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디까지 가지고 놀았니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
나는 책 욕심이 많다. 보통 ‘책에 욕심이 많다’고 하면 다독가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소장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책과 관련된 욕심을 세 가지로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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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책을 많이 읽는 다독(多讀)
둘째, 책에서 얻은 지식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많이 쓰는 다작(多作) — 집필이라고 해도 좋겠다.
셋째, 읽지도 않으면서 책장을 가득 채우는 과소비
나는 그중에서도 세 번째, ‘과소비’에 가까운 사람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매년 연말 온라인 서점에서는 1년간 구매한 책의 수량과 금액, 그리고 구매율 상위 00%, 심지어 구매한 책의 두께를 합산 높이가 얼마나 되는 등등을 알려주는 이벤트까지 있다.
“내가 다른 것도 아닌 책에 과소비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경쟁하듯 구매하다 보니 상위 5%에 구매자에 들어가더라. 다독이나 다작의 5%가 아닌...
좋은 버릇인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읽고 싶은 책을 검색하고 책의 구성 내용을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는다.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내 서점 3곳을 돌며 죽치고 앉아 미리 검색해 두었던 책을 찾아서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구매를 결정할 때는 가독성을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물론 그렇다고 책을 전시용을 두거나 장식용으로 두려고 구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알아주면 좋겠다.
지금 하나씩 정리하면서 글도 쓰고 있으니, 조금의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제는 밖으로 보이는 성과가 아니더라도 책을 보면 머릿속에 넣고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그저 연습생 같은 수준의 흥얼거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며 오롯이 내 생각을 끄집어내는 시간이 되어 좋다.
그리고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은 흔히 두 분류로 나눈다.
양서(良書) — 사람을 이롭게 하는 책
악서(惡書) — 읽을 가치가 없는 책
나는 책이라 하면 양서와 악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서가 되고 악서가 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이 가진 주관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책에 담긴 내용의 쓰임이 달라지는 것이고, 출판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내용상 “양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출간했다.” 생각한다.
그러니 무엇이 좋은 책이고 나쁜 책이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두었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양서와 악서는 따로 없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읽기 전과 읽은 후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이는 책”
“새로운 관점을 안겨주는 책”이라고 했다.
읽기 전과 읽은 후 달라진 세상을 보이게 하는 것은 양서나 악서 모두 해당한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을 안겨주는 것 역시 모두 해당한다. 그러니 옳고 그름에 문제는 사고의 차이일 뿐 부정적인 메시지와 에너지를 심어주는 책이더라도 분석과 판단을 통해서 반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그 역시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사야 할 책이며, 기록해야 할 책이다.
단지 사고 읽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하나씩 기록하고 쓰는 책으로 나아가 보자.
그것이 진짜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