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1980년대 초반 할아버지, 할머니의 과수원을 향해 시골 버스는 달려갑니다. 한 살 터울의 형과 나는 주말만 되면 비포장 길 위에 있습니다.
달리는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과수원으로 달려갑니다.
과수원 가는 길 버스 앉아 졸다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 시절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버스는 장꾼들과 짐으로 가득합니다.
떠들썩한 버스... 그 시절은 그랬습니다.
시골 농촌의 풍경 특히 가을날 저녁 시골집 마당 풍경은 너무나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과거 전원일기 드라마를 연상시키듯이 동네 이웃들과 저녁을 먹고 앉아 아직 여름이 가지 않은 날 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함께 모여 앉아 흑백 TV를 보던 모습(80년대 초반 아직 컬러 TV가 많이 보급되기 전 그랬습니다) 수신이 되지 않으면 지붕에 있는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서 보던 시절..(기억하시는 분들 있으시겠죠) 그 시절의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입니다.
과수원집에 도착하면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 은 마중물...
더운 여름날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 시원함이란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그리고 마당에는 흰털이 복스럽게 많아 ‘곰이’라 불려지던 강아지가 우리를 반깁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반기는 분은 할머니셨죠. 9남매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할머니...
거친 노동에 지쳐 땀을 많이 흘린 얼굴에 휘어진 손가락...
그 노동의 무게에서도 손자들을 보는 자애로운 눈빛, 손자들의 오는 날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반겨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다음날 과수원의 아침은 항상 할아버지와 함께 ‘국민체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체조가 끝이 나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할머니의 밥상...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면 할머니의 밥상을 잊을 수 없겠죠.
그 밥상에는 할머니의 내공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아궁이 불 지펴서 만들어낸 밥과 밑불에서 만들어지는 구수한 된장과 석쇠에 굵은소금을 뿌려 구워져 나오는 고등어구이, 두부구이, 멸치볶음 등. 시골밥상 한 상이 차려집니다.
시골집에서 보는 아주 소박한 밥상이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성이 가득 담긴 최고의 밥상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수라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부럽지 않은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찾아보려 하지만 어디에도 애정이 가득 담긴 맛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맛을 낸 값비싼 노동의 훈장인 휘어진 손가락과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실 때 그 시절로 이제 돌아갈 수 없음이 아쉬울 뿐입니다.
2018년 추석을 지나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
당시 울릉도에서 생활하고 있던 나에게 안타까운 비보가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할머니가 가시는 마지막 길 얼굴도 뵙지 못하고 보낸 손자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탄 배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달릴 때 마치 어린 시절 비포장 길을 달리던 버스에서처럼 할머니에게 달려가는 예전의 기억을 회상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