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도시 생활에서는 밤 산책이 흥미거리였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몇 걸음 나서면 이마트, 홈플러스, 심지어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뉴코아가 한 거리에 있었다. 덕분에 밤에도 불야성이었으며,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구경삼아 마트를 돌기 시작하면 두 세시간은 금세 지루하지 않게 갔다. 야식거리를 따로 사지 않아도 마트 시식코너는 충분히 심심한 입을 적당히 만족시킬 수 있는 재미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과의 산책이 흥미거리이자 방에 박혀있고 싶은 아이들을 적당히 꼬득일 수 있는 유혹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사 온 이 동네는 달랐다.
도시와 농촌이 적당히 섞여 있는 신도시. 한 걸음만 나가도 불야성은 커녕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시골이다. 논두렁은 밤에 정말 깜깜하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는 적막한 거리에 가로등만 켜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고 살짝 무섭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마다 넘쳐 북적북적 대는데 희한하게 길거리는 사람들이 없고 차만 지나다니는 것이 낯설기만했다. 어쨌든 이 심심한 동네에서도 아이들과 밤 산책을 기대했건만 아이들은 논두렁이 저만치 까맣게 보이는 길을 걷고 싶어하지 않았다. 무섭다고 했고, 예전같이 다이소며 시식코너며 뭔가 군침을 자극할 만한 유혹이 없는 운동을 귀찮아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척 지루하게 느꼈다. 물론, 아이들의 하루의 끝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무료하게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건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라 어쩜 당연한 거였다. 요즘 아이들의 일상도 그렇게 쉬운 건 아니기때문이다. 대중교통이 흔하지 않은 우리 아파트까지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으로의 발걸음이 뚜벅이가 되거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참기 시작해서이다.
얼마 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최저시급이니까 월 200만원 조금 넘는 사무보조. 이 정도면 학교 급식 일 보다야 훨씬 낫지 싶다. 얼마 전까지, 학교 급식 일을 했었다. 몇 달의 경험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다. 이사 온 지 한달도 체 지나지 않아 얼떨결에 가서 일하게 된 곳이었는데 노동강도가 높다보니까 이사 후 지쳐있던 몸을 추스릴 시간이 충분치 않아 혹사당한 몸이 결국 하루 하루를 버텨내지를 못할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다. 남편도 반대가 심해 그만두었고 그 후, 아이들과 긴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 다시 이력서를 냈지만 구직이 쉽지 않았다. 이력서 열 군데 정도 넣으면 일할 의사가 진짜 있는지 떠보는 한 두통의 전화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면접을 본 곳도 가뭄에 콩 나듯 몇 군데 있었으나 20대 어린 친구들과 같이 면접을 보게 되면 당연히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지혜가 연륜으로 밥 먹여주는 40대 아줌마라하여도 오너 입장에서 젊은 친구들이 체력적으로나 시간관리적으로나 훨씬 낫겠지 싶다. 나라도 그럴 것이기에 날 뽑아주지 않은 그들의 선택을 비난 할 수 없었다. 몇 차례의 쓴 낙방의 잔을 마시고 포기할 때즈음 전화가 왔다. '꿀 알바 사무보조구인' 이라고 해서 별 기대없이 이력서를 넣은 곳이었다. 작은 물류회사인데 일이 별로 어럽지 않다고 했고, 면접시에 선글라스를 낀 대표가 별 이력도 없는 아줌마같다는 식의 툴툴거림으로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합격전화를 받았다.
그 후, 지금 한 달이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늦잠 잘 시간이 없어졌고, 학원을 스스로 다녀야 했으며, 물론 하교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 일은 세 시 반 정도면 끝나기때문에 아이들 하교부터 학원까지 차로 바래다 주고 데리러 갔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한 부분은 본인들이 해내야만 했다. 학원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갈 수는 있지만 바래다 줄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몫이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하루 끝이 전보다는 조금 더 피곤해졌다. 나는 훨씬 더 피곤해졌지만 훨씬 더 하루가 아쉬웠다. 그래서 까만 하늘이라도 보고 싶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러고 싶어하지 않았다.
혼자 걷는 밤 산책 길은 처음에는 고요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며 다투다 짜증내다 웃다가 이르다가 하는 많은 감정이 오고가는 소음이 사라졌다. 하늘은 깜깜했다. 아이들과 걷다보면 돌아가자고 몇 번을 채근질하느라 하늘이며 길이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어달을 혼자 걷기 시작했다. 여름 끝 약간은 아직 더웠던 어느 날부터 홀로 걸었다. 가끔 논두렁에서 나는 퇴비 냄새에 아이들은 질색하며 투덜거렸는데 혼자 걷다 보니 그 냄새조차도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공기와 어우러져 코끝을 기분좋게 훑고 지나갔다. 일하면서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단풍이 아름답게 걸어왔더랬다. 나무마다 형형색색 자태를 밤하늘에 수 놓고 있었다. 어쩜 그리도 담백한지 검정 바탕에 노란 은행잎은 그 자체의 담백한 맛이 있었지만 화려하기가 말도 못했다. 그렇게 홀로 걷는 밤 거리는 가을 맛집 그 자체였다. 이제 더이상 나는 아이들에게 같이 나가자며 꼬득이지 않는다. 구걸하지도 않는다. 홀로 가을 밤 맛집을 다니며 훔뻑 논두렁 냄새에 취해있음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