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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by MAMA

우리 막둥이는 이제 더이상 바이올린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버려질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 가득한 마음에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아이의 방에 버려진 듯 주인의 무관심을 견디고 있는 바이올린과 보면대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얼른 치워버려야지 하지만 차마 치우지 못하는 건 나의 미련때문인가보다. 아이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혔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아이는 매번 옷이 맞지 않음에 불편해 했다. 그런데 그 옷을 보고 나만 만족했다.


그렇게 비유하니 우리 엄마가 떠오른다. 오늘도 친정에 갔을 때, 엄마는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옷이 많이 필요하겠다면서 교회 장터에서 엄마가 입으려고 싸게 구매한 옷들을 주욱 펼쳐 놓고는 마구잡이로 들이 밀으셨다. 내가 괜찮다면서 재차 거절하자 이번에는 엄마 취향의 레오파트 무늬의 머플러와 붉은 색 머플러가 어떠냐면서 딸의 얼굴에 대보시면서 잘 어울린다고 하셨다.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가져와 쌓아둔 옷들도 처치곤란인 상태라 극구 괜찮다고 했는데 화를 내기도 하고 별나다면서 이 좋은 옷들을 왜 안 입으려고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의 옷 입는 취향을 40여년 동안 나를 볼 때마다 보았을 텐데 구태여 엄마 취향의 옷을 나한테 입으라고 하는 걸 얼마나 더 참아야 할 지 어려운 숙제 같았다. 여하튼 우리 막둥이에게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우리 엄마 취향의 옷을 입을 수 없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겠다 싶으니 저 아이가 6년을 참아낸게 나보다 효녀다 싶다.


"진아! 펜싱이 재밌니?"

"응!"


막둥이가 6년을 연주해온 바이올린 대신 펜싱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막둥이는 땀 흘리는 걸 좋아했다. 하교 후에 항상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 밥 시간이 되서야 집에 들어왔는데 뭐 하고 놀다 왔냐고 물어보면 술래잡기라고 늘 말했다. 뛰는 게 좋아 학교 운동회 때 계주 선수로 뽑혔고, 키가 한 뼘은 차이나는 제 언니랑 달려도 막상막하였다. 기록싸움 위주의 수영같은 운동보다는 농구나 축구 등 상대방과 몸을 부딪치며 땀 흘리는 운동을 더 좋아했다. 반 대표로 남자 아이들과 섞여 다른 반과 축구를 해도 골을 넣는 건 우리 진이였다. 그런 아이가 요즘 휴가 중인 아빠에게 강아지처럼 부비대며 몸싸움하며 놀다가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엄마랑 왜 결혼했어?"

"그냥. 좋아서."

"왜 좋아했어?"

"그냥!"

"그냥?"

"이유가 있어서 좋은 거라면 그 이유가 없어졌을 때 좋아하지 않게되잖아."


남편의 대답에 나의 설거지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잠시 멈춰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그림같았다. 저 노을이 왜 아름다운지 이유가 있을까. 남편을 만났던 2007년 11월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이유는 선택의 조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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