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

by MAMA

한 여름 새벽녘.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눈, 제 멋대로 뻗친 머리, 찌뿌둥한 몸, 안경을 더듬더듬 찾아 옷을 주섬주섬 입고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는다. 매우 매우 느린 달리기 2주차.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올 때까지는 걷는다. 숨을 깊게 쉬고 나름대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뻐근한 어깨와 목을 푼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면 공원으로 연결되는 오르막이 나온다. 오르막 옆 야트막한 언덕에는 이름모를 들꽃이 자란다. 어제보지 못한 연노란 꽃잎의 산들거림에 시야를 뺏기고 만다. 습기에 마실 나왔던 지렁이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잠이 덜깬 고양이도 보인다. 이른 새벽부터 수다스러운 새들의 대화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걷기 시작한다. 다다른 오르막 끝자락, 공원이 보인다. 축구장에는 조금 더 부지런한 한 두명의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나와 트랙을 돌면서 미리 몸을 풀고 있다. 잠이 없는 어르신들은 반려견과 이미 몇 바퀴째 공원을 돌고 있다. 공원을 빠져나와 첫번째 신호등에서부터 슬슬 속도를 올려 본다.그리고 뛰기 시작한다.


얼마 전, 점심시간이었다.

어떤 주제의 대화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를 않는다. 큰 사장님께서 직원들 점심을 사주신다고 근처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했다. 메밀국수에 돈가스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그런데 직원들이 땡볕에 맛집 앞에 줄 서서 촉박한 점심시간을 허비할 생각에 마음이 급하셨는지 돈가스집 옆 한가로워 보이는 생선구이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아뿔사! 생선구이 집 문을 여는 순간 잘못 왔다 싶었다. 점심시간이지만 텅텅 빈 가게에 한 두 사람의 손님만있을 뿐이었다. 난잡해 보이는 인테리어와 주인장으로 보이는 노부부의 느린 손 탓에 몇 테이블에는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있었다.


"여기 주문이요."


열 명이 우르르 왔다가 다시 나가기도 그렇고, 얼른 앉자마자 주문을 했다. 두 테이블로 앉아 테이블마다 제육볶음 2인분, 생선구이정식 2인분씩 시켰다. 큰 사장님은 페루인지 칠레인지 남미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박차장과 김과장이 새로 붙인 손톱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번쩍 거리는 보석이 박힌 네일아트를 몇 만원씩 주고 한 이야기보다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미에 꽂힌 사장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 맞장구를 쳐드리고 있었다. 그 때,


"문주임은 일찍 일어난다고 했어. 몇 시에 일어난다고 했지?"

"다섯시? 다섯시 반?"

"헉! 왜케 일찍 일어나? 안 졸려?"

"아니, 무슨 새벽 밥 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서 뭐해? 고3 수험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섯시에 알람을 맞춰 놓는다. 다섯시에 일어나는 일은 일주일에 두 어번. 대부분은 다섯시 반에 몸을 일으켜 세운다.


"도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일찍 일어나? 혹시 새벽기도 가는거야?"


새벽기도를 가야하는데 마음만 먹고 가지 못해 새벽에 말씀 묵상을 한다. 하루 시작에 눈을 뜨자마자 주님과 만나야 바쁜 하루에 주님을 잊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 덜하다.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눈을 뜨자마자 말씀을 읽는다. 그러고 기도를 한다. 잠이 덜 깨서 중언부언이다. 그 다음, 남편 출근을 잠깐 돕는다. 남편이 간단하게나마 요기할 과일을 준비해준다. 그리고 아이들 아침을 위해 쌀을 앉히고, 세탁기를 돌리고, 운동을 나선다.


이 일련의 내 아침 루틴을 콕 집어 뭐를 한다 말할 수 없어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김과장이


"책 읽으시나보다"

"음...책도 읽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그렇게 일찍 안 일어나면 하루에 내 시간이 없잖아."

"엥? 책을 읽는다고? 난 도저히 못 일어나. 적어도 여덟시간은 자야지. 몇 시에 자는데?"

"11시?"

"헉! 늦게 자네. 괜찮아? 사람이 일찍 죽는다고."


사람은 죽는다. 일찍 자도 늦게 자도. 사람의 생명이 코에 있는 게 아니라 조물주의 뜻에 달렸기때문이다. 이렇게 살기로 마음 먹었다. 부지런히 욕심껏 내 사정과 시간에 맞게 최대한 발발거리면서....

그렇다. 난 그 시간에 책도 읽는다. 성경책도 읽고, 몇 장이라도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는다. 차를 타고 운전하는 동안에도 몇 자라도 읽어 분량을 늘린다. 일하는 중간에 틈틈이 뉴스도 틀어 놓고, 영어 단어도 외운다. 바야흐로 중학교 1학년때부터 매진한 영어는 여지껏 잘 들린 적이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애써 들을려고도 하지 않지만 어쩌다 정말 외계어같은 단어가 들릴때는 네이버 사전을 이용한다.


누군가는 이해 못할 어처구니 없는 일을 이 나이에 잠을 줄여가면서 하고 있다. 이 나이에는 뭐든 쉬이 되는 일이 없다. 영어 단어 하나도 돌아서면 까 먹는다. 얼마 전에는 내 칫솔 색깔도 깜빡했고, 핸드폰 뒷자리도 잊어버린 적이 있고, 국자를 김치통에 넣어두고 며칠을 찾아 헤맸고, 심지어 먹다 남은 고기를 냉장고가 아닌 찬장에 넣어 놓은 적도 있다. 운동도 적당히 쉬엄쉬엄 걸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서는 올라 가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트릴 길이 없다. 일을 할 때도 눈치껏 하면 되는데 괜시리 이 나이 아줌마 욕 먹일까 더 부지런을 떤다.


그렇다. 이 나이에는 뭐든 작정을 해야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에너지를 쏟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남의 영리를 위해. 그렇기에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려면 더 더욱 작정을 해야한다. 그래서 적어도 두 시간, 운동과 큐티시간은 꼭 확보를 한다. 물론, 퇴근 후 모든 집안 일을 마치고나서 글을 쓰기 위해 한 시간 반 더.


겨우 잠을 줄이고, 몸의 컨디션이 제일 좋은 때 나를 위해 오롯이 집중을 한다.


그래도 이 시간이 있기에 결핍된 자아에 행복을 불어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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