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게 가능해?"
엊저녁 나름대로 부지런을 떨어 저녁식사를 30분정도 일찍 마치고 소파에 두 딸과 늘어져 있었다. 큰 아이의 갑작스러웠지만 어른스러운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나는 안돼. 엄마! 성경 말씀처럼 안돼. 불가능해. 그런 내 자신이 어떨 때 못되게 느껴지는데 어쩔 수 없어."
솔직한 답변이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불가능을 믿음을 갖고 가능으로 넘어서도록 하시는 말씀이기에 늘 인간의 불가능의 편에 서있다.
"안돼. 절대로 안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것이지만 그 말씀에 걸려서 넘어지기라도 해야 그 못된 마음이 멈출 때가 있게 되니까 말씀을 하신거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니까 그런 말씀이라도 알아서 그렇게 안하려고 노력이라도 하는거지."
그렇다. 인간으로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외모와 학벌, 입고다니는 옷이며 금은 팔찌, 타고 다니는 차, 어디에 사는지 어느 아파트 주민인지 등등 얼마나 겉추장스러운 것들로 감춰진 속내에 관심을 끄고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지 모른다. 숱하게 당하고 또 당해봐야 알 것도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허황된 것들에 눈과 귀가 속아버리고 만다.
박대리는 사표를 냈다. 건들거리는 상남자의 역설, 맵찔이이자 쫄보 박대리. 몇 주 전, 갑작스럽게 연차를 내고 친척 장례식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같이 일 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화를 내는 적도 짜증을 한 번 낸 적도 없었다. 내가 실수를 해서 누락한 품목이 있어도 웃으면서 넘겼다. 그 성격으로 보아 구태여 내 허다한 작은 실수들을 지적하려 들려 하지 않았을 것 같고, 그래서 나한테 말하지 않고 넘겼을 여러 번의 덮어줌도 있었을 것 같다. 나이가 많다고 우습게 보지도 않았고, 주임님하며 꼬박꼬박 존댓말에 모르면 모르는대로 자상하게 잘 가르쳐주기도 했다. 귀찮았을 것 같지만 부탁도 질문도 늘 한결같이 젠틀하게 대답해주었고, 점심시간이면 한식뷔페 이모님들한테 인사도 시원시원하게 잘 했고, 늘 맛있게 그리고 감사하게 밥도 잘 먹었다.
"대리님! 서운하지 않아요?"
"서운하죠."
"잘 돼서 가는 거죠?"
"음.... 그렇죠."
"가족회사에 일 배우러 가신다고 들었어요."
"네. 와이프 일 안하게 하고 싶어서요. "
"멋지네."
"처 자식 먹여 살리려면 많이 벌어야죠."
박대리의 결심은 이해할만했다.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고졸에 영업사원으로 몇 군데 다녔지만 그다지 월급이 많았을 것 같지 않았고, 올해 초 결혼한 신혼이기는 하지만 아이를 기르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리라는 건 40대 중반의 눈치빠른 아줌마의 연륜으로 계산기 두드려보면 딱 알 수 있는 거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두 개 뛰는 게 낫겠어요. 돈이 정말 안돼서요. 혼자 살면 여기만한 직장도 없죠. 회사 사람들 중에 모난 사람도 없고, 일도 별로 어렵지 않고, 대표님도 젊어서 회사 분위기도 자유롭고..... 그런데 처 자식 있으면 많이 버는 게 더 좋으니까요."
아내가 임신이 늦어진다고 걱정을 했었다. 공주님 한 명만 키우고 싶다고, 그렇게 딸 하나 낳기를 소망하고 있는데 생각대로 임신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내 분은 병원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소싯적 대학병원 밥을 조금 먹어 본 나로서 최상위 서비스 기관인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에 불임환자들이 많다고 들어서 아내 분이 임신이 잘 안되는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잘 생각했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이 벌어야지. 많이 벌 수 있는 기회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맞지. 대리님! 나는 응원해요. 화이팅!"
동갑내기 사장은 영업사원의 퇴직 사유보다도 거래처에 지장을 줄까 싶어 박대리가 몇 달 전부터 일을 안하고 있었다고 속상한 속내를 원망으로 돌리려 했다. 서류를 포함한 행정일을 하기 싫어하는 박대리가 시키는 일을 제대로 안하고 있었다고 흉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퇴직을 앞둔 직원이라해도 회사를 위해 2년동안 일을 했는데 나같은 일개 입사 1년차도 안된 직원 앞에서 흉을 볼 일인가 싶었다. 평소에 직원이 다 고졸이라니 어쩌니 하면서 괜한 자격지심에 푸념처럼 얘기할 때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동감내기 사장과 같은 위치에서 박대리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적이 있어 괜시리 미안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평상시 워낙 건들거리는 모양새에 얼마 전 들은 얘기로 바텐더로 일을 했었다더라 하는 이력도 들으니 괜한 무식이가 발동을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박대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무식한 색안경을 끼고 나니 보이는 게 죄다 의심스러웠다. 내가 누락했을 리 없는 고가의 품목이 누락되어 그 품목을 챙겨 나간다고 했을 때, 나의 실수를 인정치 못하고 박대리가 어디다 물건을 팔아 먹고는 저러는가 싶어 의심을 했었다.
외모지상주의나 학벌로 그 사람의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보이는게 다 인것 같은 이 세상이 각박한 이유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보고 편견을 가져버린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길이 없다. 그래서 이쁘고 봐야 할 일이고 배우고 봐야 할 일이라 하지만, 그게 어디 타고나지 않으면 가능이나 한 일인가 싶다. 물론, 타고나지 않았어도 돈의 힘을 빌어 또는 의학의 힘을 빌어 매력적인 외모를 갖을만하게 노력할 수도 있고, 공부도 어느 정도하여 능력을 갖추어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학벌이란게 성실성의 증명이기는 해도 도저히 그 쪽으로 삶의 방향을 틀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렇다고 그게 착하다 나쁘다 잘못이다 맞다를 따질 수 있는 기준은 아니지 않은가.
불혹에 들어서니 삶에 대한 이해도가 참으로 높아져 뭐든 정답이 없는 인생에 상당부분 동의하여 성숙이라 부를 수 있는 판단을 아주 가끔 하게 되어도 대부분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은 이론에서 벗어나기 힘든 미성숙한 나와 마주한다.
"대리님! 힘내! 응원한다."
"감사합니다!"
씩씩하고 성실하고 자상하며 친절했던 박대리와 더이상 같이 일할 수 없음에 아쉽고, 그런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만으로 가득찬 편견으로 그를 의심했던 시간에 대해 미안하며, 내 딸에게 이상적인 크리스찬으로 행동치 못했음에 부끄럽고, 그런 나를 한결같이 잘 배운 사람이라며 존중하며 대해준 겸손한 그에게 감사하다.
박대리가 남긴 '이상적인 인간다움'이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