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의 인생 벼랑 끝에서 연주
나의 이야기보따리는 한 여자가 일생을 통하여 걸어온 길과 힘든 경험, 즐거웠던 삶,
행복한 기억, 상상력의 산물인 이야기들을 노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잊기 위하여, 죽기 전에 내려놓기 위하여 기록한다.
나는 떠날 때 아주 가벼운 걸음으로 가려고 한다. 즐겁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한(恨)스런 기억과 고통의 시간들은 주신 분께 보내고, 나는 내려놓으려고 한다.
원래 한(恨)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보따리에 들어 있는 한 여자의 삶과 인생, 생각, 가족에 대한 사랑, 희생, 그리움 등
살아온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백혈병에 걸린 아이를 살리기 위한 투, 간병기이다
이 첫 산이 너무 험준했다. 이 터널은 너무 길고 긴 암흑이었다.
나는 결혼 5년이 되기 전에 우리는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엄청 빠른 자기 집 장만이다.
맞벌이 부부이니 가능하였다.
동시에 둘째 아이가 병명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의 사투를 벌였고
가족이 함께 아이를 살리려고 온 힘과 마음으로 노력하여 죽음과 같은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때의 삶은 우리를 절망의 끝, 벼랑 끝으로 내몰렸었다.
첫 번째 우리 가족 앞에 놓인 산, 그산은 넘기에 너무 험준했다.
뼈와, 살과 영혼과 가족의 삶, 눈물, 경제적인 모든 것을 거대한 맷돌속에서 갈렸다.
아이가 병에 걸리고 병원에 입원생활하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니 본인부담으로
두 사람의 1년 급여의 반년 치를 1달의 병원비로 납부하였다.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게 살았다. 정신없이 아이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살았다.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에게 시댁은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로 돌아왔다. 한마디로 죽도록 두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불임시술로 무언의 항거을 하였다.
그것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였다. 친정어머니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친정어머니는 본인명의 땅을 팔아 병원비에 보태었다.
수혈을 위하여 수 없이 내 혈액을 채혈하여 아이에게 수혈하며 치료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계속해서 벼랑 끝으로 내 몰린 것이다.
나는 외딸이다. 의논하고 마음을 나눌사람은 친정 어머지 밖에 없었다.
그렇게 4년여 동안의 병원생활과 10여 년의 가슴 아프고 절박한 모든 과정을 겪으며
나는 아이를 살리고 터널 밖으로, 벼랑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게 나의 아픈 삶을 연주했다
이 이야기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한가족의 아니 나의 자식을 살리기, 살아남기 이야기다.
아름다운 나의 인생 벼랑 끝에서 나의 삶을 노래하고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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