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 망고가 날아다녔던 날
7월의 마지막 주.
한낮의 태양이 실오라기 같은 가을이 올 거라는 희망마저 비웃었지만, 방학이 곧 옴에 대한 설렘을 꺾지는 못했다. 퇴직을 이틀 앞둔 나에게 남은 건 설렘일까 후회일까 아니면 그 모를 아쉬움일까.
“우리 남편 이제 제법 농사꾼 티가 나. 월급탄 거 예초기 사줬잖아. 온 식구들 다 동원해 밭에 가서 종이로 포도 싸주느라 죽는 줄 알았다.”
현주 선생님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고됨의 그림자 따위는 없었다. 달디 단 포도를 한 움큼 집어 먹은 표정이었다. 애지중지 키우는 작물의 수확이 다가옴에 대한 농부의 기쁨과 간절함은 느껴 본 자가, 겪어 본 자가 아니면 도통 알 길이 없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현주 선생님 어제 일 끝나고 밭에 갔어? 그 시간에? 대부도 포도밭?”
“그래. 일이 많아서 갈 수밖에 없었어.”
“남편. 너무 하시네. 이 일이 얼마나 고된데 일 끝나고 그 일을 또 시킨대. 시집을 잘못 갔어.”
현주 선생님의 남편 되시는 분은 포도밭을 도지 받아 포도를 키우고 계신다. 언뜻 듣기로는 몸이 안 좋아서 요양차 가신 거라 들었다. 홀로 계셔서 요양이 될까 싶지만 어울려 사는 밭 벌레와 풀 벌레, 나날이 자식같이 커가는 포도 알들에게 정을 나눔에 기쁨이 넘쳐 그런지 그을려버린 피부에도 많이 건강해지셨다고 들었다.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고된 급식 일을 끝내고 포도밭에 가신 이유는 분명 아픈 남편을 생각하는 조강지처의 마음일 것 같았지만, 알알이 맺힌 포도를 보고 싶음에 한 달음으로 달려가신 마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를 알 턱이 없는 혜진언니는 괄괄한 목소리로 현주 선생님 편을 드느라 거침이 없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남의 남편을 그렇게 거침없이 씹다니 역시, 생 고기 같은 입담 맛집 급식실이다.
“나가자. 시간 됐다.”
군청색 장화에 몸을 싣고, 문을 박차고 나서는 군병들. 군병들이 핑크색 앞치마를 입고 시뻘건 고무장갑을 껴자 개수대의 거센 물줄기 소리가 행진곡을 울린다. 도마에 얹어지는 그 어떤 재료들도 따각따각 다다다다 기관총의 속도로 쪼아 버린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여름의 습기를 머금은 락스 냄새가 폴폴 올라오고, 저만치 조리실에서 끓고 있는 짭조름한 멸치 육수냄새가 스멀스멀 차 오르기 시작한다.
'눈, 코, 마음 저만치 즈음에 기억해 두어야지.'
오늘 나는 계란 국을 끓인다. 급식실에서 발로도 끓인다는 계란 국. 수월한 하루가 예상되는 느낌적인 느낌. 전처리실 문을 여니 오늘도 왔노라며 뜨거운 햇볕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이제는 그 볕조차도 만끽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음이 내가 원하지 않았던 환경에도 기어코 맞아 들어가는 게 씁쓸하지만 결국, 사실이었다. 공산품 차량, 채소 차량, 냉동 차량까지 재료 검수도 수월하라고 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공산품 왔다. 부찬팀 재료 받아.”
부찬은 바나나와 망고라테. 바나나는 생각보다 인기 없는 디저트다. 우리 어릴 때야 귀하디 귀한 과일이었고, 어느 날부터는 여름에 날파리 꼬인다고 사지도 않는 천대받는 과일이 되었다. 급식실에서도 바나나는 그런 어중간한 어디쯤의 디저트다. 세척하여 일일이 잘라야 하는데 아이들은 금세 변색되어 버린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껍질도 까지 않고 버려진 바나나가 잔반통에 가득할 예상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선수의 등판에 땀이 났다.
“혜성아! 망고라테 박스 접어.”
“네!”
검수를 하는 국 담당이었던 오늘 별일 없이 지나가나 했다. 야트막한 얕짭아 봄도 순간의 후회로 바뀌는 만만히 볼 수 없는 급식실이었음을 잠시 잊었다. 그 후, 순식간이었다. 재료 상 아저씨가 24개들이 망고라테 주스 박스 비닐을 뜯자마자 언니들은 커다란 흰 봉투에 주스 한 박스씩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여섯 박스 정도 부어 한 봉지씩 만들어 앞과 뒤 1,2,3차 배식 분, 총 여섯 봉지를 나누어 만들어야 했다.
빛의 속도가 광년이라 하던가. 여기에 앞치마만 두르면 광년이 된다는 원더우먼들의 손이 과연 우주로 날아갈 판이었다. 자그마치 24개들이 67개의 주스 박스가 머리 위로 날아왔다. 뭔 일들을 그렇게 빨리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 한 두 개 박스는 손들이 맞지 않아 속도가 더디게 날아와 접을만했다. 그런데 점차 언니들의 손에 속도가 붙자 박스를 접는 속도보다 날아오는 주스 박스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장관이었다. 머리 위로 새떼들이 폭격을 하는 줄 알았다.
"혜성아! 뭐 하냐?"
"접고 있어요."
재료상 아저씨들이 가져가시기에 편하시게 박스들은 잘 펴서 접어 드린다. 열심히 펴고 밟고 난리 블루스를 치는데도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던져지는 박스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쯤 되면 구원투수가 필요했다. 그때마다 명자언니가 나타났다.
"아야! 밑에 사람있다구요. 혜성아! 괜찮냐?"
"언니! 살아있어. 괜찮아."
살아있었다. 미친 듯이 날아오는 박스도 접을만했다.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는가 생각하니 머리 위로 폭격처럼 날아오는 주스 박스를 이리저리 맞고도 웃음이 나왔다. 몇 달 전이었다면 자존감이 바닥을 쳤겠지만, 그저 이 어이없는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의 위대한 잠깐에 웃음이 나왔다. 농담도 받아 칠 만큼 여유가 생겼다.
무거운 트렌치를 들어 닦을 때도, 쉰내가 나는 국물이 줄줄 흐르는 잔반통을 비울 때도, 먹다 남은 찌꺼기가 붙은 식판을 치울 때도, "여기! 아줌마"라 불려질 때도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친 경우는 허다하게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급식실에서 자존감은 밟으면 꿈틀 하는 지렁이 같았다. 자그마한 밟음에도 과한 꿈틀로 절대 지렁이가 아님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지렁이에 대한 시선도 편견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어쩌다 급식실에 온 학부모들이었지만 그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 일을 감내하면서 하는 데는 말 못 할 사정들이 하나씩은 다 있어 보여서 그랬는지 이래저래 무시당하는 식당 아줌마 딱 그 정도의 시선을 참아내야 했다. 우리끼리야 도토리 키재기라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아도 서로 다 아는 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지만 외부로부터의 시선은 참으로 불편했다.
"계란 국은 계란을 넣고 불을 끄고 계란이 익어서 몽글몽글 엉겨 붙어야 맛있어."
엊저녁 포도밭에서 열일하고 오신 현주 선생님은 피곤치도 않은 모양이었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강철 체력까지 올해가 정년퇴직이라 하셨는데 앞으로 십 년은 더 거뜬할 듯했다. 현주 선생님은 세척실에서도 전혀 40대에 뒤지지 않는 괴력을 발산하신다. 가끔 눈만 겨우 나와있는 얼굴을 볼 때면 우리와 같은 또래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혜성아! 일은 구했냐?"
"찾아봐야죠."
"좀 더 같이 하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감정 정리의 선이 한계를 넘지 않는 딱 여기까지. 그렇게 지켜지는 선들을 지켜야 입담 맛집 급식실에서 정에 맞지 않는다.
"오늘 김가루 있지 않냐?"
"네."
"불고기에 김가루, 계란국이라..... 도우미가 오늘 고생 좀 하겠구만."
그렇다. 감정이 정리가 되어도 도통 정리가 되질 않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김가루'다. 김가루가 등판하는 날엔 청소도 설거지도 정리도 두 배는 힘이 든다. 아이들이 먹다가 날아가버린 김가루는 궤도를 벗어나 습기와 엉겨 곳곳에서 흐느적거리며 끈질기게 정체성을 드러냈다.
불고기를 만드는 주찬담당은 혜진언니와 은숙언니다. 달갑지 않은 사이가 솥단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혜진언니는 입사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질 않았지만 급식실의 주인장 뺨치는 입담을 과시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언니의 손과 발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심지어 행정실도 찾아가 할 말을 주저 없이 하다 보니 주무관님들도 언니의 눈치를 보았다. 그들이 생각할 때 별 거 아닌 일들이지만 조리실무사들에게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요구사항을 나서서 해줄 때면 고마웠다. 그에 비해 은숙언니는 급식실에서 4년 최장 경력자이지만 입지는 초라했다. 언니들의 말로는 대단하리만큼 입사 초년생 실무사들에게 엄격했다고 했다. 엄격한 정도가 심해서 냉장고에는 손도 못 대게 했다고 했고, 깐깐하기는 말도 못 해서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는 하늘을 찔렀다고 했다. 그러던 언니는 어쩌다가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왠지 알 것 같다.
"내가 좀 더 이따가 야채 넣으라고 했잖아."
혜진언니의 큰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내가 이따가 넣으려고 했어."
바로 주눅이 들어버린 은숙언니가 변명하듯 얼버무렸다. 그 뒤로도 언니들의 투닥거림은 계속 급식실에서 떨어진 식판들이 쨍알대는 소리만큼이나 듣기 싫게 계속되었다. 은숙언니가 과거에 사람을 얼마나 못 살게 굴었는지 별 거 아닌 식당 일로 호랑이였던 혜진언니의 자존감을 얼마나 건드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초라해진 뒷 방 늙은이 신세에도 입을 이주걱거리는 것을 볼 때면 사람이 참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야! 오늘 계란 국이 끝내준다. 빛깔 봐라."
"하하하! 계란 국 맛있지? 혜성이가 간 봤다."
"아니에요! 제가 뭐 한 게 있다구요."
현주 선생님의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4년이 되어도 욕을 먹는 은숙언니도 있는데 이제 4개월 차에 사표를 던진 내가 무얼 할 줄 알아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온몸이 오글거렸다. 난 그저 솥단지나 열심히 닦았을 뿐이었다. 4개월 동안 주로 한 일은 솥단지를 닦고, 설거지를 하고, 겨우 당근이나 무를 썰었을 뿐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주방의 고작 그런 일들 뿐이었지만 누구의 인정을 바라고 한 성실은 아니었다. 눈만 빼꼼히 나와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전우들의 짐 한 귀퉁이를 같이 들어주면 조금 나을까 싶어서였다.
"야! 그나저나 도우미 누구야? 오늘 김가루 어떻게 하냐?"
"습해서 바닥에 그냥 쩍쩍 달라붙겠네."
"나만 아니면 돼! 하하하하"
국도 맛있고, 밥도 맛있고,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만든 불고기도 맛있었다. 버려질 바나나와 밍밍한 망고라테가 벌써부터 딱하기는 했지만, 김가루만큼 구박받지는 못했다. 식탁 기둥 여기저기 모퉁이에 찌꺼기로 몇 달째 붙어 있는 김가루 녀석도 있으니 그런 구박이 당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판에서 호불호 없이 환영받는 녀석은 언제나 김가루였다. 내가 떠난 자리에도 남아 있을 김가루지만 그 녀석의 정체성처럼 언제 어느 때이고 그만큼의 호의로 입맛 돋우게 하는 사람이고 싶었음이 내 욕심이었을까.
내일이 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