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緣廻(연회) — ‘인연이 돌아오다’)
소록도로 돌아오다
7화. 소록도로 돌아오다
새벽까지 달려온 기차가 멈춰 선 곳은 처음 들어보는 지명, 장성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새벽 세 시, 병력 수송용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저녁도 굶은 채 내달려온 기차의 진동이 아직도 다리에 남아 있었다.
배고픔도, 피곤함도 느껴질 겨를이 없었다.
좌석에 몸을 기대자마자 그대로 잠이 쏟아졌다.
흘러나오던 라디오 속 노래가 유난히 쓸쓸하게 들렸다.
“니가 없는데도 해는 뜨고 또 지고, 창넘어 세상은 하나 변한 게 없어…”
임창정의 ‘그때 또다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둠이 내린 9월의 어느 새벽 밤
가사는 마치 내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쳐버린 마음 위로 흘러들던 멜로디가 이상하게 아련했다.
노래 한 구절에도 청춘의 무게가 스며드는 시절이었다.
버스는 그렇게 낯선 새벽을 뚫고 달렸다.
때마침 추석 연휴가 겹쳐 자대로 내려가지 못하고,
낯설고 낯선 곳에서 열흘을 더 대기해야 했다.
그 열흘이 어찌나 길고 막막했던지,
시간이 멈춘 듯 흐르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는 드디어 자대로 향했다.
어딘지도 모를 지명을 따라 달리는 군 수송 트럭 창밖으로
논과 밭이 지나가고, 어느새 바다와 갯벌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고흥.
같이 전입 온 동기들은 여섯 명이었다.
부대는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장병들은 개인 정비를 하거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당직 장교의 안내를 받아 대대 상황실로 들어가 전입 신고를 마쳤다.
그때였다.
“뒤로 돌아!”
복명복창과 함께 몸을 돌리자, 벽면에 걸린 커다란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당직 장교가 말했다.
“앞으로 너희들이 지켜야 할 소중한 곳이다. 잘 보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지도 속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비로 ‘소록도.’
불과 두 달 전, 자원봉사로 다녀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옷만 군복으로 갈아입었을 뿐,
나는 다시 그 섬 앞에 서 있었다.
이런 운명이 또 있을까.
군 생활의 시작이자, 인생의 또 다른 인연이 그곳에 있었다.
왠지 모르게 두려움보다 감사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누군가 나를 이곳으로 이끈 건지도 몰랐다.
이후 본격적인 자대 생활이 시작됐다.
낯선 환경과 선임들 속에서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사격을 좋아하던 중대장 덕분에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사격을 했다.
팔꿈치와 무릎이 까지는 PRI훈련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총성과 화약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마치 야시장에서 인형을 맞추던 어린 시절의 놀이처럼 느껴졌달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상병 계급장을 달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꼬박 1년.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휴가를 나가지 않았다.
한 번쯤 내 인내심의 끝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1년 만에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규정상 더 미루어둘 수가 없는 것이 정기 휴가였다.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복무지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아득한 여정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침 5시 30분, 당직 장교의 배려로 점호 전 휴가 신고를 마치고
순천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1년 만에 맡아보는 자유의 냄새 같았다.
순천 터미널에 내려 선임과 함께 뜨끈한 콩나물해장국에 아침부터 소주 한잔들 곁들였다.
아침부터 마신 소주 한 잔의 짜릿한 느낌은 목젖을 타고 장까지 직행하는 것처럼 내려가는 느낌이 어쩌면 해방구로 탈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대구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있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어쩌면 아직도 군인이자 청춘이었던 나 자신을 느꼈다.
대구에 도착해 다시 고향행 기차를 탔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공중전화를 통해 부모님께
“곧 도착합니다.”라는 한마디를 전했다.
무려 12시간 가까이 달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고향집 대문 앞에 섰다.
식사도 미뤄둔 채 기다리던 부모님이
마당 끝까지 달려 나와 나를 맞으셨다.
그 순간,
나는 군인이 아닌 아들이자 청춘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