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급식실

12화 2024년 7월 18일 폭우.... 예기치 못한 송별회1

by MAMA

난 내가 싫었다. 그까짓 것 넘겨버리지 못했던 억센 갈대는 가시가 되고 목구멍에 걸려 가슴을 해 집어 놓은 ‘이미’와 ‘아직도’ 사이의 갈등. 이젠 더 이상 필요도 없고 그것들이 나를 어찌해 주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엄마! 난 뭘 해야할 지 아직 모르겠어."

"아직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사실 몇가지 되지 않아.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관심사가 절대 많지 않아. 그것 중에 잘 골라봐."

"엄마는 꿈이 뭐야?"

"나?"


요즘 중학생이 된 큰 딸이 진로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을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 지 앞으로 무얼 해야할 지 기도 중이라는 것이었다. 자아에 대한 고민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다. 꽤 진지한 표정을 보니 기특했다.


꿈은 이루질 못할 기대라는 게으름이었나. 이미 포기했어야 하는 '나'와 아직도 포기할 수 없는 '나'.

마흔 중반,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굴러다니면서 나의 삶과는 낯선 많은 것들과 씨름하면서 다투는 끙끙댐이 어느 날은 나를 성장하게 했다가 어느 날은 나를 한없이 좌절하게 했다. 어제의 날씨처럼......


폭우였다. 새벽 빗소리는 공포영화였다. 과연 출근을 할 수 있을까 새벽녘 열어 둔 베란다 창문을 닫으며 우려했으나 우리는 그저 힘없는 을의 노동자 아닌가. 퍼붓는 비를 뚫고 모두 출근을 했다. 휴게실은 난리가 났다. 송별회고 뭐고 집에 가야 할 판이었다. 집에 남아 홀로 등교 준비를 할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다들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 학교는 등교시간을 늦춰 주었고 어느 학교는 등교하지 말라고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때, 큰 딸에게 사진이 왔다. 등교 중에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인데 버스 안으로 물이 차 오르는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다.


"엄마! 나 죽는 거 아니겠지?"

“어떡해! 얘들한테 문자 온 거 봐봐.”

“어머! 등교 못 하겠는데?”

“등교하지 말라고 하네.”

“비가 많이 와서 굴다리 밑 다 잠겼네.”

“어머머머! 우리 아파트 1층 물들어 오나 봐요. 여기 사진 봐봐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직 학교에서는 아무 말이 없잖아.”

"우리 아들 학교 잘 갔나 몰라. 전화해 봐야지.”

"나도 나도"


그 사진을 보고 나니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회식은 취소될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등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곳곳에 물이 넘쳤다. 아무리 폭우라 해도 등교 못 할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전에 8년 있는 동안 살던 동네에서는 말이다. 그곳이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배수에 문제가 없었던 곳이었다면, 이곳은 이사 와서 아파트 앞 도로의 맨홀 뚜껑은 시도 때도 없이 물이 넘쳐 콸콸 솟구치기가 일쑤였는데 아마도 배수의 차이나 지대의 높낮이로 매년 겪어야 할 생활의 문제란 것을 장마 때서야 깨달았다. 동네 곳곳의 지하도가 차단되었고, 안전문자는 계속 띵똥거리며 왔다. 이 날, 급식실에는 안전문자가 통하지 않았다.


오늘은 송별회. 송별회라 하기엔 그 경력이 참으로 부끄러울만치 짧다. 난 그저 명자 언니 말대로 “나쁜 계집애” 일 뿐인데... 너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죽을 만큼 힘들어도 재미있는 일이라 여길 만큼 활기 넘치는 직장일 거라 우기며 살아도 되는 그런 하루였을텐데....라는....명자 언니는 늘 뒷 말을 잇지 못했다.

조리장님의 제안으로 내 송별회가 급조되었다. 나는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던 일들에 대한 미안함에 조리장님께서 송별회를 제안하셨는데 실무사들 모두가 방학이 되기 전에 모이려면 오늘 밖에 유효한 날짜가 없어서 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심지어 명자 언니는 병가로 휴가까지 낸 상황이었으나 꼭 나오라고 조리장님께서 말씀하셔서 언니한테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마련된 송별회 날이 하필 날씨도 지랄맞아 모두를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언니! 이 사진 좀 봐봐! 실시간이야. 지금.”

“지금? 이렇다고? 아파트 1층인데?”


급식실의 어떤 이가 사는 아파트의 1층이 침수되고 있는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거의 신축이나 다름없는 5년 정도밖에 안 된 아파트가 침수되다니 그건 설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만 그래도 도로 곳곳에 흙탕물이 넘치는 것을 보니 비단 건설사의 시공문제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이 등교를 해도 되니 말아야 하니 하는 상황에 이미 시간은 8시 40분이었고 비교적 등교 시간이 일찍 마무리되는 중학교 아이를 둔 엄마들이 많은 급식실은 그래도 걱정보다는 이미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의 문자를 받고는 안도감에 평화가 찾아왔다. 어떤 학교는 누수가 되어 급식실은 운행을 못하고 업무를 종료했다고 하는데 그런 예기치 못한 행운이 누군가에게는 찾아오기도 했다. 우리 급식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오늘의 메뉴를 준비해야만 했던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아! 천재지변 휴가라니!”

“정말 부러워. 우리 학교는 어디 누수되는 곳이 없나?”

“없어요. 우리 학교는 아주 잘 지었나 봐요. 하하하”


등교를 하니 마니 했던 아이들이 제자리를 찾은 삼십분정도의 걱정스러운 시간이 지나자 급식실은 다시 활력이 생겼고 분주해졌다. 주찬팀에서는 꽤 굵고 뚱뚱한 치즈 돈가스를 오븐에 넣었고, 맛깔스럽게 오이지를 무쳐 보겠다 호언장담하던 미현이는 오이지 물 빼는데 여념이 없었다. 닭살 들깨국 팀도 닭을 삶고 찢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라 바쁘게 움직였다.


이렇게 습한 날. 땀과의 씨름은 이제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지만 싸워서 이겨 본 적이 없는 싸움에는 그저 내 몸을 맡기는 게 최선임을 깨달아 포기했더니 젖은 옷을 입고도 살만했다. 남편과 남편 고향에 있는 제법 큰 밭에 일하러 가면 늘 잡초와의 전쟁의 연속이었다. 어머님께서 가족 먹을거리 제배하면서 무슨 제초제냐 밭이며 물이며 다 망가진다고 하시는 탓에 겨우 한 달에 두어 번 겨우 시간을 내어 파릇파른한 생명들을 보러 가면 주인의 발소리를 듣지 못한 녀석들은 원래 주인이 없던 잡초들에 뒤덮여 힘을 못쓰고 시름시름 대었다. 남편은 풀하고 싸우는 거 아니라 하였지만 풀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예초기를 사고 트랙터로 뭉개고 낫으로 베고 별의별 수단을 다 써도 패배하였다. 그러려니 한다고 봐줄 잡초라면 왜 이름이 잡초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가 될 때가 있다. 가을이란 녀석이 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나마 무성하게 무서운 속도를 자랑하는 잡초의 폭풍 성장기가 주춤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이 정도면 때의 흐름에 맡기는 게 순리이겠다 싶다. 곧 있으면 방학식, 곧 있으면 퇴직이니 참아보자 하는 급식실 습기를 대하는 마음이 아마도 가을 잡초를 대하는 마음이려나 싶기도 했다.


내일은 미현이와 주찬 담당이다. 세척실에 남아 끝없이 들어오는 식판과 바트들을 생각만 해도 한숨부터 나오지만 앞선 걱정이 고통을 경감시켜 주거나 습기를 떨어트려 줄 수 없기에 두뇌에 해를 끼치는 생각조차도 미리 하지 말자 곱씹었다. 적어도 여기서는 그게 진리이다. 그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걱정스럽다 입으로 내뱉어버리는 순간 더 고통스럽고 더 짜증이 난다. 삼켜버리면 모기에 물린 가려움 정도의 그뿐인 통증이라 지나가기 마련인데 속 사정이 겉 감정이 되는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덥고 미칠 것 같이 포기하고 싶은 체력의 한계를 매 순간 넘어야만 하는 극한 직업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다.


모기에 물렸을 때 적당하게 길어진 손톱으로 시원하게 긁고 싶은 충동이 시도 때도 없이 들게 마련이다. 차마 모기가 콱 물은 자리는 감염의 위험이 있을 것 같아 소심하게 꼭 두 손가락으로 그 주변을 긁게 마련이지만 어찌 됐건 그 긁어 버리는 순간 그 시원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뭄의 냉수라고 할까. 그런데 거기서 딱 멈춰야 하건만 계속 긁어 상처를 내게 된다. 그러면 안 가려울 것 같지만 더 가렵고 더욱더 가렵다. 딱 이틀 그리고 반나절 정도만 참으면 극강의 가려움은 피할 수 있다. 모기 물린 곳을 긁다가 낸 상처가 뭐 그리 대단할까 싶어도 참으면 물집이나 상처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아무튼 이 일을 무슨 애국도 아니고 훈장도 없는데 참고하고 있을까를 매번 되뇌는 순간, 자존감은 한없이 추락하고 근골격계질환의 통증은 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기 물린 데를 참는 것처럼 무심한듯한 평범한 인내심의 비법 따위가 이 극한 막노동의 일을 대하는 고급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또 예를 들어 보면, 노브랜드에서 늘 1980원에 파는 79%의 다크초콜릿을 어느 날 발견하고는 이 비싼 다크 초콜릿을 이런 합리적인 가격에 팔다니 화들짝 놀라며 나만 아는 비밀인 듯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그 초콜릿을 아끼면서 약처럼 아주 조금씩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초콜릿을 먹으면서까지 기분까지 다크 하게 먹고 싶지 않다는 소비심리가 다수의 입장이라 잘 팔리지 않아 늘 그 가격에 판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찌 됐건 언제나 마트에서 호구인 나는 그걸 냉큼 집었고 초콜릿을 입에 넣는 순간 왜 이것을 심장에 좋은 약으로 먹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도 약 2주를 1980원이 아까워 쓴 맛을 참아내며 한 조각 한 조각 먹어 없앴다. 초콜릿까지 건강을 생각해서 먹느니 차라리 버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진짜 이 초콜릿은 값어치 없는 쓰레기가 돼버릴 것 같았고 내 선택 또한 쓰레기 같아질 것 같아서 자기 비하와 자기 경시 감정들을 억눌러 참았다. 당연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는 했다. 씁쓸함에 손이 가질 않았지만 괜찮다 몸에 좋다 합리화라도 시키니 혀 끝 멀리 어디에선가 조금의 달달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맞다. 다 좋은 하루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루하루 다크초콜릿과 같이 쓴 우여곡절과 모기 물린 데처럼 근질근질 억누른 감정이 스멀스멀 넘어오는 그렇지만 그냥 참다 보면 목구멍 어딘가 다 넘어가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어버리는 급식실. 딱 그 정도로 힘듦이란 두 글자를 지울 줄 아는 다스림이 필요했다.


"혜성아! 이제 정말 못 보는 거야?"

"..........."

"아쉬워서 어쩌니."


조리장님께서는 전보 신청을 하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첫째는 아마 나의 사직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숙 언니를 못 마땅히 여기셨고, 어떤 이유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이들과 같이 집단 따돌림의 예기치 못한 수장역할을 주도하다가 나란 사람이 그렇게 감정의 상처를 받으며 그 일들의 잘못됨과 어른답지 못했음이 들추어짐에 마음에 파장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그 눈빛이라는 것에서 그 들추어짐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달았음이 느껴졌다.


인류가 창조된 이후 절대 선은 단 한 사람 예수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대 선의 언저리에 있으려고 노력했던 이들은 다 선인 대접을 받았고 선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선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신념에는 그 선들이 늘 존재했고, 그 선을 넘으려는 악은 늘 주춤거렸다. 그게 양심의 가책이라는 신의 선물이었음에 감사해야 했다. 은숙언니는 내게 늘 말했다.


"난 늘 혼자였어. 아무도 없었어."


혼자였던 언니는 우리를 만났다. 매일의 고됨을 기댈 수 있는 낮은 언덕 정도가 생겼음에 언니의 하루가 덜 외로워졌다. 그걸 무척 못 마땅해했던 사람이 조리장님이었다는 것을 난 일한 첫날부터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로운 이의 편에 서기로 했다. 나에겐 신의 선물이 있었으니까...


둘째는 진흙탕싸움때문이었다. 조리장님과 죽이 좋았던 혜진언니와 몇 명의 무리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싸움은 급식실을 불편하게 했다.


"조리장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아? 본인도 본인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해."

"일도 그렇게 안하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급식실들은 조리장하고 실무사하고 별 차이가 없대. 허리 아프다는 것도 핑계아니야? 그리고 조리장하고 조리사하고는 엄연히 다르대. 그냥 조리사라고 불러."


갑자기 총부리를 바꾼 어제의 아군은 거침없이 진격했다. 조리장님은 14년 동안 여러 학교의 급식실에서 이러한 저러한 일들이 많았겠지만 이제 정년퇴직을 바라보시는 나이쯤 되고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깡다구니도 무뎌져서 상사로서 본이 되지 못했음을 현실자각 해버린 경우라고 해두면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같은 편이 되어 나쁜 짓을 더이상 할 수 없어진 그 무리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추이를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결말이겠지만 어른들의 나쁜 짓도 반드시 권선징악이어야 한다. 이러려고 낸 사직서가 아니었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 주어질 해피앤딩을 위해 감내해야하는 진통일 것만 같았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알아야 한다. 그 다름으로 인해 미움받거나 질책받아서는 안된다. 다름은 그저 다름이다. 미워져야만 하는 싫음의 이유와 합리화로 포장하여 누군가를 몰아 세워 내가 얻을 득은 없다. 우리는 그 다름의 이해로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마주하는 누군가와 다르기때문에 어울릴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 이해를 배운다. 가끔, 그 이해가 피곤할 때가 있고 그 지혜가 덧없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중에 그 누군가를 질타할 수 있는 거룩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의 모든 결국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위함이다. 내일이 있는 모든 이에게 우리는 오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게 꿈이라면 괴로울 일이 있을까.


어느덧, 두시. 비는 그쳤다. 송별회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갈팡질팡 진흙 구덩이의 감정싸움에 핑계치 못할 햇볕이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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