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IMF의 그림자 아래서
시대의 그늘 아래, 한 청춘이 서 있던 자리
1년 만에 나선 첫 휴가였다.
오랜만에 군복을 벗어던지고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췄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듯했다.
IMF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군대라는 작은 섬에 있던 나는 제대로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유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는 사실만이 나를 깨웠다.
고향에서 마주한 부모님과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없이 흐르는 따뜻함이 있었다.
집 앞 풍경, 성당 신부님의 인사, 동네 어른들의 환한 얼굴은
마치 시간이 과거로 잠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전역하면 신학교 다시 준비할 거지?”
누군가의 그 말이 오래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생각을 깨웠다.
한때 나를 강하게 흔들었던 ‘사제의 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휴가 복귀 전 들렀던 대학 캠퍼스는 방학이라 적막했지만
그 적막 속에서 오히려 내 젊음의 잔향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과의 짧은 인사, 지나가는 말처럼 듣게 된 헤어진 여자친구의 근황.
“너를 기다리겠다며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다더라.”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뒤돌아서며, 참 못난 사람이었다는 사실만 똑바로 마주할 뿐이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들을 마음 한쪽에 고이 접어 넣고 나는 다시 부대로 돌아갔다.
겨울이 지나고 99년의 봄이 왔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해도 간다.”
선임들의 농담처럼 내 시간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전역일이 가까워질수록 ‘사회로 돌아간다’는 말의 무게가 조금씩 실감 났다.
군 생활 속에서 배운 단순한 진실이 하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분은 학생이라는 것.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곳에 있으니, 그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심리학 책을 틈날 때마다 펼치며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려 애썼고
전역 후 복학을 위해 마지막 휴가도 아껴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IMF의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 집의 문턱까지 깊게 드리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 휴가 학교에 들러 복학 신청을 한 후 내려간 집에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아버지의 달라진 표정이었다.
불안과 초조, 설명되지 않는 침묵.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신협이 부도 처리되었다는 사실.
그 한 문장이 우리 가족의 삶을 뒤흔들었다.
채권자들의 방문, 사라진 채무자들, 집 안 가득 쌓여가는 정적 같은 무게.
“당분간 이 집을 떠나자.”
결국 부모님은 결정을 내렸다.
부대 복귀를 이틀 앞둔 날,
아버지는 속초 고모집으로, 어머니는 영동 이모집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가족이 한순간에 해체되는 기이한 현실.
어머니와 나는 외삼촌의 봉고차를 타고 어둑한 동네를 빠져나왔다.
새벽 바람은 여름이었지만 유난히 차가웠다.
그 바람이 내 마음속 두려움과 닮아 있었다.
이모집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다시 부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마치 껍데기만 남은 사람이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
“지금 전역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해 부모님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려야 하는가?”
전역을 일주일 앞두고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흐릿한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마지막날이 왔다. 1999년 9월 30일
나는 결국 하나의 길 “그래도 복학하겠다.”는 선택을 전역을 했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시 살아볼 힘이 생길 것 같았다.
전역하던 날, 나는 고향이 아닌 학교로 곧장 향했다.
돌아갈 집이 없었으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학교였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잠만 자고, 아침 6시 도서관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들어갔다.
밤 11시 도서관이 닫히면 그제야 방으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예식장 식당으로 일하러 갔다.
무쇠 밥솥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12시간 넘게 음식을 나르는 일.
손에 쥐는 일당 3만원.
그 돈이 한 주의 생활비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따뜻했다.
일할 수 있다는 것,
공부할 수 있다는 것,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하루를 버티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그때 나는 비로소 배우고 있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누구와 경쟁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나와의 싸움, 그리고 세상과 마주 서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잡을 수 없는 시간 앞에 마주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