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급식실 마지막 이야기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매미가 울던 어느 날

by MAMA

급식실을 떠난 후 얼마 안되어 선미 언니의 연락을 받았다. 언니의 경력 답게 이 바닥 어느 학교 어디에 빈 자리가 생긴 지 비상 연락망을 갖고 있었다. 근처 유치원에 빈 자리가 생겼는데 나만 좋으면 그 곳에 가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드센 언니들 틈에 새우등 터지고 고되기는 말도 못한 천 육백 식수를 감당하기에 버거웠던 생초보였던 나를 늘 안쓰러워 했었다. 언니는 유치원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다면서 생각해보라고 했다. 사실, 내 대답은 긴 숙고의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 그날 저녁은 언니에게 무례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아 다음 날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가을이 왔다. 뼈가 욱신대던 매일의 통증은 잠잠해졌고, 손가락 뼈마디를 괴롭게 했던 관절염도 사그러들었다. 명자 언니의 능글맞은 안부전화는 한 동안 계속 되었지만 차츰 그 기간이 길어졌다. 보고싶다는 언니들의 카톡도 드문드문해졌다. 한 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집이 달구어져 언제가 여름의 말미인가하는 지루한 바람처럼 그렇게 그렇게 급식실이 남긴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나는 또 구직 중이어야만 했다. 돌아오는 대출이자 납기일이 두렵지 않으려면, 큰 녀석 치아 교정 할부도 아직 남았고, 여차 저차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튀어 나왔다. 역동적인 일로 둘째라면 서러운 급식실 일을 했으니, 이 다음 일은 내 의지로 어느 조용한 사무실 200만원 월급쟁이라면 감사하겠다 싶었지만 어디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될 때가 언제 였던가.


욕심 같아서는 제빵제과 기능사 자격증을 써먹고 싶어 베이커리 일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그도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곳 업계는 이미 특성화 고등학교의 젊은 피들이 씹어 먹고 있는 분야라 나같은 중년의 여성은 빵집 사장님이 아니고서는 쳐다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역시나 당연한 결과였다. 연락 오는 빵집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이력서를 얼마나 넣었는지 모르지만 하루에 열군데씩은 넣어봤던 듯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 별다방과 노란커피집, 그리고 이름 모를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무조건 면접을 보기로했다. 별다방은 복지는 있으나 하루 다섯시간 돈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스케줄도 매주 바뀌었다. 노란커피집은 나와 같은 날 면접 본 어떤 청년한테 자리를 양보했다. 사장한테 난 분명, 7시부터 4시까지 오픈 타임 지원이라고 말했는데 여러사람과 전화를 하다가 헷갈렸는지 오후 타임 지원자인 줄 알았다고 그 청년과 나를 앉혀놓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별다방 근무 경력도 있었고, 오전이어야만 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장은 난감해 했지만 사과하지 않았고, 은근히 내게 눈치를 주었다.


다음 날, 이름 모를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갔다. 보직이 두 군데 있는데 한 곳은 2층 구매부, 다른 한 곳은 3층 창고직이라고 했다. 대충 업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어보니 2층은 꽤나 머리 아픈 돈 계산을 해야했고, 3층은 몸이 고되면 되는 곳이었다. 난 3층을 택하겠노라 했다. 그 쪽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고, 물론 여기서도 알 수 없는 눈치라는 알력이 나의 선택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그 때 보았던 두 사람이 지금의 큰 대표님과 동갑내기 사장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될 무렵, 동갑내기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추석 연휴 후, 출근하라는 반가운 전화였다. 남편은 죽을 지도 모르는 급식실 사지에서 겨우 꺼내왔다 싶은지 몸 쓰지 않는 곳에 가서 덜 힘들게 일하는 편이 낫다고 재차 말했다. 그런데 몸을 쓰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3층 자재실 창고 먼지를 얼마나 많이 마셨던지 집에 올 때 즈음이면 코 끝이 까매졌다.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되다 보니 10여년 묵어 있던 먼지를 닦고 정리를 한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때는 육개월 후 정도나 지나서였다. 그게 날 고용한 목적이었고, 그 때마다 동갑내기 사장이 얼마나 까칠하게 대했는지 생각하면 육두문자가 욱하고 튀어나오지만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니 그 감정도 무뎌져버린 옛 기억 한 줌이 되었다.


그 해, 겨울 눈이 엄청 내렸던 날이 있다. 토요일 어느 오후, 드러누워있던 남편이 운동을 가자고 성화였다. 추운 날씨에 구들장에 있고 싶어 소파에 부비대고 있다가 거의 끌려나왔다. 롱패딩을 입고 두꺼운 왕 기모 바지를 입었다. 바람이 세찼고, 볼이 쨍하며 추위가 살갗을 파고 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 두 송이 살포시 내리고 있던 눈이 점차 거세고 굵어졌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도 누가 발 사이즈 300 아니랄까봐 성큼성큼 앞 서 걸으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남편의 뒷통수에 욕을 한 사발 하고 싶었다. 이럴 땐, 내가 크리스찬인게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른다. 안 그랬다면 나는 정말 지독한 죄인 중에 죄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 저만치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급식실 어벤져스. 헐크 혜진언니였다. 언니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했다. 잊혀진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주머니에 고이 넣어 놓고 한동안 보지 않았던 누군가의 손편지처럼 급식실의 기억과 만났다. 언니의 모습이 그대로였다. 그렇지. 얼마나 되었다고 변했을까. 우리의 나이가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크고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돌쟁이 아기도 아닐텐데...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놓고 다른 한쪽 팔로는 남편에게 팔짱을 끼고 눈 속으로 사라진 언니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한 동안 급식실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잘 알고 있다. 밥 상에 앉을 때마다 급식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얼마나 풀었는지 아이들이 그럴거면 급식실로 돌아가라고 귀를 막았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남편은 급식실 얘기는 다시 꺼내지도 말라고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내가 급식실에 다니는 동안 걱정에 밤잠을 못잘 정도였으니....


보고싶은 언니를 보았고, 또 반 년이 지났다. 여름이 막 시작할 무렵, 매미가 울기 시작할 때였다. 해가 져 거뭇거뭇한 산책길에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불렀다. 선미 언니였다. 언니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웃고 있었다. 잘 지내냐는 인사도 따뜻했고, 손가락이 다쳤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나가서 일을 해야한다고 대체인력이 없다고 하는 말엔 더욱 아팠다. 언니는 나를 안아주고는 큰 키에 어정대는 걸음으로 사라졌다.


급식실을 떠난 지, 1년이 지났고 낯선 회사에서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적응을 한 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 창 밖을 보면 밤송이가 영글었고, 논두렁에 벼들이 알알이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누런 물결을 친다. 3층 창고의하루는 더디게 간다.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그곳이 정말 그리울 때가 보고싶을 때가 있다.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웃음 소리들의 일부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또각대는 도마소리, 구수하게 퍼지는 멸치육수 냄새, 전처리실로 들어오는 햇살, 정말 싫었지만 세척실의 소음들조차 그리움이 되었다. 그래도 손에 잡힐 듯한 기억은 가까운 어제 였는데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이젠 정말


안녕, 급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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