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딸아이, 가족
저는 아침에 병원 출근할 때 딸아이와 함께 집을 나섭니다.
집 앞에 학교가 있어서 제가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병원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늘 함께 나옵니다.
아직 학교 다니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노는 것이 더 좋은 아이라 늘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고.
또 걸음걸이는 왜 이리 느린지, 세상 느린 느림보라 학교 정문으로 아이를 보내고 나면 저는 매번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런 딸아이는 늘 학교 앞에서 헤어지기 전 포옹을 해 주면서 물어보는 말이.
"아빠.. 오늘은 수술 몇 개 하고 올꺼야??"
처음에는 그날 그날의 수술 숫자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지 알고 그날 예정된 수술을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수술 개수가 궁금한 게 아니라, 오늘은 아빠가 몇 시에 퇴근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집에 빨리 오면 자기와 많이 놀아줄 수 있으니 아빠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죠.
몇 년 전 정말 바쁠 때는 집에 못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1주일에 한 번도 집에 못 가는 날이 반복되니, 한 달 중에 집에 가는 날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던 때도 있었거든요.
그때는 딸아이가 어려서 와이프의 손길이 더 필요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빠의 품이 필요했을 텐데, 같이 있을 시간이 정말 적었습니다.
딸아이가 올해 초등학교를 가면서 학교와 병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행히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등교하기 전 딸아이 아침을 제가 준비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수성찬, 팔 첩 반상의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란 후라이와 따뜻한 두유, 제가 먹을 간단한 아침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조촐히 준비해서 "부" "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매번 바쁘게 먹고 출근과 등교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제가 딸아이를 위해서 아침을 준비한다는 것이 나름 뿌듯합니다.
이런 딸아이는 아빠의 자리가 이제 익숙해졌는지 매일 학교 정문에서 헤어지기 전에
"오늘 수술 몇 개 하고 올꺼야??" 라고 질문을 하고.
다른 아빠들처럼 6시쯤 퇴근이 가능할 거 같으면.
"응, 오늘은 수술 4개 하고 올꺼야"
"그러면 늦지 않고 저녁 먹을 때 집에 올 수 있어."
"그래??.. 그러면 오늘도 늦지 말고, 일찍 집에 와."
안심이나 한 듯 아빠에게 포옹을 해주고 학교로 발길을 돌립니다.
외과의사에게 응급 수술은 그림자처럼 늘 붙어 다니는 친구 같습니다.
또한 그 친구는 언제, 어느 정도의 위급한 순간에 만날지? 또 어떤 수술을 해줘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런 친구입니다.
물론, 어느 병원이든 여러 명의 외과의사가 당직이라는 시스템 하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매일 당직을 하지는 않지만, 당직 날은 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50세 중반의 환자가 최근 1달 전부터 속쓰림과 명치 부위의 통증으로 주변의 병원에서 약 처방만 받으면서 지내다가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서 위내시경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위내시경에서 커다란 위궤양이 확인이 되었고, 출혈 위험성이 아주 많은 상태였기 때문에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여 저희 병원으로 왔습니다.
저희 병원 소화기내과로 입원하여 내시경 치료를 기다리면서도 많은 양의 피를 입으로 토하셨습니다.
실제 위내시경에서도 커다란 위궤양과 출혈하는 혈관이 확인되었고, 여러 가지 지혈술을 한 후 출혈이 조금 줄긴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재출혈이 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당직이었던 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많은 양의 출혈이 있었고, 커다란 위궤양과 재출혈의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보호자와 상의 후 수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내시경 하기 전부터 출혈이 많았기 때문에 수혈을 지속적으로 해야 했고, 수술 전에도 수혈할 피가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수혈하는 여러 종류의 피 중에 PRC(packed red cells)라고 하는 피가 있는데.
편하게 말하면 "수혈하는 빨간피"라고 하는 부르는 피가 있습니다.
PRC 1개는 300 ~ 400cc 정도의 양이 됩니다.
이때 빈혈 수치(Hb)가 1이 떨어지면 PRC 1개 정도의 피가 났다고 보기 때문에.
만약 14 → 10으로 4가 떨어졌다면 피만 1000cc 이상 아주 많은 양의 피가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술 전 마취과 선생님이 연락해오셨습니다.
"내시경 하면서 준비된 피가 수혈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PRC가 부족합니다."
"수혈할 PRC를 더 준비하거나 PRC가 충분히 확보된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제가 보호자와 좀 더 상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에게 현재 병원 내에 확보되어 있는 수혈할 수 있는 피(PRC)와 만약 다른 병원으로 이동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단점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드렸습니다.
만약에 다른 병원으로 이동한다면, 이동하는 시간과 이동 후 환자 파악, 수술 설명 등 수술 준비 위한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행히, 저희 병원에서도 3 ~ 4시간 후 수혈할 수 있는 피(PRC)가 준비될 수 있다고 하여 마취과 선생님과 상의 후 바로 수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는 빠른 수술을 위해서 수술 전 했던 영상 검사를 보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수술 시뮬레이션을 돌려봅니다.
실제 수술하는 환자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몸이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상황과 변수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방에 들어가서 환자 배에 메스(mes, surgical knife)를 댈 때까지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해 봅니다.
위험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수술이 더 오래 걸리긴 했지만..
환자의 생명을 위해 가장 중요했던 출혈 부위를 먼저 해결하고 수술을 진행했기 때문에 환자는 수술이 마무리될 때까지 특별한 문제없이 잘 회복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설명을 위해서 수술실 출입구 밖으로 보호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내와 딸이 초조하게 의자에 앉아있었고, 수술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걱정과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지 저를 향해 걸어오시는 두 분의 발걸음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컸던 위궤양과 함께 출혈이 되었던 위를 절제하고, 건강한 소장과 위를 연결하는 수술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렸습니다.
수술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1차적으로 급한 불은 끈 셈이고, 중환자실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좀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보호자의 말을 뒤로하고 저는 마음속으로..
"제가 더 감사하죠."
"수술하는 동안 별일 없이 잘 버티어주셔서."
이런 생각을 하며 진료실로 내려와 퇴근 준비했습니다.
가방을 메면서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짐을 챙겨 병원을 걸어 나오면서
딸아이가 어제 왜 늦게 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빠, 엄마가 많이 아파서 너랑 같이 못 있으면, 속상하고 슬프지??"
"가족이랑 같이 못 있으면 슬프잖아??"
"아빠 병원에 아픈 아저씨가 왔는데, 많이 아팠거든"
"그래서..
가족들이랑 오래오래 함께 있으라고 치료해 주느냐고 좀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