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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여사 Mar 27. 2024

한인 미국 이민 역사

  뭐 역사까지 자세히 공부해 보고자 한 것은 아니고, 생각보다 한인의 미국 이민 역사가 긴 것을 최근에 알게 되어, 여러 경로로 알게 된 정보들을 몇 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학교 다닐때 사회 역사 과목을 아주 좋아했어서, 역사라 하면 좀 지식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생각보다 아는 것이 없다. 

 지난해  6월 3박 4일의 샌프란시스코 출장이 끝날 즈음의 금요일, 가족들이 샌디에고에서 날라와 조인해서 같이 샌프란에서 한 3시간 거리의 요세미티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좋은 한인 가이드분을 만나 재밌는 미국 내 우리나라 역사 및 유명한 몇몇 분들의 역사를 듣게 되었다.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역사의 뒷 이야기인지라,  역사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가 방문하는 장소에 대한 가이드 투어를 해 주시는 분이니깐 가능한 것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가이드님이 이야기해 주신 내용을 공유하기 전에,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서 이민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간단하게 조사해 보았다.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본격적인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파인애플과 설탕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하와이에 도착한 1903 년 부터란다. 1905 년까지 7,000 명 이상의 한국인이 기근과 한국의 격동적인 정치 환경을 피해 하와이로 갔는데, 이들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본토(미국)로 이주하여 세탁, 네일 샵 등 사업을 시작하고 나머지 반은 귀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1924 년에  아시아인  이민 금지법을 통과시켜 이민 역사가 여기서 끝이 나나 했으나, 이민을 아주 열심히 받아들인 나라로 미국을 인식하고 있던 나로서는 차별이 대 놓고 있어서, 요 부분이 조금 놀라웠다!,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 전쟁 (1950-1953) 동안 약 15,000 명의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아 슬픈 현실…… 1952 년에 맥 캐런과 월터 법은 1924 년 아시아인 이민 금지를 무효화하고 아시아 인이 시민권을 취득 할 수 있도록 했기에, 전쟁이 끝난 후 미군의 한국인 아내, 미국 가족이 입양 한 전쟁 고아 등이 미국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해 그 수가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1965 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이민 및 귀화 법은 국가 이민 할당제를 폐지하여 이후 한인 이민자의 수가 상당히 증가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한다.  이어, 60~80년대 초까지는 한국의 국내 경제,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한인 2 세대로 알려진 그들의 자녀들은 현재 한인 사회의 주요 구성 요소로 활약중이다. 이전 이민자들과는 달리 60년대 이후 한인의 미국 이민은, 주로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가 누구인지 아시는 분? 

내가 아주 얕은 지식을 가지고는 있어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이분이예요 라고 맞추었다. 

우리가 독립신문 창간자라고 알고 있는 서재필선생이 그 답이다. 1885년 서재필선생이, 갑오개혁 실패이후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서, 고종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망명한 것이 한국계 미국인의 시초이며, 서재필 선생님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부두노동자로 하역일을 하고 밤에는 기독교 청년회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필라델피아에서 의대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되면서 한국 최초의 미 시민권자 1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놀라운 것은 처음 도착한 항이 LA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였다. 당연히 LA에 한인이 많다 보니 나름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마도 1900년 대초 미국으로 가는 갤릭호 노선이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일본,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도착을 해서 일 것 같고, 서재필선생은 물론 도산안창호선생까지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샌프란시스코에 가장 먼저 도착해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샌프란시스코에는 안창호 선생이 설립자로 등재된 상항 연합감리교회가 아직도 건재하다. 현재 주소는 ‘3030 주다 스트리트(Judah St), 샌프란시스코(SF), 캘리포니아(CA)’이다. 

  그런데, 왠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에 왠 독립문? 

가이드 님이 몇몇 지역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 중 하나 너무 기억에 박힌 곳은 리들리시라는 곳이다. 요세미티 가는 길에 (돌아가는 길이라) 들를 수는 없었지만 리들리시(Reedley) 에는 한인 이민 1세들이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독립 자금을 모은 곳이라 의미가 다르며, 그걸 기리기 위해 세운 리들리 독립문은, 1897년 한국에 세워진 독립문 원형을 4분의 1로 축소한 14피트 높이로, 한글 현판 '독립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독립문 모형은 애국기념비(Unity Gate)'로 명명된 화강암 독립문으로리들리시 랜드마크로 새롭게 자리잡았다. 앞, 작은 광장에는 이승만, 안창호, 윤병구, 이재수, 김종림, 김호, 한시대, 김형순, 송철, 김용중 등 애국지사 10인의 기념비가 두 줄로 세워졌고. 비석 앞 뒤로는 사진과 함께 연혁, 애국활동 등이 영문과 한글로 빼곡히 적혀 있다고 한다. 독립문과 기념비는 미주 한인 최초 백만장자이며 애국지사인 김형순씨 자택 및 이 분과 동생분이 만든‘김 형제(Kim Brothers) 상회’가 위치했던 인근 공원 163평 부지에 건립 되었다고 하니 중부 캘리포니아를 가게 되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사진출처 :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00113/1290156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제 치하 우리나라 땅에서 독립 운동이 어려워지면서 만주나, 상해로 많이 이동해서 독립 운동가들이 활약을 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역만리 미국 땅까지 진출해 독립 운동 자금을 모아 여러 활약을 해 온 내용들을 들으면서, 조국은 잃었지만 우리 힘으로 일제에 맞서려던 당시의 눈물겨운 노력들이 눈앞에 선하다.. 가슴이 메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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