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르바이트, 청춘의 또 다른 이름

가난이 밀어낸 자리에서 시작된 청춘)

by 꿈의복지사

군에서 학교로 돌아온 뒤, 마음 한편에 오래 눌려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풀려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살아낸 시간을 이해하게 되자, 자연스레 내 청춘의 자리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처럼 살아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돌볼 틈 없이 버텨낸 시간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IMF…

집안의 균형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시대를 견디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막 성인이 된 나에게 찾아온 책임은 벅차기만 했다.

먹고 살기 위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나는 ‘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부모의 그늘 아래 자라온 온실의 화초 같은 나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도 몸으로 부딪히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학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주말에 서 있던 예식장,
한여름 열기가 그대로 내려앉던 논바닥의 비닐하우스 건설 현장,
명절이면 고향보다 먼저 뛰어야 했던 새벽 시장의 시간들.

설을 앞둔 새벽 네 시,
차가운 어둠 속에서 명절을 준비하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손이 얼어붙도록 움직여야 했다.
등에서는 김이 오르고 손끝은 시렸지만, 내 안에서 움츠러든 마음이 더 시렸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섞는 일조차 어색했던 시절,
좌판 위에 가래떡을 진열하고
“가래떡 한 개 삼천 원! 두 개 오천 원!”
힘껏 외쳐야 했던 그 순간이 어찌나 부끄럽고 어려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풍경이 결국 내 청춘의 배경이자 생존의 자리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었는지.

그저 해야 하니까 했고, 넘어지면 안 되는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힘듦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의 노동이 내일로 이어질까?
이 길 끝에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고
나는 불안을 숨기기 위해 더 바쁘게, 더 치열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 시절 나를 가장 잘 이해하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보내던 응원은
말 한마디 없었지만 가장 큰 위로였다.
그때 알았다.
침묵에도 온기가 있다는 것을.

하루 노동 끝에 남는 것은 지친 몸과 얇은 봉투 한 장뿐이었다.
하지만 그 봉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책임이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했고, 두려워도 부딪혀야 했고, 모자라도 스스로 채워야 했다.

아르바이트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나를 키운 또 하나의 학교였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을 배웠고, 세상을 배웠고,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 배움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고 오늘의 나를 조용히 떠받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버틴 청춘의 나날,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20대 청춘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던 시절.

세상은 Y2K를 걱정하고 모두가 새로운 세기를 떠들썩하게 맞이하던 그때—
나는 여전히 하루에 치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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