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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n 05. 2024

 아낌없이 준 나무

나무의 일생, 희생, 에세이

나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준다

마을 입구에 큰 나무가 있었다. 

이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처럼 마을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마을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원래 있던데,

내가 시집올 때부터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그 자리에 있어서 

그냥 원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 나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있었단다. 처음부터,

쉼터

그 나무는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더운 바람을 식혀 시원한 바람으로 만들어 주어서 

여름 되면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이 모여 앉아 쉰다.

가끔 동네를 지나는 사람도 잠깐 앉아 쉬며 땀을 식히고 간다. 

나그네의 쉼터도 되었다

그런 고마운 나무인데 아무도 모른다.


나무그늘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 

학교에 다녀오다 나무 아래 앉아 학교에서 있었던 온갖 이야기들 

누가 누구와 싸웠다, 시험을 어떻게 쳤다.

윗동네 순이와 아랫동네 영철이가 그렇고 그렇다더라 

얼레리 꼴레리 하며 웃고 떠든다.


어느 날은 한 녀석이 울고 온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다. 아랫동네 영철이에게 맞았단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이 묻는다, 왜 맞았니 하고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이 냅다 일러바친다.

윗동네 순이와 아랫동네 영철이가 사귄다고 놀렸단다. 

그래서 순이는 울고, 영철이가 화가 나서 때렸단다

어르신들이 모두 한바탕 웃으신다. 

어린 녀석들이 웃기지도 않는다 생각하셨는지 한 말씀하신다.


그럼 안된다고 하신다. 

네가 순이와 사귀는데 놀리면 , 너는 화나지 않겠냐 하신다. 

화 안 내면 바보지, 남자도 아니지.

이 말에 울음을 뚝 그친다. 이 녀석 남자가 되고 싶은가 보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울고 하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다.


나무 아래는 사람들이 먹고 흘린 음식 부스러기, 아이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가 항상 있었다.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집으로 가져가느라고 

개미들은 늙은 나무 아래에 개미굴을 파 놓았다.

처음은 조그마하던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개미들은 더욱 깊이, 

굴을 만들고 미로처럼 파 들어갔다.

그리고 나무 위로도 올라갔다.

나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점점 더 깊이 더 많이


여름밤은 짧았다. 혼자 남은 나무는 

나무 아래 웃음 가득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혼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혼자서 즐거워하였다.

자신이 오늘도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며, 

뜨거운 태양을 피하도록 그늘도 만들어 주었고

어르신과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그늘과 시원한 바람과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그렇게 기분 좋게 여름밤이 지나는데 나무는 발이 가렵다.

몸도 가렵기 시작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려워서


어느 해 여름, 날이 너무 가물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나무는 목이 말랐다.

아무도 나무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 너무 목말랐다.

땅은 포장이 되어 숨 쉴 틈도 없었고 차들이 다니며 연기를 뿜어내었다

나무는 밤에 잠 못 자고, 너무 뜨겁고 목도 말랐다. 

나무는 점점 말라갔다.

잎도 무성하지 못하여 그늘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더 이상 쉬러 오시지 않았다. 

아이들도 더 이상 와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왁자지껄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는 없었다.

나무는 아이들 소리도 듣고 싶고 윗동네 아랫동네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어르신 들은 생(生)을 떠나시고 아이들은 자라 도시로 갔다

나무는 마른 몸, 마른 가지로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몸은 끊임없이 가렵다. 

내 몸속으로 계속 파고 들어왔다.  개미들이,

나무는 슬프고, 잎 무성했던 시절이 그리웠다. 


차가운 바람과 눈 내리는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나무는 잎은 떨어지고 몸은 썩고 

더 이상 새 잎을 내지도 못하였다.

어느 날 시 녹지과에서 왔다며 한 사람이 나무를 살폈다.

더 이상 회생은 될 수 없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동네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말도 없었다. 

그냥 구경하러 나왔다

시청에서 온 남자는 큰 전기톱을 가지고 나무를 썰었다.

나무는 힘없이 쓰러졌다

이미 개미들이 나무를 갉아먹어 나무는 속이 비어 있었다.

오랜 세월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는 나무는 그렇게 오래도록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


쓰러지는 나무의 귀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르신들의 이야기,

윗동네 아랫동네의 이야기들이 들렸다.

꿈같이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나무는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떠났다

#희생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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