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반 안 바꿔도 돼."
"왜? 교재가 너무 쉽다면서?"
"아니야. 괜찮아."
얼마 전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막둥이. 막둥이 녀석이 레벨테스트를 보았는데 초등부가 아니라 유치부 교재를 받게 되었다. 물론, 도통 타당하지 못한 테스트로 교재의 중간에 있는 단어를 읽어보라고 했으니 객관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조차 못 읽은 내 아이가 그 실력이 아니라고도 못할 노릇이어서 결과에 그저 순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둥이는 자존심에 작은 흠집이 난 듯하다.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어 투덜대었다. 처음엔 나도 '아니 우리 애가 그 정도는 아닌데...' 하며 따져보려는 심정이기는 했으나 교재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다시 읽어보라고 또는 아냐고 재차 물었는데 다시금 더듬대는 걸 보고 씁쓸한 인정을 했고, 아이도 이내 재빠르게 태도를 바꾸었다. 가끔 우리는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나이즘 되고 보니 무수히 많은 삶 중의 선택들에 대한 답을 찾을 땐 자신의 변변하지 못한 처지를 깨닫는 '주제파악'을 빠르게 해야 실수도 시간낭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화요일 오전 근무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지금껏 넉 달을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작은 물류회사다. 지나다니다가 흔히 볼 수 있는 가건물 형태의 3층짜리 사업체이기는 하지만 직원이 열명이나 된다. 구매부 3명, 영업부 2명, 물류담당부 3명, 물류 기사님 1명 총 9명이 2층에 있다. 물론, 대표이사인 큰 사장님과 실장님( 사모님), 실 업무 담당 작은 사장님은 제외한다. 그리고 마지막. 3층 창고직원이면서 물류를 담당하고 구매와 영업까지 모두 관여하는 관리직인 '나'를 포함하면 딱 열명이다. 출근하면 벌써 그날 하루가 어떠한지 짐작이 되는 날이 있다. 택배 상자가 회사 정문에 쌓여 있는 날, 보통 화요일이 그러하다. 택배란 것이 주말에 많이 시키다 보니 월요일에 출고가 되어 화요일에 제일 많이 도착한다고 한다. 우리 회사도 예외 없다. 화요일 회사 입구에 도착해 있는 박스들을 보고 고된 업무 강도가 예상되었다. 바로 그런 날이었다.
도착한 수십 개의 물품들을 해당 발주서를 찾아 분류하여 포장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출근하자마자 이메일로 도착한 새로운 발주서의 해당 품목의 재고를 확인하여 구매팀에 발주를 요청하고 납기일이 도래한 발주서를 영업부 담당자에게 고지하고, 혹시 미입고 된 품목이 있으면 확인하여 납품에 지장이 없는지 거래처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천 가지가 넘는 알 수 없는 품목들을 이제 제법 외우고 있는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기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도통 아무것도 알 길도 없고 말해준다고 알 수나 있을지 모를 희한하게 생겨먹은 부품들 사이에 먼지와 함께 덩그러니 있었던 석 달 전만 해도 헤쳐나갈 길이 막막했다. 그때만 해도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 비슷하게 생겨먹은 피팅류의 볼트니 너트니 하는 하찮게 보이는 것들 덕에 실수를 많이 해서 나 대신 거래처에 죄송해야만 했던 사장님의 발걸음이 있었지만 그걸 극복하는데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평소 바쁘게 발발거리며 영어공부, 독서, 운동, 신학대 공부까지 뭐든 늙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탓이 조금 있기는 했겠지만, 늘 낯선 일은 그만큼의 시간과 노동과 노력을 요구하는 터라 처음부터의 시작은 익숙함에 어느 정도 도달하기까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늘어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기적에 가까운 석 달이 지나고 몸은 아침마다 자동으로 일에 반응을 하는데 이는 나의 실수를 늘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견뎌 준 사장님 덕분이기도 하다. 사장님은 이제 나를 고용한 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여기신다. 그리고 나와 친해지고 싶으신지 어쩌다 창고에서 일을 하게 되시면 같은 시대를 살아온 것에 대한 공감으로 자꾸 이야기를 엮어 나가신다. 나는 그 이야기를 어떤 날은 즐겁게 받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엉덩이 붙일 짬도 없이 바빠 마음의 여유가 없어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게 노동자의 당연한 현실 아닌가. 월급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대화에 임하는 자세가 같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도 사장님의 그런 친근함에 직원들은 사장님을 어렵지 않게 대한다. 나도 이제 아주 조금, 전보다 사장님이 어렵지 않았다.
열개의 커다란 박스에서 쏟아진 물품은 백여 개에 가까웠다. 해당 물품들을 해당 발주서를 찾아 포장하여 납품을 준비했던 박스에 넣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그때, 사장님이 불렀다.
"문주임! 여기 와서 밸브 좀 뜯어요."
목소리 자체가 워낙 가늘고 톡톡 튀는 말투라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워낙 바쁠 때 그러한 말투를 들으니 내 교감신경이 민감하게 곤두섰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투가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1층 창고에서 작업했어야 했던 물품들이었는데 나랑 입사동기인 박대리가 잘 몰라 3층에 팔레트 째 올려놓은 수십 개의 박스를 사장님 혼자 뜯고 있었다. 그 박스 안에는 고가의 밸브가 있었는데 충격 방지용 뽁뽁이로 포장까지 되어 있어 그것들을 벗겨내어 본체만 작업대에 올려놓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혼자 하려니 짜증이 나셨는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그 말투에 화가 났다. 순간,
'지금요? '
라고 하는 퉁명스러운 말투의 대꾸가 목까지 차올랐다 들어감에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몇 초의 그 순간에 당황했고 나 자신에게
'사장이 아무리 동갑이라도 친구는 아니지. 을은 을이야.'라고 다그쳤다. 그리고는 꾹 참아내며
"네에-"
라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포장지를 벗겨내어 밸브 본체만 작업대로 진열해 놓는 과정에도 감정이 수그러 들지 않았다.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상명하복은 오랜 시간 동안 부모에게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시시때때로 예의를 시궁창에 쳐 박은 것 같은 하극상을 밥 먹듯 해도 그걸 하극상이라 모르는 어이없는 인격에 쳐하고 만다. 그런 아이들이 예나 지금이나 아주 더러 볼 수 있다. 오늘 나는 그런 아이일 뻔했다. 사장님이 아무리 친근하게 동료처럼 다가온다 하여도 동료는 아니다. 아무리 같은 시대의 공감으로 동갑내기임을 드러내 심심풀이 옛이야기로 웃자고 해도 만만히 보아서는 안된다. 사장은 사장이다. 상사의 짜증도 감내해야 하거늘 사장의 짜증은 오죽할까. 적어도 내가 살던 시대의 내가 생각하는 사회 윤리는 이러하다. 최근 MZ 세대들은 이런 걸 고리타분으로 여기거나 자기 비하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때는 늘 이래왔기에 딱히 내가 다름도 모르겠다. 아무튼 욱 할 뻔한 나의 자아에 놀라면서 순식간에 '주제파악'이란 것을 한 내가 대견스러웠다.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