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많으면 정신없이 바쁩니다.
큰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면 미리 수술 준비를 해야 하고, 검사했던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혹시나 내가 빼먹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여러 차례 생각을 되뇌이곤합니다.
아무리 자주 하는 수술이고, 익숙한 수술이라고 하더라도 수술 전 머릿속에서 수술 과정을 여러 차례 돌려봅니다. A라는 수술법으로 하다가 안된다면 B라는 수술법으로. 이것도 안된다면 C라는 수술법으로.
큰 수술일수록, 흔하지 않은 수술일수록 수술하는 외과의사의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보통 환자가 나이가 많으면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 여러 가지 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 전 다른 질병과 관련된 해당과와 상의(협진)를 하고, 필요한 경우 수술 전에 시술이나 정밀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초음파, 폐기능 검사 같은 검사를 미리미리 하게 되고, 수술 날짜에 맞춰서 환자를 좋은 컨디션에서 수술할 수 있게끔 준비합니다.
최근 진료 중에 아주 반가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오전 진료실에서 외래 환자를 보고 있었는데, 예약되어 있지 않은 낯익은 환자 이름이 진료 예약자 명단에 올라왔습니다.
담당 간호사가 진료실에 들어와서는
"OOO 환자 기억나세요??"
"2019년 겨울에 수술하신 분인데요."
"어.. 그래??"
"진료 기록 좀 보자."
"2019년 12월에 수술하셨네."
"수술하고 나서 특별한 게 없어서 치료 종료되신 분인데.."
"근데, 왜 오셨데??"
"어디 불편하신 게 있나??"
"아니요. 특별히 불편하신 것은 없다고 하셨는데, 꼭 뵙고 싶다고 하세요."
"음.. 그래?? 들어오시라고 해."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는데, 얼굴을 보니 어떤 환자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입원하셨을 때도 참 눈물이 많으셨던 환자였습니다.
60대 초의 여자분이셨는데
다른 병원에서 심한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으셨지만 너무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1차적으로 충수만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증상이 호전이 안되면 대장절제술까지 하기로 계획한 환자였습니다.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증상이 좋아지기를 기대했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대장절제술이라는 2차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복강경 수술과 대장 절제술이라는 큰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 저희 병원으로 옮기셔서 입원하셨습니다.
환자 상태와 복부 CT를 촬영 후 확인해보니, 항생제를 쓰면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현재 환자 상태와 수술 방법,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서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하였는데 이때도 참 눈물을 많이 보이셨고, 걱정이 가득했던 얼굴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수술 전 검사에서 확인했듯이 배 안쪽의 충수절제술(맹장수술) 했던 자리는 심한 염증과 농양으로 수술하기 아주 힘든 상태였습니다. 실제 수술할 당시에도 2번째 수술이라 유착과 심한 염증 때문에 수술이 상당히 어려웠지만 그래도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습니다.
복강경 우측 결장절제술(Rt.hemicolectomy)을 시행했고, 수술 후 회복하면서 시행한 여러 가지 검사에서도 수술한 상처부위가 잘 아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 환자 수술한 것이 12월 말이었기 때문에 1월 중순쯤 퇴원하셨습니다. 퇴원하실 무렵, 이미 오래전 계획되어 있던 휴가 때문에 건강은 충분히 회복되셔서 휴가 전에 퇴원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있다가 제가 휴가 돌아오면 얼굴 보고 퇴원하신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이번에 오랜만에 외래에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평소에도 몇 번을 오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왔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미안해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신데 지병이 있으셔서 저희 병원 내과에 입원하셨고 간병을 하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간병하시는 분이 오셔서 오늘 집으로 간다고 하시면서
"몇 번을 오고 싶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저 살려주시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요즘은 모든 것이 다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남편이 내년이면 정년인데, 회사에서 3년 정도 더 일해달라고 했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자식들과 이런저런 수다 떠는 것도 너무 행복해요."
"일상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것인지 선생님 덕분에 깨닫게 됐어요."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또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감사하다"라는 말을 입원 치료할 때도 많이 하셨는데, 그때도 어찌나.
소녀, 소녀 한 모습이셨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참 여리시고, 눈물이 많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는 암환자와 같이 주기적으로 검사와 관리를 해야 하는 환자들 이외에는 치료가 종료되면 안 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이 환자도 수술 후 잘 회복하시고 특별한 문제가 없기에 안 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이번에 이환자가 하시는 말씀이
"일부로 어디가 아팠으면 했어요."
"선생님 얼굴 보러 오게요."
"아이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병원은 자주 오는 곳이 아니에요."
"제가 바쁘신데, 시간 많이 뺏었죠?"
"이렇게라도 선생님 얼굴 좀 보려고요."
"선생님, 늘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환자들도 치료해 주고, 살려주고 하시죠."
"네. 감사합니다."
"환자분도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