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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n 06. 2024

#8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그 돈받고 아이두고 나가나

"니 월급 얼마 받노"

"7만원정도받는데요".

사실 7만원 되지 않는다. 그것을 세세콜콜하니 6만 몇 천 몇 백까지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그냥 7만원 정도요. 라고 말했다.

그때 나에게 돌아 온 그녀의 말은

"그돈 벌려고 아이두고 나가나" 였다.

가슴에 비수가 꽉 혔다, 그것도 치유가 되지 않도록 깊이 꼽혀 한 평생을 가지고 산다.

아직은 결혼한지 3년이 조금 넘었으니 나도 비수를 꽉 꽉 꽉 꼽을 수가 없는 년수다. 입지가 그렇다.


지는 뭐 남편이 국립대 전임 강사라라서 돈을 많이 버나 보지 겨우 보따리강사, 시간강사 하다

이제 전임 강사되었으면서 속으로 생각하며 씩씩거렸다 코로 뜨거운 김이 나온다. 머리에서도 나온다.

이런걸 두고 뚜껑 열린다고 하는가 보다.

모두 공무원이라는 점은 같은데 전임강사라면 공시보고 들어간 사람으로 치면 서기보시보, 서기,

주사보시보, 주사보, 주사(6급),사무관 도 됐을랑 말랑 직위도 없으면서 모두 부모돈으로 살면서, 하고 생각했다


그 말은 한이 맺히는 말이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인간도 아닌 것이 인간의 탈을 쓰고 하며 속으로 아니 이제는 없는 사람이니 입으로 뱉는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도 문득 그생각이 나면 이제는 운전하며 욕을 한다.

얼마전 블랙박스를 교체하며 아차 하였다. 녹음이 되었겠구나.


나의 친정에서는 욕을 하지 않고 ,못한다. 우리할머니께서 조선시대 고루한 양반집안 출신이시고

양반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 일제 강점기에 집안만 보고 조혼을 당하신것이다.


그런 할머니앞에서 하나뿐인 손자가 밖에서 욕을 배워왔을 때 할머니께서 손등과 발등에 쑥 뜸질을

하였다. 히피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 왔을 때는 밤에 조용히 들어가셔서 머리카락을 썩뚝썩뚝 자르셨다고 했다.

한 밤중에 날벼락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런 엄한 할머니앞에서 감히 욕이나 험한 말은 있을 수 없었다. 허하지 않는다.

또 어디에 쑥 뜸질을 당할지 모르기때문이다.


그런 내가 차안에서 운전하며 억울한 일 분한 일이 떠오르면 욕을 한다. 뻔한 거지만,


아이가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나의 급여는 5만원, 그때 친정어머니가 하신말씀이다

'이돈 받으려고 공부시켰나'하셨다. 어머니께서 하신말씀은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세상을 앞서고 계셨다. 사표는 절대 안된다고 하셨다.그러면서 그돈 쓰지않으시고 차곡차곡 계를 넣어 주셨다.

그때는 계붇는 것이 돈이 빨리 모였다.


그5만원과 남편의 급여 5만여원을 합쳐봐야 10만원 조금 넘는다.

아이의 병원비, 헛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일주일 50만원, 검사비 따로 수혈을 위한 혈액구입비

따로 약은 수입약, 우리나라에 사례가 거의 없고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가 없었다.

그래서 원무과에 선납을 해야 검사, 투약, 치료 수혈이 가능했다.


두사람의 1년치 급여를 몽땅 틀어 넣어도 한참 모자란다.

공무원 의료보험 꼬밖꼬박 두사람이 넣은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보험적용대상이 아니었다. 입원실비, 식대 ,수액 뭐 그정도였다. 그것도 100%가 아니었다.

거의 본인부담금이다.

그녀는 그렇게 힘겹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게

잔인하고 인정머리 라고는 없는 말의 비수를 꼽았다.

그때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다.

그이후도  그녀의 만행은 쭉이어졌다.

기가 막히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전허 그러지않았다.

뛰어난 연기자였다.  다른 가족이 있을 때는 무척 선하다.


너무 늦어 지금 혼자서 욕하고 있다. 그녀는 비수를

수도 없이 꽂았지만 나는 지금 혼자 구시렁거린다.

<그돈 받으려고 아이두고 나가나>

#비수 #급여 #잔인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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