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작가는 죽음을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알지 못하는 ‘무지’**라고 정의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전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2020년을 배경으로 한 한 만화를 보며 *“과연 그때의 나는 살아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의구심은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모르고 성현들 또한 알지 못한 것이 죽음 이후의 모습이다. 경험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우리는 과연 그것을 두려워해야 할까. 주루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은 생과 사의 경계이지만, 그 너머에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아니면 죽음 이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인지조차 우리는 모른다. 알 수 없기에, 두려워해야 할 이유 또한 분명하지 않다. 그렇기에 작가는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기보다, 어떻게 죽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고.
‘죽어간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일과(日課)다. 죽음이 삶의 마침표라면, 죽어가는 과정은 그 마침표에 이르기까지 써 내려가는 문장이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죽어가는 것은 곧 인생이고, 인생은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즐겁게, 행복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 뒤에 남겨질 사람들과의 이별이 더 아쉽다.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을 대신 겪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그 슬픔이 덜 아프도록, 살아 있는 동안 좋은 기억을 충분히 남길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를 묻는 일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애틋한 존재로 기억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 문득 이런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평범함이야말로 진짜이고, 행복이고, 또 기쁨이라는 말.
나는 영혼이 재미있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이 책이 말하는 ‘잘 살아간다는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는 태도일 것이다.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삶을 더 사랑하라고 말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