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꽃 구경
2026-03-30
5.59km
48:39
7'59"
302kcal
2026-04-01
4.3km
42:07
194kcal
아빠가 봄이 왔다고 했다. 그러나 내 영혼에 봄이 아직 깃들지 않았다. 차디찬 겨울, 숨 소리라고 나질 않는 쇳 덩어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자재실에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전, 업체를 불러서 10여년 동안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는 회사 에어컨들을 모두 깨끗이 한 후, 히터 바람에 코가 더이상 시큰거리지는 않았지만 그 정화된 바람으로도 자재실에 봄이 오질 않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저만치 나무도 아직은 앙상했다. 2주차에 접어든 감기는 꽤 호전되었다. 누렇게 찐득거리는 코가 목을 타고 흐르는 대신 마르기 시작했고, 코가 목에 걸려 켁켁거리는 빈도수도 줄었다. 업무에 짓눌리는 8시간, 2주간 감기로 인한 최악의 몸 상태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도 운동을 하기가 어려웠었는데 날 붙잡고 늘어지는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녀석을 드디어 이기고 일어나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어제 저녁도 부담스럽지 않게 먹었다. 그간 감기라고 체력 보강이라는 합리적인 핑계로 탄수화물을 마음껏 섭취했더니 겨우 낮아진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그래서 큰 아이의 다이어트에 합류했다. 가벼워진 식사 양 덕분에 남편의 중국 출장으로 새벽 4시반에 눈을 떴음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기분 좋은 탄력이란 걸 받아 새벽, 헬스장으로 나섰다. 아직 깜깜한 줄 알았건만 6시가 막 지난 새벽은 이제 어둡지 않았다.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동지가 지날 무렵 논두렁 밭두렁 곁을 뛰어야 하는 겨울 새벽 운동이 두려워졌을 때부터 몇 달을 헬스장에서 보냈다. 물론, 해가 쨍한 시린 겨울 주말은 동네방네 신이 난 들개처럼 뛰어다녔지만 주중에 운동 가능한 시각은 새벽 아니면 밤 8시가 가까운 때라 홀로 뛰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여명이 밝은 새벽 공기가 반가웠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무료하게 평면적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향을 급 선회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언덕을 올라 공원을 지났다. 나와 같이 이 시간을 누구보다도 일찍 시작하는 러너들을 보니 설렘에 두근거렸다.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슬슬 시동을 걸어 달리기 시작하니 움츠렸던 마음에 봄이 들어왔다. 지하세계로만 다니느라 보질 못한 아빠가 말한 봄들이 이미 자리를 펴고 있었다. 개나리가 이미 무성할 정도로 덩굴을 이루었고, 여린 노란 점박이 산수유와 우아한 아이보리 색 블라우스를 입은 목련도 활짝 피었다. 벚꽃은 몽울몽울 꽃망울이 곧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야트막한 산자락 곳곳에 매화는 하얀색 색종이 모자이크를 붙여 놓은 듯 했다. 밭두렁에는 퇴비를 뿌려놓고, 골을 파고 두둑을 만들어 검은 비닐을 씌워놓은 농부의 부지런함에 흙냄새가 진동을 했다.
신이 났다. 산책 나온 개가 목줄이 팽팽해 질 때까지 뛰고 싶어 안달난 것처럼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으면서 달렸다. 감기 기운이 체 가시지 않은 몸에 찬 기운이 스밀까 겹겹이 입고 나온 옷들이 거추장스러웠다. 거의 굴러가듯이 뜀박질을 했다. 봄에 취해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보니 그제서야 출근길 차들의 바쁜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나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뇌리에 번개가 번쩍였다. 7시!
봄이 왔다. 다시, 뛰어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