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유방암, 정성
90세가 넘으신 할머니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자식들은 돈을 벌어야 했기에 할머니를 간병할 수 없어 3년 전부터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수술하고 병동 회진을 도는데, 이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가슴에 너무 와닿아서 이렇게 글로 남겨 봅니다.
몇 달 전 좌측 유방과 겨드랑이 쪽으로 혹이 만져지고 피부에는 염증이 심하게 생겨 입원하게 되셨습니다.
통증이 있고, 불편하다고 하는 부분을 확인해보니 "유방암"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습니다.
병변을 좀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CT와 PET-CT(양전자 단층 촬영)를 촬영하였습니다.
PET-CT라고 하면 생소하게 느끼실 수 도 있는데, 이 검사는 암 환자분들이 암이 생겼던 부위 이외의 다른 곳에 전이가 있는지를 확인할 때 하는 검사입니다.
유방암이 너무 컸고,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로 심했기 때문에 다른 부위 전이를 염려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검사 결과에서는 다른 전이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 전에 보호자와 충분히 상의한 후 좌측 유방 전체를 제거할 정도로 큰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였고 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고령이라는 부분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환자도 잘 버티어 주셨고, 큰 문제없이 무사히 회복하셨습니다.
유방암이 크고, 암이 피부 밖으로 터져 나올 정도로 심했기 때문에 수술 후 상처는 굉장히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레싱(dressing, 소독) 하면서.
상처가 잘 아물까??
잘 붙을까??
잘 회복이 될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수술 후 초기에는 상처 색깔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점차 상처가 회복되면서 걱정스러웠던 부위도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수술하면서 상처가 크거나 염증이 심하다면 상처 부위 안쪽의 염증물이 밖으로 빠질 수 있도록 배액관을 설치하고 상처가 좋아지면서 배액 되는 염증물이 줄어들면 퇴원하기 전에 배액관을 제거하게 됩니다.
마지막 배액관을 제거하면서 드레싱 하기 전..
할머니께서
상처 부위를 유심히 보고 있는 저를 보고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오시면 선생님 눈만 봐요.
선생님 눈을 보면
상처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어요."
짧은 순간이지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뭔가가 가슴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대부분 건강하게 잘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모든 환자가 100%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환자는 잘 회복되다가도 결과가 나빠지는 상황으로 가기도 하고.
반대로 심한 병 때문에 수술하면서도 "잘 회복하실 수 있을까?"라고 했던 걱정과 불안감이 무색하리만큼 하루하루 건강해지시는 환자도 있습니다.
몸이 변화되는 것을 통해서 환자 자신도 병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외래 진료 시간이나 회진 시간에 만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서 생사를 오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병 자체의 성격과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의 '노력'이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환자의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데는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와 마음까지 헤아리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수술이 많고, 바쁘다 보면 무심코 놓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수술 하나를 마치고, 다음 수술을 준비하다 보면 저의 마음도 여유가 없다 보니..
다른 환자를 외래에서 만나거나 회진을 돌때면 때로는 조급함이 환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 눈만 봐요."
이 말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고, 여유 있고 인자한 모습으로 대하라.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드레싱(소독)을 하면서 마스크 때문에 저의 입모양을 보실 수는 없지만.
"수술 한 상처 아주 좋아요."
"암 수술 잘 버티셨고, 잘 회복하고 계세요."
"조만간 퇴원하실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씀드리면서 눈으로 환하게 웃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