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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유코치 Jul 07. 2023

저기요! 육아는 그냥 힘든 거야.

"저는 육하를 하고 있습니다."

"육아 휴직 중이신가 봐요!"

"아니요! 퇴사하고, 육아를 전담하고 있어요.

  하하하, 육아가 직업인 셈이죠!"

"멋지시네요! 아이가 정말 좋아하겠어요"

"엄마를 많이 찾던데요. 하하하하하"


상상으로 만든 이상적 현실


매일 아침!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 출근하는 아내를 내 품에 안고, "조심히 다녀와요, 사랑해"를 전한다.

사랑스러운 아이와의 아침식사! 아빠와 아들은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햇살이 참  좋은 어느 날! 아들을 유모차에 태운 아빠!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로 한잔을 유모차에 매달고 산책한다. 따듯하고 포근한 바람, 아빠의 사랑을 받는 아이! 새근새근 잠든 아이와 함께 동네 한적한 카페에 들러 향기 좋은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책을 읽는다.

이렇게 아빠와 아들은 서로의 삶에 조금씩 물들어 간다.


괴리에 직면하다.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고 했던가???

이상은 현실에서 이루기 쉽지 않다고 했던가???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고 했던가???


아이가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상상으로 만든 이상은 무너졌다.

매일 밤 두, 세 번씩 일어나 분유를 주고, 칭얼대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나도 모르게 그대로 잠을 잔다.


낮에 산책은커녕,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특별한 노동이 아닌 것 같던 아기띠는 허리에 무리를 주어 2020년 디스크 판정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손목은 시끈 시끈, 만성 피로와 두통, 소화불량은 지속되었다.


아이의 낮잠시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여러 가지 물건과 옷가지를 정리한다. 설거지며 청소등의 집안일을 한 후 아이 젖병을 소독하고 빨래를 돌린다.


그 순간 방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조건 반사적 행동으로 아이 방문을 열면서 “우리 하민이 일어났어? 아이고 잘했네”

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아직 빨래 정리도 못했는데,

사이버대학 강의 영상도 봐야 하는데, 벌써 일어난다고? 이제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100일도 안된 아이를 억지로 유모차에 태운다.

유모차에는 아기 짐이 한가득, 동네 카페라도 들려 차 한잔 마시려 해도 시끄러운 건지, 낯선 건지 연실 울어 재끼는 아이를 데리고 테이크 아웃 커피 한잔!


산책이라도 하려 치면 갑자기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길가 벤치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래며

"하민아, 이제 집에 가자” 하면 방금 전까지 울던 녀석은 새근새근 잠에 빠져든다. 집으로 가면 혹시 잠자는 녀석을 깰까 봐 나는 그냥 벤치에 앉아 멍 때리기를 한다.


저기요! 육아는 그냥 힘든 거야.


“갓난쟁이 때가 제일 쉬워 더 커봐 얼마나 말을 안 듣는데, 지금이 좋은 줄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이 말을 하던 친구 녀석을 한 대 치고 싶었다.


“넌 니 새끼 50일, 100일, 200일, 300일 날 아침에 출근하고, 야근하고, 회식하고 했잖아.

물론 사회생활 힘든 거 나도 알지 24살부터 38살까지 나도 사회 생활 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차라리 24시간 일 만하라고 하면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친구는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주입시키려 개똥철학을 펼쳤다.


육아의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

마치 나라는 사람을 매일 지우개로 지우면서 그 공간에 아빠라는 역할과 책임감을 집어넣는 것 같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문하고, 한쪽 다릴 꼬은 자세로 앉아 책 한 줄 읽는 소소함이 절실하게 그리웠다. 단 10분 아니 1분만이라도 [주제:나]를 이야기할 사람과 공간이 무척 그리웠다.


그때 친구가 나에게

"아기 키우는 거 힘들지 않아? 힘들지? 조금만 참고 버텨봐 지금은 버티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 너 자신을 꼭 챙겨, 아빠가 건강해야 아기도 건강한 거야!”

이런 말을 해줬다면 나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얼마 전 친한 동생이 아빠가 되었다.

곧 그 동생을 만나게 될 텐데

“그맘때는 다 그런 거야! 나 때는 말이지”

“지금은 이런 것들을 해야 하고,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해”

이따위 말이 아니라,


”요즘 어때? 힘들지 않아"

“회사 생활, 퇴근 후 육아까지 힘듦을 이겨내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빠가 되니 어떤 마음이 들어? “

공감과 위로의 말을 먼저 해야겠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몇 가지를 찾아냈다.

나의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 경험만을 바탕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않겠다는 것,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 먼저일 때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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