭력이 난무하던 도청으로 들어갑니다. 이미 그의 가족은 동호를 데려가려 했지만, 그는 그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 동호는 알고 있습니다. 정배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함께 시위에 나섰던 날, 친구는 군인의 총에 맞아 쓰러졌고, 동호는 겁에 질려 도망쳤습니다. 그날 이후, 죄책감은 동호의 발걸음을 다시 도청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친구를 향한 죄의식, 그리고 도망쳤던 자신의 선택을 직면하기 위해, 그는 참혹한 시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의 총에 쓰러졌습니다. 시민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총을 들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습니다. 총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진실이 그들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 위에는 태극기가 덮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죽음으로 인도한 것은 국가였지만, 그들은 국가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향한 마음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군부는 그들을 ‘폭도’라 낙인찍었고, 결국 ‘북한군 개입’이라는 거짓으로 진실을 묻으려 했습니다.
이념의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은, 비단 그날 광주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광주를 이해하려면, 그 이전의 역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30여 년의 식민지 시대를 끝낸 우리는 어렵게 독립을 이루었지만, 곧바로 분단의 현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북쪽은 소련과 중국과 함께 사회주의를, 남쪽은 미국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며 한반도는 갈라졌습니다.
통일을 위한 김구 선생의 마지막 노력이 암살로 꺾인 후, 분단은 현실이 되었고, 1950년 6월 25일에는 북한의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후로도 ‘빨갱이’라는 낙인은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정권의 생각과 다른 주장은 ‘사상범’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고, 이념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념이란 결국,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바람에서 출발한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면서, 우리는 끝내 총칼을 들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적이 되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적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순간, 사회는 멈춰버리고, 역사는 후퇴합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생각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결코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성이 모일 때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도, 아마 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시선들이 곳곳에 넘쳐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 틀린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나와는 다를 뿐입니다.
이념은 우리가 겪은 많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보면, 그것은 한국만의 비극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나치는 확고한 사상을 기반으로, 유대인을 대규모로 학살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홀로코스트’입니다. 사람의 사상이 사람을 죽였고, 사람의 침묵은 또 다른 죽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잿더미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았던 단 하나의 감정,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를 통해, 죽음이 가득했던 시간 속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던 사랑의 증언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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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