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과의사 닥터오 Feb 07. 2022

환자를 위한 페이스메이커

대장암, 간전이, 항암치료 

똑. 똑. 똑


"과장님.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셨는데, 상처 관리랑 수술한 부위 봉합실 뽑는 거 때문에 오셨어요.

진료 봐 줄실 거죠??"


아침 출근하여 외래환자 진료하고 있는데, 담당 간호사가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보통 외과의사들은 자기가 수술한 환자의 진료와 외래 관리를 하기 때문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고 상처에 문제가 생기거나 수술했던 부위에 이상이 생겨 찾아오는 경우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술하는 병원과 외과 선생님들마다 수술하는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고, 다른 환자의 병변과 배안 상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술 후 환자의 회복이 더디거나 이상이 있으면 적절히 대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수술했던 병원이나 수술했던 외과의사 선생님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 오신 환자였기 때문에 환자 정보와 기록을 살펴보니 익숙한 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고, 수술받으신지도 2주밖에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하셨네요.

어떤 교수님한테 수술받으셨어요??"


"OOO 교수님이요."


"대기 환자도 많고, 예약환자도 많아서 수술받기 힘드셨을 텐데 그래도 빨리 수술받으셨네요."


"제가 그 교수님한테 15년 전 왼쪽 대장에 암이 생겨서 수술받았었거든요.

그때는 초기 대장암이여서 복강경으로 수술받았는데, 이번에는 크게 개복수술했어요.

계속 병원 잘 다녔어야 했는데, 미련하게 그때 초기라고 해서 관리 못한 게 후회가 돼요."


최근 우측 대장암 수술받기 전에 저희 병원 내과에서 CT 촬영한 것이 있기에 확인해 보니..


우측 대장암과 함께 간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장암과 간전이가 되어있을 때는 간전이의 개수가 적을 경우 대장암 수술과 함께 간전이 수술도 가능하지만 개수가 많을 경우 항암치료를 먼저 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장암의 크기가 커서 장폐색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먼저 대장암 수술을 하고 환자가 충분히 회복한 후 간전이에 대한 항암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상처 소독을 하고 상담하다 보니 자연스레 환자의 걱정과 암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산병원에서는 항암치료로 암을 줄인 다음에 수술하자고 하는데, 간전이가 많이 되었나요??

미련하게 병원 안간게 후회돼요.

항암치료 많이 힘든가요??

혹시 남의 간 이식하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니죠??"


상담을 하면서 의사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환자는 걱정과 두려움, 후회라는 감정 때문에 좋아질 거라는 '희망'은 찾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옆에 있는 제가 보기에도 어두운 표정과 함께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암은 1기, 2기, 3기, 4기 이렇게 병기(stage)를 나눕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서 환자의 생존율이 달라지고 항암치료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데. 3기, 4기로 갈수록 생존율이 떨어지는 것은 여러 연구와 논문의 데이터를 통해서도 이미 알려져 있는 정보들입니다.


이런 객관적인 숫자와 지표들은 말을 합니다.


"당신은 암이 몇 기, 몇 기이니, 생존율이 얼마, 얼마입니다."


의학과 과학은 때로는 너무나 냉혹하고 잔혹해서 믿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미신을 믿고, 신을 믿고 기적을 믿고 싶습니다.


대장암과 간전이..


제 머리는 암에 대한 정보와 그동안의 의학지식을 동원하여 환자의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뽑아내고 차디차고 냉혈한 답변을 하려 했지만..


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지실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암 수술 가장 잘하는 병원에서 수술도 받으셨는데요.

이렇게 건강하신 거 보니 항암치료도 충분히 잘 견디실거예요.

만약 체력 떨어지거나 힘드시면 저한테 오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 테니깐.."


암이든, 어떤 병이든..

치료받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누구나 함께 해주면 힘이 납니다.

달리기를 하는 선수들이 훈련할 때 같이 뛰어주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페이스메니커(pacemaker)라고 하죠.


이 사람들은 선수가 일정한 속도를 만들고, 지치지 않고 기록을 경신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마 누군가와 함께 달리기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뛰는 것이 덜 힘들고 심적으로 의지가 된다는 것을 느껴보셨을 겁니다.


의사와 환자도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외로운 싸움을 하는 환자에게 함께 뛰어주고, 도와주고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것은 그들이 병마와 싸우는 데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수술하면 많이 아픈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