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by MAMA


“부산이 왜 부산인 줄 알아?”

“산이 많아서 부산 이랬잖아. 부할 부, 산 산. 산이 많은 부산!”


다섯 번째 부산 여행. 부산 숙소 도착 20여분이 남았다. 차량 앞자리에서 우리 부부의 대화를 뒷자리에 앉은 큰 아이가 들었다.


“아니야! 아니랬어. 선생님이 그 뜻 아니라고 했는데?”

“ 맞아! 저것 좀 봐봐. 산들이 엄청 많잖아. 산 꼭대기에 아파트 좀 봐봐. 부산은 희한하다니까 온통 오르막이야. 산 꼭대기에 아파트를 빼곡하게 지어서 꼭 연필통에 가득 꽂혀있는 연필들 같다니까.”


부산을 얕보고 운전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부산은 길이 반듯하지 않다. 구불구불하고 로터리도 많고 예기치 못한 고가차도에 어려운 P턴, 좌회전도 9시 방향이 아닌 8시나 7시 방향의 좌회전 또는 애매한 11시 방향도 많다. 단단히 긴장하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어 몇 십 분을 허비하는 일도 다반사다. 오르막 내리막이 수차례 반복되다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변경을 하는 차량까지 들이닥치면 깜짝깜짝 놀란다. 아무튼 여러모로 순진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대도시 부산은 도시 촌뜨기를 긴장시킨다.


“자기가 틀렸어.”


남편이 내게 말했다.


“산이 많아 부산이라고 자기가 그랬는걸."


더 이상 우격다짐은 소용없었다.


“그건 우리 엄마가 그랬었고, 나도 그 뜻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 찾아봐야겠다.”


큰 아이의 반기에 남편은 신호등에 걸려 차가 정지해 있는 틈을 타서 휴대폰 검색을 해보았다.

부산은 가마솥 부釜에 뫼 산山을 합해 가마솥을 엎어 놓은 지형을 닮았다 해서 부산이라고 한다. 산악지대가 곳곳에 많고 평지는 물론 산자락까지도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고, 거기에 대표적인 난개발지역인데 이와 더불어 도로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고…


역시, 도시를 탐방할 때 도시에 대한 지형과 지리 정보정도는 숙지를 하고 가야겠다. 여하튼 산이 많아 부산이든 가마솥을 엎어놓아 부산이든 다섯 번째 방문이지만 역시 흥미진진했고, 거친 부산 앞바다를 얼른 보고 싶었지만 교통체증은 남의 동네에서도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순간, 길을 잘못 들었고, 20여분 도착시간이 늘어났다. 내 생각에는 가마솥 솥단지를 엎어 놓은 것이 아니라 솥뚜껑 모양인지 싶었다. 가운데는 산악지형으로 솟아있고, 도시가 전체적으로 경사진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체크인했어?”

“키오스크로 체크인하면 돼. 요새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


레지던스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1층 로비에 직원이 있었지만, 만날 필요가 없었다. 주차장에서 바로 키오스크로 체크인과 주차등록을 동시에 진행했더니 카카오톡으로 모바일 키가 왔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는 건물이라 그런지 새 가구 냄새가 났다.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그런데 방에는 트윈침대 두 개뿐이었다. 남편은 당연히 소파에서 잘 생각을 했지만, 침구류가 추가되어 있지 않았다. 한 여름에 푹신한 호텔 침구류를 더 받아 무엇할까 싶어 직원에게 요청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운전을 장시간 한 남편이 피곤할 것 같아 침대에 자라고 했고, 덩치가 큰 딸 둘을 한 침대에 구겨 자라고 했더니 부둥켜안고는 좋아라 하며 드러누웠다.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컨디션이 좋은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소파에서 잤던 나도, 좁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밤새 긴장한 두 딸도 잠을 설쳤다. 그래도 아침에 호텔 조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짜증도 사라졌다. 오픈기념으로 투숙객들 상대로 한정기간 조식 무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때문에 이 숙소를 예약했다. 모두 새 둥지를 지은 머리와 퉁퉁 부은 얼굴로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크로와상에 버터와 잼을 발라 따끈한 수프랑 같이 먹고 우아하게 샐러드와 오렌지 주스를 곁들였다. 엊저녁 소고기 무한리필 식당에서 턱이 아프도록 저녁 식사를 우악스럽게 했는데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는지 아침식사도 무한리필로 하니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배가 부르니 어제 잠을 설친 피로감이 더 몰려왔다. 도저히 더 이상 이렇게 잘 수 없다 싶어 방책을 마련했다. 침구류를 추가해서 바닥에서 자는 게 차라리 나을 듯싶었다.



외출 준비를 하고 1층 로비에 있는 직원에게로 갔다.


“ 침구류를 추가하려고 합니다.”

“예약 확인하겠습니다.”


직원은 예약을 확인했다.


“침구류를 추가하신다고요? 2인으로 예약이 되어 있으신대요?”

“네?”

“2인으로 예약이 되었고 체크인도 2인으로 체크인되었습니다.”

“4인 아닌가요?”

“2인 예약입니다. 침구류 추가 시 1박에 인원당 1만 5천 원씩 인원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우리 부부는 순간 당황했다. 분명, 예약사이트에서 4인 인원을 입력해서 결제를 당당히 진행했는데 이제와 2인 예약이었고 추가비용 발생이라니 억울했다. 마침, 우리 가족 말고도 아침나절 체크인을 하는 투숙객들로 로비가 붐볐고, 우리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뒤로 돌아섰다.


인원 추가 비용이 발생할 시에 3만 원씩 3박 도합 9만 원을 내고 거기에 조식비용까지 내면 족히 20만 원이나 예산을 초과하는 예상치 못한 재정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가 머무는 룸넘버를 기억하고 있겠지? 그럼 오늘 먹은 조식값부터 다 부과하는 건가? 2인 예약으로 싸게 이용했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괜히 침구류를 추가한다고 했네. 아이고!’


돈 20만 원에 온갖 추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는 줄도 몰랐다. 결국, 나의 머릿속은 어떻게든 4인을 2인으로 속여 체크아웃까지 무사히 할 생각이었고, 조식까지 덤으로 사기를 칠 생각이었다. 이래서 인간은 죄인이라 하는 건가 보다. 아무리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해도 찰나의 악한 생각에 어쩜 그렇게 빨리 물들어 버리는지 양심이 쓰레기통으로 들어 가 벌써 소각되어 버렸다.


여행 이틀 차.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었다. 종일 부산을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뚜벅이로 누볐다. 저녁이 되었고, 또 그렇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이 들었다.


여행 삼일 차. 내일이면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불편한 마음으로 조식을 또 먹었다. 머릿속엔 '이 조식이 얼마고? 체크아웃 때 돈이 한꺼번에 부과되겠네' 한숨이 나왔다. 뭐가 됐든 어디서든 식성 좋은 아이들 앞에서 조식을 먹을지 말지 운운하고 싶지 않아 속앓이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 해야 하나 공짜라고 집에서 물 값 아까워 쓰지 못하는 95도 물 온도를 맞추고 빨래를 했더니 여름 철 폴리에스테르가 많이 섞인 냉감 옷들의 옷감이 다 상해버렸다. 아주 구겨져 주름이 자글자글한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젠장.


"안 되겠다. 엄마 먼저 나갈게. 너네들 옷 갈아입고 교보문고로 와."


숙소 옆 건물에 교보문고가 있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라 오전 시간을 교보문고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서점 가기 전에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예약사이트에서 예약을 했을 땐 인원 4인으로 예약을 했는데 2인으로 예약이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저희가 조식도 무료인 줄 알고 먹었는데 어떻게 되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양심선언!


체크아웃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혹시 체크 아웃 때 돈이 왕창 부과될까 싶기도 했고, 그전에 양심선언을 해서 인원 추가 비용을 내고, 조식이라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고객님! 인원 추가는 사실, 예약사이트에서 예약하시고 전화를 따로 주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원 추가 비용은 침구류를 추가로 사용 시에 부과하는 건데 침구류 추가를 하지 않으셨으니까 인원 추가 비용은 받지 않겠습니다. "


"그럼 조식은 어떻게 되나요?"


"투숙객들은 무료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이용하시면 됩니다."



진작에 물어볼 것을.... 사람이 얼마나 옹졸해지고 치졸해졌는지 모른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털 같이 가벼워졌다. 마음도 생각도....


조식 비용이든 인원추가 비용이든 양심 고백의 대가를 치르려고 지갑에 챙겨둔 돈으로는 책을 구매했다.

아주 기분 좋게 나 자신에게 두 권의 책을 선물해 주었다. 양심고백에 대한 선물이었다.

이 책을 꺼내 볼 때마다 부산에서 돌려놓은 양심이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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