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와 찹쌀전기구이 통닭

by MAMA

막둥이는 인싸였다.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막둥이는 내게


"엄마! 나 학교 끝나고 마중 나와 주면 안될까?"

라며 아침에 귀여운 부탁을 했다.


"우리 막둥이가 마중 나오라는데 당연히 나가야지. 엄마가 교문에서 기다릴게. 이따가 만나!"

라고 나는 설레어 대답을 했다.


막둥이는 워낙 씩씩해서 내 돕는 손길로부터 일찌감치 독립을 했었다. 뭐든 혼자 스스로 해 봐야 했던 성향이라 놀이터 미끄럼틀부터 그네, 줄넘기, 두 발 자전거까지 제 언니보다 훨씬 일찍 해냈다. 난 그런 녀석을 전전긍긍 불안함으로 바라보며 늘 손을 내밀었지만, 매몰차게 퇴짜를 맞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때부터 계단도 혼자 오르고 내리고 심지어 제 옷도 제가 골라 입었다. 번번히 아가를 향한 어미의 마음을 몰라 주어 서운하기가 말도 못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가의 타고난 성향이 철저하게 독립적이었기에 신이 만든 그릇이 그런 것을 내가 무슨 힘으로 바꿀 수 있었겠는가.


그런 아이가 내게 부탁이란 것을 한 날, 뛸 뜻이 기뻤다. 집안 일을 하다가 행여나 시간에 늦을까봐 학교 끝나는 시간을 맞추려고 시계만 쳐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예전에 운동회 날, 꽤나 먼지가 날렸을 법한 드넓은 아이의 학교 운동장 저 끝에서 막둥이로 보이는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난 반가운 마음보다 '어쩌지? 돌아가야 하나?' 갈팡질팡 갈등을 하게 되었다.

막둥이 주변으로 친구들이 열 댓명은 무리 지어 오는데 막둥이는 요즘 말로 '핵인싸' 또는 '일짱' 정도 되는 인맥부자, 친구부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매일 저녁 상을 차릴 해질녘 즈음, 친구들이랑 놀다가 얼굴이 새카맣게 되어 들어오는 녀석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니! 저렇게 많은 친구들이랑 나올 거면서 엄마한테 대체 왜 데리러 와달라는 거야?'


막둥이와 오붓한 단 둘만의 데이트를 상상했던 난 친구들에 둘러 쌓인 막둥이 녀석한테 인사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내개 창피해야할 상황은 아닌데 괜히 뻘쭘해졌다.


막둥이는 나를 알아보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막둥이 주변의 아이들은 꿈틀이 젤리를 질겅질겅 씹어 먹고 또 막둥이 입에 한 움큼씩 넣어주면서


"안녕하세요! 아줌마! oo이랑 놀아도 돼요?"

라고 물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사내아이들 여자아이들 우루루 섞여 놀이터로 갈 모양이었다.


"엄마! 놀고 와도 돼지? 몇 시까지? 여섯시?"


친구들에 둘러 싸인 막둥이의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몇 마디 말도 못 붙이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막둥이는 여전했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체 안 된 낯선 동네 새 학교에 누구하나 아는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장선거를 나갔고, 당연히 떨어졌다. 그러나 와신상담. 2학기 때, 여름방학 말에 허벅지에 입었던 화상치료를 받던 중 등교가 어려웠던 2주동안 반장선거가 있었고, 막둥이는 병원에서 드레싱을 받자마자 반장선거에 나가려고 붕대를 감고 절둑거리면서 등교를 감행했다. 막둥이가 학교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이들이 웅성댔고, 때마침 반장선거 투표를 시작하려는 참에 공약도 없이 막둥이는 출사표를 던졌다. 막둥이가 등장하는 순간, 입후보 했던 서너명의 아이들이 줄줄이 '망했다'라며 탄식했다던데 결국, 막둥이는 반장이 되었다. 그렇게 작년에도 올해도 연이어 반장. 아무튼 초등학교 입학 후, 계속 반장이다.


"엄마! ㅇㅇ가 전화 왔어.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


엊저녁을 준비하다가 막둥이는 잠시 나갔다가 온다더니 통닭을 들고 왔다.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었겠는가. 워낙 성격이 좋고 친구가 많다보니 나도 모르는 어느 친구들의 엄마들과도 두터운 관계를 자랑하기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머!oo 어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얼떨결에 인사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사 온 이 동네에서도 역시 예외 없었다. 아파트 단지 내 곳곳에 막둥이 친구들이고, 그 친구들의 부모들이었다. 아침에 지하에서 나가 퇴근 후 지하로 들어오는 내가 일주일에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었고,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는 것조차 바쁜 일상에 불가능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아이는 내게 'ㅇㅇ 친구에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고, 아파트 상가 마트에 가면 'ㅇㅇ 어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이럴 줄 알았어. 또 뭐 주셨지?"

"응! 통닭이야. 이거 친구 아빠가 직접 만드신거야?"

"진짜?"


난 막둥이 손에 얼른 남편이 시골 갔다가 사 온 사과 몇 개를 골라 봉투에 담아 들려 내보냈다.


오늘은 업무 중에 막둥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고구마 씻어가야 하나?"

"응?"

"편의점 사장님이 고구마 가져오면 군고구마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씻어가야 하나 해서."

"그거 깨끗해서 안 씻어도 돼. 물기가 없어야 더 잘 구워지겠지."


막둥이는 아파트 상가 편의점 사장님과 친분이 아주 두텁다.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어미보다 더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뭘 꼭 사지 않아도 친구들과 허구헌날 가서 참새방앗간 삼아 놀다 온다고 하니까 대체 내가 모르는 막둥이의 모습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얼마나 넉살이 좋으면 편의점 사장님과 친해져서 고구마를 가져오면 구워준다고 하셨을까.


학원 끝나고 집에 온 막둥이의 손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군고구마가 여섯개 들려 있었다.


"엄마! 원래 여덟개 가져갔는데 하나는 사장님 드리고 하나는 경비아저씨 드렸어."

"아이고! 잘했어. 진짜 잘했다. 넌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니?"


전교 회장에 괜히 출마한 게 아니었다. 아주 인간관계가 대통령감이었다. 막둥이 덕분에 주말 저녁도 월요병에 시달렸던 어제도 저녁이 아주 풍성했다. 막둥이 녀석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일을 했다. 마흔이 되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고, 덕분에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마구 덤벼대다 보니 제빵사부터 차량도우미, 병원 근무, 학교 급식 조리사, 그리고 반도체장비 부품 공급회사 근무 경력까지 다양해진 이력에 더이상 두려울 게 없는 갱년기가 되었다. 형편때문에 일을 하기는 했지만, 막둥이를 그 보다 세 살 많은 제 언니에게 맡겨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의지하며 엄마 없는 시간을 보낸 세월이 근 10년이 넘다보니 큰 아이에게도 미안하지만 막둥이에게 더 미안했다. 막둥이는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어떤 때는 학원을 5일동안 쉴 틈이 없이 다녀야 할 때도 많았다. 그 탓인지 친구 부자로 심심할 틈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 다행이기도 하고, 어쨌든 엄마가 선사해야 할 삶보다 훨씬 더 멋지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살게 된 것 같아 대견했다.


그리고 무척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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