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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by MAMA

"엄마! 빨리 끊어. 나 한 정거장 전이야."


지난 주 토요일 큰 아이는 멀리 외출을 했다. 최초로 부모를 동반하지 않고 친구들과 에버랜드를 갔다. 물론, 이 도시와 농촌이 결합된 복합단지 촌에서 대중교통을 타고서는 에버랜드 오픈런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동반 친구들 중 어느 딸 바보 아버지께서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고 집으로 바래다 주신다고 하셨다. 우리보다도 더 한 딸 바보 아버지의 직장이 에버랜드 근처라고 하셨고, 일하러 가는 김에 라이딩을 자쳐하신거라 그 수고로움에 미안함이 덜 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딸 아이에 대한 걱정은 남아있었다.


"엄마! 나 이제 어린 애 아니야. 걱정하지 마."


딸은 큰 소리를 쳤다. 며칠 전부터 설레어 잠을 설쳤고 전날 밤에도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수다를 떠느라고 잠을 많이 못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친구네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8시 30분인데 7시 30분이라고 잘못 알고 있어서 토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먹고 싶다던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나야말로 일에 치여 주중에 잠을 많이 못자는데 토요일에도 새벽 밥을 했으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딸 아이는 깜깜한 밤중같이 곤히 자고 있었다. 그래도 놀러간다고 새벽에 깨워 유부초밥을 먹으라 하니 짜증한번 내지 않고 꾸역꾸역 나와 유부초밥을 먹었다.


"엄마! 약속 시간 8시 반이래. 나 조금 더 잘게."


그럴 것 같았으면 진작에 말할 것이지 새벽 밥 한다고 엄마 깨우고 아빠 깨우고 주말 아침을 부산스럽게 만들고는 저는 더 잔다고 다시 누웠다. 평상시 같으면 울화가 치밀어서 한마디 했을테지만 놀러간다는데 기분을 어지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참았다.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세수는 안했어도 옷은 입고 다시 꿀잠을 자고 있는 다 큰 녀석을 보니 귀여웠다.


'저렇게 설렐까'


덩치는 어른인데 생각은 아직 어린이라는 생각을 하니 짧아진 바짓단 밑으로 나온 대왕발이 더욱 귀여웠다. 우리는 가끔 나만치 커버린 아이를 아이라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다 큰 녀석을 보고는 어른인 줄 알고 어른처럼 행동하고 어른처럼 생각하고 늙으라고 종용한다. 그것처럼 어리석을 때가 없다. 그렇다치면 나는 어른인가 곱씹어 봐야 한다. 나는 요즘 마흔넷. 내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만큼 마음이 늙지 않는다고 느껴질때가 많다. 늙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철이 없다고 해야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것이 더욱 서럽다못해 시릴때가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키가 컸고, 발이 컸다고 어른이어야 한다는 착각은 참으로 억지다.


"그거 신을거야? 오늘 엄청 걸을텐데.... 스니커즈는 바닥이 얇아서 많이 걸으면 아플텐데....."

"엄마! 이게 예쁜데... 이 옷에 에어 들어간 운동화 신으면 안 예쁘다고...."

"그래. 잘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그리고 친구들 전화번호 중 하나만 엄마 다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수 있는 곳을 한군데라도 알아야지."


그렇게 큰 녀석은 바닥 얇은 스니커즈를 신고 제법 멋을 부리고는 룰루랄라 에버랜드로 향했다. 사실, 막둥이는 언니 바라기다. 요즘 언니가 친구들과의 외출이 잦아지자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방법을 많이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언니가 에버랜드를 가는 주말을 고리타분한 엄마 아빠와 보내고 싶지 않은 눈치빠른 막둥이는 벌써 궁여지책을 마련했다. 전에 살던 동네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겸사겸사 나도 막둥이를 핑계삼아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고향같은 익숙한 동네에서 막둥이는 막둥이대로 나는 나대로 그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시간을 보낸 후 저녁 식사는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8시 반즘 되었다. 큰 딸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분명, 출발할 거라고 7시즘 문자가 왔고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아주 짧은 통화를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엄마! 9시즘 도착해. 버스탔어. 배터리가 없어서 이거 친구 껄로 전화하는 거야. 엄마 거기 우리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9시즘 나와. 나 무서워."


바래다 준다던 그 아버지는 어디 가셨고,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린다는 것인지 재빠르게 제 말만하고 뚝 끊어버린 전화에 황당할뿐이었다. 딸 아이 전화는 먹통이었다. 친구 번호라고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았다. 나도 오랜만의 외출에 친구와 수다를 떨고, 농수산물 도매센터에서 김치거리를 사고, 쓱데이라고 이마트까지 구경하한 탓에 몸이 많이 피곤하여 그냥 누워버리고 싶었는데 그 일방적인 전화 한 통에 바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겨우 다시 통화가 되었다.


"몇 번이라고? 그 버스 우리 집 앞에 안서는데...."

"엄마! 빨리 끊어. 한 정거장 전이야."


친구들은 다른 동네라 먼저 내려야 했고 친구 전화를 빌려쓰던 딸과는 이제 더이상 통화할 수 없었다. 딸 아이가 말한 버스는 우리 집 앞 버스 정류장에 서지 않는 것이 큰 문제였는데 딸 아이는 몰랐 던 것 같았다. 끝자리 한 자리가 다른 비슷한 광역버스가 있는데 그 버스 정류장과 헷갈렸던 모양이다. 이사 온 낯선 동네에서 학교 앞에서 집에 오는 버스라고 탄 것이 광역버스였다. 그만큼 딸 아이는 대중교통에 전반적인 지식이 거의 없다. 이사 오기 전에는 코 앞이 학교이고 코 앞이 학원이라 웬만해서는 버스 탈 일이 없었다. 복잡복잡한 동네라 거의 걸어서 필요에 따른 모든 곳을 다닐 수 있는 곳이었기에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홀로는 더더욱 버스며 지하철을 탈 일이 없었다.


'아이고! 이 녀석이 그 버스 우리 동네에 안 서는데.... 큰 일 났네. 종점에서는 내리겠지.'


연락도 되지 않고 조바심에 발을 동동 구르며 정류장에 일단 서있었다. 혹시나 버스 안에서 이 정류장을 지나치다가 나라도 보면 덜 당황하겠다 싶었고, 이 정류장을 지나면 마지막 정거장까지 갈테지만 그 정류장이 그래도 막둥이 녀석의 초등학교 앞이라 정신차리고 보면 아는 곳이기에 걸어 올 수는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 때. 딸 아이가 탔을 것 같은 광역버스가 눈 앞에서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자기야. 아무래도 안되겠어. 빨리 나와서 종점에 가봐봐. 길이 두 갈래라 막둥이 학교 앞으로 걸어오면 인적이 드물어서 무서울 것 같아. 나는 다른 쪽으로 가볼게. "


나한테 걱정말라고 잔소리하던 남편도 인적드문 딸 아이의 귀가길이 걱정이 되었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나왔다.


'아니, 이 녀석이 당황했을텐데 잘 내렸는가 몰라. 어떻게 하지? '


나는 어두운 길을 두리번 거리며 혹시라도 딸 아이가 오고 있을까 싶어 남편과 계속 통화를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엄마!"


드디어 만났다. 딸 아이가 탄 버스는 내가 본 그 버스가 맞았고 낯선 정류장에서 내린 딸은 깜깜한 밤 거리가 무서워 죽도록 뛰었다고 했다. 에버랜드에서 노느라 발바닥이 닳아 없어질 것 같은 지경이었는데 생명에 위협이 느껴질 정도의 두려움에 휩싸이니 냅다 달려지더라고...


"엄마! 엄청 무서웠어. 원래 생각했던 정류장에 안서니까 그때부터 무서웠어. 그래서 내렸는데 집에 가려면 버스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내리자마자 막 뛰었어. 가로등도 하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앞만 보고 달렸더니 엄마가 있었어."


눈물이 그렁거리는 딸 아이의 눈에서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손을 꼭 잡아 주었고 꼭 안아주었다. 절뚝거리며 아파하는 데 업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딸 아이는 금세 웃음을 찾았다. 집에 가는 길에 놀란 가슴 진정하라며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어 물려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잘재잘 놀러갔다가 일어난 일들에 대해 떠들었다. 죽도록 달렸던 그 길에서 딸 아이는 잊지 못할 사건 하나를 갖고 또 홀로 한뼘 성장을 했다. 난 그 길 끝에 서 있으면 된다. 손을 잡고 뛰는게 아니라 이제는 혼자 뛸 수 있는 그 길 끝에 격려와 응원을 해주고 안아주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한뼘 성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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