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종이에 찰나를 눌러 담다.

기억의 온도를 기록

by 꿈의복지사

매 순간 마주치는 장면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다 보면 단조로운 일상도 어느새 글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불쑥불쑥 나타날 때 나는 분주해진다.

한순간 번뜩 떠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릴까 봐, 손은 바빠진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나는 집중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 찰나의 몰입이 나에게는 짜릿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흩어지는 영감을 놓치지 않는 순간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한다.

그래서 글을 정리하기 전에는 노트북이나 휴대폰보다는 다이어리를 활용한다.

물론 다이어리가 없을 때는 휴대폰의 메모 기능을 이용하지만, 영감의 대부분은 다이어리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 담는다.

그렇게 남겨진 기록들은 배고플 때 곡간 창고서 배고플 때 꺼내 먹는 곡식처럼, 언젠가 다시 꺼내 사용하는 소중한 자원이 된다.


어쩔 때는 낙서하듯 써 내려간 글들이 무슨 글자인지 나중에 알아보기 힘들어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차분하게 기록했으면 이런 불상사는 없을 텐데.’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실수조차도 나만의 기록 습관이 되었다


나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찰나의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급하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방금 생각난 글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누가 보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우스갯소리지만 마치 꿈에 조상님이 번호 여섯 개를 불러주고 홀연히 떠나고 난 뒤 깨지 못해 후회하는, 그런 개꿈 말이다. 바로 일어나 숫자를 적었다면 ‘1등이었을 텐데.’하고 웃어넘기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런 아쉬움이 어쩌면 글쓰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침대 옆에도 다이어리를 두고 잔다.

누워 있다가 떠오른 단어, 문장, 김정들을 바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글쓰기가 삶의 일부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내 방식의 숨쉬기가 되었다.

오늘은 저녁 바람이 좋아 일찍 저녁을 먹고 밤마실을 나왔다.

동네 저수지 벤치에 앉아 조용히 바람 소리를 듣는다.

이 시원한 바람 소리를 글에 담아 볼까?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저수지의 잔물결을 글에 옮겨 볼까?

쓰고 싶은 소재가 많아 어떤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행복한 고민이다.

물론 막힘없이 쓰이는 것은 없다.

요즘은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책을 보면서 글을 쓰고 싶어 하고 글을 쓰면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한 번에 하나만 할 수 있어 멀티가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어리석음에 반증이다.

이건 분명 중독이다. 그래도 술이나 담배가 아닌, 글에 중독된 거라면 다행이지 않을까.

이제는 집에 돌아가 오늘 하루 지나간 것들을 다시 펼쳐 기록해야겠다.

살아가는 곳에서 보이는 사물, 단어 하나하나가 이렇게 나의 감정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순간들이 현실이 되고,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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