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5일 안녕, 급식실
몇 주 전, 남편과 제천 밭에 다녀왔다. 호박 넝쿨이 밭을 뒤덮었다. 4월 말즘이었나. 옆 밭의 어르신께서 호박 모종을 밭의 곁두리에 심어보라면서 스무 개 정도 주셨었다. 우리 부부는 호박 모종을 밭의 비닐하우스 옆에 촘촘하고 가지런히 예쁘장하게 줄 맞춰 심고는 만족스러워했다. 뭔가 뿌듯한 '간지(かんじ)'느낌. 물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님께서 밭에 가서 보시고는 호박을 누가 이리 심었냐 노하시며 다 뽑아 다섯 개 정도만 남겨 두셨고, 나머지는 비닐하우스 옆 프레임 밑과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어디쯤으로 옮기셨다고 하셨다.
농사꾼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싶다. 그렇게 작은 새끼손가락만 한 모종 다섯 개가 밭을 뒤덮을 만큼 튼튼하고 질긴 넝쿨이 될 줄 전혀 몰랐다. 밭에 도착하자마자 그 광경에 의아해하며 일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낫으로 하얀 가시 솟은 굵은 넝쿨과 싱싱해 뵈는 짙은 녹빛의 호박잎을 들어 보았다. 호박잎 사이사이 햇살과 그늘 아래로 실하게 살찐 호박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내 새끼를 본 마냥 반가움과 대형마트 반짝 행사에 무료로 덤을 받게 된 횡재처럼 신이 나서는 낫을 휘둘렀다. 호박 줄기를 뚝뚝 끊어 호박을 따 보니 연두색 호박 대 여섯 개와 벌써 잘 익은 커다란 누런 호박이 두 개나 됐다.
그나저나 호박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작은 교회를 섬길 때, 친한 언니가 있었는데 아들이 넷이나 되어 남편이 부러워했다. 딸이 둘이나 있는 남편은 아들이 넷이나 된 언니네 가정을 부러워했고, 언니는 딸이 둘이나 있는 나를 무척 부러워했다. 언니에게 넷째가 찾아왔을 때, 언니랑 친했던 권사님께서 언니 대신 태몽을 꾸셨는데 그 꿈인 즉, 언니네 집으로 큰 호박이 굴러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권사님 말에 호박이 아들 태몽임을 안 언니는 울상이 되었다고 했고, 살짝 흐리시는 말끝을 듣고는 더욱 울음이 터졌다고 했다.
“ 그런데 호박이 하나가 아니라 넝쿨째 들어가더라고.....”
호박을 보면 언니네 네 아들들이 생각난다. 언니에게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넝쿨 째 들어간 호박은 건장한 네 아들들로 자랐다. 언니의 호박은 반전 없는 멋진 호박이었는데 집에 갖고 온 유기농 밭의 호박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잘라서 냉동실과 냉장실에 찌개용과 반찬용으로 구분하여 보관하려고 했는데 자를 때마다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반을 툭 가르면 벌레가 우굴거렸다. 단단한 호박 껍질을 뚫은 것도 아니고, 호박 안에서 생겨서 호박 안에서 자랐다는 건데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숨은 어찌 쉬고 살았는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닭살 돋은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호박들을 다 버렸다.
7시에 출근해서 4시까지 급식실에 있다 보면 밖의 날씨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다. 출근길 보았던 파란 하늘이 퇴근길에 비바람 울렁대는 성난 모습을 할 때도 있고, 어둑한 아침 변덕 부리는 구름 뭉텅이 하늘은 눈부신 햇살이 광속으로 저 끝까지 이글거리는 퇴근길이 될 때도 있다. 쌀쌀한 날, 휴게실에 군불을 떼고 앉아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기가 낙원인 것 같고, 검수 시작과 동시에 활짝 열어 놓은 문으로 전처리실의 꿉꿉함을 날려주는 바람이 들어오면 그 바람결에 묻은 습도와 온도로 대충의 그날 날씨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점심 식사를 하는 배식실은 장마철에도 방문한 이들의 쾌적함을 이유 삼아 출근 때부터 틀어 놓은 에어컨 덕에 불볕더위는 따사로운 햇살로 둔갑하여 ‘오늘 참 날씨 좋다’라는 헛소리를 누군가는 지껄이기도 하며 그 반전의 온도에 배반당하기 일쑤였다. 오늘이 바로 그 배반당한 날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까지 장마였기에 어두침침하니 비가 또 오는가 보다 하고 세척실이 워낙 습하니까 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장마가 끝난 그날, 불볕더위의 시작 인 줄을 몰랐다. 땀이 줄줄줄 흐르는 세척실에서 쓰러질 듯 지쳐서야 왜 이리 더운가 했다. 대망의 급식실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싶었지 밖이 섭씨 35도의 폭염이라는 것을 찜통이 돼버린 집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학교 지하 주차장으로 또 아이들 학원 앞과 다시 집 주차장으로 웬 종일 지하세계 거주민으로 살다보니 밖의 공기를 접할 기회라고는 전처리실에서 그리고 차 타고 이동 중 가끔 접하는 바람뿐이었다. 이렇게 더운 줄 여름이 반 쯤 지나서야 알았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불태우고 가라는 언니들의 말처럼 급식실 높은 열기에 활활 탈 뻔한 나의 몸뚱이는 전신이 소금에 절여진 배추 마냥 땀에 절구워 졌다. 평소 땀이 잘 나지 않아 허약체질이라고 한의원에 가면 워낙 맥이 약하니 보약이나 한재 지어 드시라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그런데 허약체질은 고사하고 땀구멍이 다 열린 듯 어찌나 땀이 잘 나는지 건강해진 것인지 한의사 말이 거짓부렁인지 알 수가 없지 싶었다. 아무튼 나의 모습도 내 눈앞에 있던 언니들의 모습도 처참하기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는 오늘 사람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마지막 내가 요리할 부찬. 탕평채다. 탕평채는 어릴 적 실과 시간에 나왔던 요리인데 이름이 특이해서 지금도 실과책의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급요리인 탕평채는 하얀 묵을 잘 데쳐서 식히고, 소금에 살짝 절인 후 물에 헹궈 물기를 충분히 제거하여 볶은 오이와 데친 숙주 그리고 양념을 살짝 해서 볶은 소고기와 김가루를 넣고 무치는 요리이다. 물론, 여기에 누구는 색감을 살리기 위해 계란 지단을 얇게 썰어 넣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1600명 인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섣불리 그 입 함부로 열었다가는 오두방정 입방정의 참담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니 말이다.
부찬이지만 주찬급의 번거로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고급요리. 그래도 급식실 최연장자이시자 부찬의 여왕이라 일컬음을 받는 현주 선생님께서 파트너이시니 그냥 시키는 대로만 잘하면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물론, 오이라는 까다로운 재료 하나가 꽤나 번거롭게 만들기는 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 중에 한 분이 오이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오이가 부재료로 있거나 주재료로 있는 반찬을 조리할 때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주찬팀은 카레 임연수 자반구이였다. 명자언니 말대로 오븐 쓰는 요리치고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했던가. 그럴 줄 알았다. 조리과정만 간단하면 무엇하냐고. 120개 오븐 팬 닦는 일하며, 많고 많은 생선들을 바트에 하나하나 담는 과정은 1차, 2차 배식 후까지 계속되었다. 내일 위대장내시경을 한다고 굶식을 하는 선미언니가 담당이었는데 말도 못 하게 힘들어 보였다. 내시경 결과가 잘 나와야 한다면서 식단 조절하느라 밥도 아니고 죽 몇 숟가락 떴는데 불 볕더위에 달구어진 세척실에서 오븐팬 닦다가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평소 언니답지 않게 세척실에서 ‘혜성아 쉬었다 하자’고 몇 번이나 말했다. 게다가 불도저 혜진언니도 ‘도저히 못 하겠다’ 면서 땀을 비 오듯 흘리는데 다들 딱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급식실과 결국 이별하는 나는 그들에게 참으로 말 못 할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하였다. 내 뜻과 의지대로 분명 그만하고 싶은 일인데 떠나는 발걸음이 시원섭섭이 아니라 미안한 이유는 무엇인지. 꼭 전장에서 전우를 버리고 혼자 나 살겠다고 떠나는 마음이랄까.
그렇다. 여기는 매일매일 1600명 어린이들의 밥을 해 먹이는 전쟁터 즉, 전장이었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엄한 규칙은 필수이다. 안전과 직결되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며 살인적인 장마철의 습한 날씨와 불볕더위는 실무사들의 건강을 위협하기에 충분히 압도적으로 위험하다.
“조리실무사님들 오늘도 안전문자가 왔어요. 폭염이라 쓰러질 수도 있어요. 무리하시지 말고 몸이 힘들거나 어지러우시면 쉬어야 해요. 옆의 동료에게 꼭 도움을 요청하시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영양사님께서 아침 조회 시간에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위험한 일을 내가 하고 있음이 때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 앞에서 삽질을 하다가 현기증이 나서 휘청할 때, 국을 1600번 퍼주느라 뜨거운 김에 안경이 서린 것을 닦을 짬이 없을 때, 30킬로그램이 넘는 잔반통을 번쩍 들어 올려 허리가 휘청거릴 때 등등.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전처리실에서 할 일이 남아 휴게시간 후에 조리실로 가지 못하고 재료 다듬느라 바빴었다. 그런데 조리실에서 아우성의 소리가 들렸다.
“어머! 어떡해. 불이야!”
설마. 불이 났다고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불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 만큼 대형급식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깜빡한 것인지 몸이 굳어져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던 순간, 현주 선생님께서 조리실로 뛰어가셨다.
“불이 났다고?”
우왕좌왕하며 믿기 힘든 사실을 확인하려는 나약한 인간들 사이에 영웅의 본색을 숨길 수 없었던 한 사람은 불이 난 솥단지의 뚜껑을 닫았다. 순식간이었다. 튀김담당이었던 언니들이 솥의 물기를 없애기 위해 살짝 달군다는 것이 그만, 급식실의 더운 열기와 함께 솥단지의 온도를 급격히 올린 것이었다. 그렇게 튀김 솥이 불덩이 같이 달구어진 줄도 모르고 언니들은 솥단지로 튀김 기름을 콸콸 부었고, 그 순간 솥 전체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새파란 불이 환기구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에 언니들은 넋을 잃고는 어쩔 줄 몰라했다. 몇 분 아니, 몇 초였을 그 찰나. 보기와는 다르게 삶의 우여곡절이 많다던 현주선생님은 기지를 발휘하여 솥뚜껑을 닫아 산소를 차단했다. 불은 솥 안에 있는 기름을 다 태우고나서야 그을음을 남긴 채 사그라 들었다. 언니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학교 다 타버리는 줄 알았잖아. 엉 엉 엉!”
“우리 얘들 어떡해 하는 생각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엉 엉 엉!”
튀김담당이었던 두 언니는 부둥켜안고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우린 서로 의지를 할 수밖에 없다. 서로 최전선에서 죽지 않기 위해 간신히 손을 꽉 붙들고 등을 맞대어 겨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150명당 1명의 실무사들. 1600명이라고 해서 더도 덜도 아니고 조리사포함 딱 12명. 그 12명은 웬만해서는 채워지지 않았었다. 누군가는 힘들다고 하루 이틀 만에 나가버리기가 일쑤니 채워지는 게 불가능하다 믿었던 급식실엔 나를 포함하여 12명이 채워져 언니들은 기뻐했다.
영양사님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한 달 전에 나갔어야 했는데 언니들이 더운 여름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사직서 던진 얘라도 붙잡아야겠다고 했던 노력은 어쩜 당연했지만 나한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사직서를 낸 동료를 응원해 주고 안아 준 언니들. 내 마음은 오늘 하루 종일 묵직한 추를 달고 있는 듯 언니들의 땀에 젖은 흥건함 때문에 울컥거려 눈물이 울렁거렸다.
탕평채도 카레 임연수 구이도 그리고 소고기 뭇국도 맛있었다. 체력도 음식솜씨도 어벤저스인 언니들 덕에 급식이 맛있는 학교로 소문이 자자해졌지만 잔반통의 음식들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따끈따끈한 새 음식을 식판에 채워야만 한다. 그게 사명이다.
지옥 같은 세척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끝을 알기에 견딘다. 무조건 견딘다. 더워도 그렇게 더울 수 없는 날이라도, 추워도 그렇게 추울 수 없는 날이라도 무조건. 줄지어 나오는 식판도 끝이 없는 것 같았지만 결국 끝났다. 식판의 끝이 보이면 트렌치를 닦는 일 정도는 일도 아니다. 시원한 릴 호수 물줄기가 음식물 찌꺼기를 다 쓸어 내어 앞치마를 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리고 만신창이 된 몸을 씻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진다. 산뜻해진 마음으로 집에 와 기절한 듯 낮잠 몇 분 자면 괜찮아진다.
마지막 날인 오늘, 얼마나 옷이 땀에 젖었는지 벗겨지지가 않았다. 배를 둘러 두드러진 땀띠가 어제 가라앉은 듯하더니 다시 올라왔다. 씻고 나와서 게토레이를 연거푸 세 잔을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영양사 선생님께 물어볼 것이 있어 나왔는데 선생님께서 누군가와 통화를 길게 하시는 듯했다. 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그만두게 했어? 남은 반찬 짚어 먹은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안 먹는 음식 어차피 다 버릴 거면서 내가 조금 가져온 게 뭐가 그렇게 내가 잘릴만한 짓이야?”
시니어분들 몇 명이 세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러 오시는데 노인복지관에서 파견되어 식사도 하시면서 급식실 일을 도와주신다. 식판을 대신 버려주시기도 하시고, 배식도 하시고, 식당의 식탁들도 닦아 주신다. 물론, 연세가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게 중에 팔순이 넘은 노모도 있고, 그 노모를 언니라 부르며 따르는 갓 환갑을 지난 분도 있다.
실무사들과 영양사 선생님의 의논으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하실 수 있을 만큼의 일을 급식실에서 배분하는 것인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일의 배분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하시는 분의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어 나라가 아이들 한명 한 명당 예산을 편성하여 분명 혜택의 대상자가 정해져 있다. 아이들이 먹지 않는다고 그 남은 음식이 실무사의 소유가 될 수 없고, 또 누군가의 소유도 될 수 없다. 음식은 위생을 이유로 그리고 공적으로 측정된 예산편성을 이유로 반출될 수 없으며 여느 식당이 그렇듯 식중독 등의 위생상 문제가 발생되었을 시 책임소지의 문제가 있기에 위생과 안전을 첫째 목적으로 잔반은 전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일하시는 시니어 분들 중 한 분이 그 규칙을 잘 지키지 않으셔서 자꾸 잡음이 생겼다. 어차피 버릴 거면서 음식 반출이 왜 안 되는지를 이해 못 하신다면서 아이들에게 배분되어야 하는 음식에 자꾸 욕심을 내셨던 게 화근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례한 언행으로 언니들의 레이더망에 자주 걸렸다. 결국, 조리장님과 실무사들, 영양사 선생님까지 회의를 거쳐 그만 나오시게 하자고 결론을 냈다.
그 시니어 분이셨다.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았다. 연장자로서 어린 영양사 선생님을 다그치시는 것 같았다. 그간 일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히 노인이라 그렇다 하기에는 일의 규정과 규칙을 지키지 않는 근로계약 위반이었고, 위생과 안전수칙 위반이었으며 거기에 무례하기까지 하셨다. 그건 노인이라 그렇게 사회통념상 이해할만한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성품의 문제였다. 그 통화를 끝으로 그 시니어분은 급식실을 떠났다.
“잘 떠났네. 잘 그만두게 했어. 그 어머니는 계속 계셨으면 더 큰 일 냈을 거야.”
“그러게 말이야. 근데 오늘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네. 혜성이”
“혜성아! 반전 없냐? 마음이 바뀌었다거나 언니들 봐서 대체인력으로 다시 온다던가”
설레는 전처리실, 마음 급한 조리실, 지옥 같은 세척실을 지나 우리는 다시 평온한 휴게실에 있다. 내일 난 이 자리에 없겠지만, 그들이 지키는 사명덕에 아이들은 따뜻하고 맛있는 식판을 받을 것이다.
반전은 없었고,
어벤저스 언니들은 떠나는 전우를 힘껏 안아주었다.
떠나는 이는 발자취를 남긴다.
그게 그 사람의 이름의 무게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는 언니들이 하루에 백 번도 넘게 불러 주었던 내 이름의 무게를 견디려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다. 모르면 창피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정직했고 성실하게 모든 일에 임했다.
일터는 일과 성품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언제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언제든 그 자리에 걸맞은 제격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내로 시간이 경력이 될 때까지 견뎠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함에는 미안할 뿐이다. 오늘 급식실을 떠나는 두 사람에게는 반드시 차이가 있었음을 나는 안다. 다른 어떤 곳에 다시 가더라도 나는 내 이름의 무게를 견딜 것이다. 잠깐이 되든 평생이 되든. 그리고 그곳이 만약, 평생의 일터라 확신이 들면 동료와 나눔을 즐길 것이다.
안녕, 급식실.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보고 싶은 시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