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미소, 어린아이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가 아픈 곳을 치료하고, 해결하는 곳입니다.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수술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곳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프고, 힘들면 병원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오히려 병원에 있는 것이 병을 키우는 상태라면 어떨까요??
몇 달 전 수술받고 퇴원한 중학교 3학년 여자 환자 이야기입니다.
환자는 급성 충수염으로 응급실 통해서 입원하였는데, 보통은 이렇게 여자아이가 복통 때문에 병원을 오게 되면 엄마 또는 아빠가 같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어쩐 이유인지..
할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이에게 언제부터 아팠고, 현재는 어디가 아프고, 다른 병은 없는지 등등..
여러 가지는 물어보았고, 아파하는 우측 아랫배를 촉진한 후 할아버지에게 검사 소견과 수술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수술 전 검사와 준비가 다 끝났으니 입원 수속하시면 바로 수술 진행하겠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수술 잘 좀 해달라고 하시면서.
이유까지는 말씀을 안 하셨지만.
현재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보통 수술한다고 하면 울고불고하면서 엄마, 아빠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무섭다며 울기도 할 나이인데도. 아이는 그런 내색 없이 할아버지와 외래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이 오히려 씩씩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배 속의 염증이 좀 심하긴 했지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계획했던 대로 수술이 잘 마무리가 되면 물부터 식사까지 먹는 것, 대변보는 것이 특별한 문제없이 잘 진행됩니다.
그런데..
아이는 어떤 이유인지
구토를 자주 하고, 잘 못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수술 후 사용하는 무통주사(PCA)나 항생제, 먹는 약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통주사를 줄이거나 멈추기도 하고.
아니면 항생제를 변경하거나 먹는 알약으로 바꾸어 보기도 합니다.
또한 수술 후 먹는 약 중에 이런 증상을 유발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 약을 뺀 후 몇 시간이 지나면 보통은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렇게 치료를 변경하여도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고민 고민하면서..
무엇 때문에 그럴까 생각하면서 수술했던 영상도 찾아보고, 검사했던 것들도 다시 차근차근 확인해 봤지만 그 원인이 될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할아버지가 외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 손에 크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서 좀 예민하다고 했습니다.
또 집에서도 편식이 심해서
먹는 것도 좋아하는 것만 먹기 때문에 병원 밥을 잘 못 먹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여기서 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습니다.
"할아버지..
수술했던 자리는 잘 아물고 있으니깐.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따로 사서 주세요.
아이스크림도 괜찮고, 과자도 괜찮고.
좋아하는 것은 다 먹어도 됩니다."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아이와 함께 병원 편의점에 가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젤리를 사서 잘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병원 밖에서 사 가지고 오셨는데.
침대 옆에 토한 흔적이 있어서 어떻게 된 거냐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옆 침대의 환자가 병실에서 대변을 봤더니, 그 냄새 때문에 구토를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병원에 있으니깐..
오히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수술도 잘 되었고, 주사 항생제 치료도 충분히 되었으니 퇴원하는 게 더 좋겠다..
퇴원 하루 전날
저녁은 먹고 싶은 김밥을 사서 먹었고, 다행히 구토 증상도 없었습니다.
퇴원하기로 한 날 아침
외래에서 아이를 보니 얼굴 표정이 어제보다 좋아 보였습니다.
복통도 좋아졌다고 하니..
퇴원하기로 해서 그런 건지..
정말 통증도 더 좋아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아이의 얼굴 표정이 아주 밝아 보였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병원 안에서 하는 치료보다 병원 밖에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어린 환자였습니다.
병원에는 아프고, 힘든 환자가 많다 보니
집과의 달라진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는 정말 큰 스트레스받았던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꼭 필요한 치료를 했다면 병원보다는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더 훌륭한 치료 결과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상처 소독을 하고 1주일 뒤에 외래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인사를 하던 중..
할아버지께서 흰 봉투를 주머니에서 꺼내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촌지, 돈 봉투 이런 것은 안되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하려던 찰나에..
자세히 보니..
돈 봉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얀 옛날 편지 봉투에 담긴 정성스러운 글귀였습니다.
미소
당신의 미소엔 힘이 있습니다.
미소는
돈이 들지 않지만 많은 것을 이루어 냅니다.
미소는
짧은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지속되기도 합니다.
미소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고
미소의 혜택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소는
가정에서 행복을 꽃피우게 하고
직장에서는 호의를 베풀며
친구 사이엔 우정의 징표가 됩니다.
미소는
지친 사람에게는 휴식이고
낙담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입니다.
세상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자연의 묘약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미소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지치고 힘든 이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글입니다.
병원이라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입니다. 저 또한 환자의 진료, 수술, 수많은 업무 때문에 놓치고 사는 것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만 보아도 그 사람의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상하게도 그런 상대방의 기분은 전염병처럼 나에게도 전달되기도 합니다.
웃고 있는 사진을 보거나 TV 속의 재미있는 예능을 보아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화를 내거나 울고 있는 사진보다는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미소는 짧은 순간에 일어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자연의 묘약인 셈입니다.
어떤 치료보다도 훌륭한 자연의 묘약인 "미소"에 대해서 알게 해 주신 할아버님께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진료하기 전 거울을 좀 보아야겠습니다.
저의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에게 "자연을 묘약"을 얼마나 잘 나눠드릴 수 있을지??
거울을 보며 "Cheese" 하며 미소를 지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