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려줘서 고마워..

by 외과의사 닥터오

인연(因緣)이라고 하면 사전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여러 가지 삶의 변수나 사건의 결과로 맺어진 사람 혹은 사물과의 '관계'나 '연줄'의 의미로 쓰이고, 운명과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한 명의 환자를 같은 의사가 3번이나 수술했다면 '우연'이라기보다는 '운명'같은 인연이지 않을까요??


얼마 전 80세가 넘는 연세에 몸무게가 40kg도 채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는 환자를 수술한 적이 있습니다. 이 환자를 3번이나 수술했으니.

어찌 보면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겠죠.


환자는 2021년 1월 갑작스러운 복통과 장폐색이 있어 집 근처 병원으로 입원하셨는데, 외래로 보호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환자의 증상 및 현재 상태, 복부 검사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제가 수술했었으니.

저희 병원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렸고 다음날 바로 외래 통해서 입원하셨습니다.


외래에서 환자를 봤을 때는 전화상으로 전달받은 증상에 비해서는 컨디션과 환자 상태가 괜찮았습니다. 입원 후 항생제 쓰면서 경과를 보자고 말씀드리고 입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회진을 돌면서 아파하셨던 환자의 복부를 만져보니.

어제와 또 다르게. 통증이 더 심해지셨습니다.


금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복부 CT를 촬영하였고, 검사 상에서 장천공과 복강 내 공기(free air)가 확인되었습니다. CT 소견 상 우측 대장(결장)이 심하게 팽창되어 있었고, 대장으로 가는 혈류 공급 또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응급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우측 대장의 심한 팽창과 함께 대장 시작 부위에서 대장 천공이 확인되었고, 대변이 배 안쪽으로 누출되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대장이 팽창되어 있으면서 장천공이 발생한 경우는 보통 장의 어딘가가 심하게 막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장 전체를 좀 더 자세히 확인해보니. 왼쪽 대장(하행 결장, descending colon)에 암(Cancer)이 있었고, 그 암이 장을 꽉 막고 있어서 장폐색이 발생하여 장천공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수술은 암을 포함하여 이상이 있는 대장을 모두 제거해야 했기 때문에. 대장아전절제술(subtotal colectomy)이라고 하는 대장의 2/3 ~ 3/4 정도를 광범위하게 제거하는 대장절제술을 시행하였습니다.


환자의 나이가 많고, 심한 복강 내 염증(복막염)과 패혈증 때문에 남아있는 소장과 대장을 연결하지 않고 소장을 이용한 장루(회장루)를 만드는 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무리하게 남은 소장과 대장을 연결할 경우 연결한 부위가 터지거나 문합부 누출이 생긴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을 바로 연결하지 않고 환자의 회복을 위해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수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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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공 및 복막염으로 수술할 경우에는 장유착 때문에 회복과정에서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꼭 설명드립니다. 다행히 건강하게 잘 퇴원하시고 외래에서 보호자와 함께 상담을 하는데, 환자가 본인이 암 때문에 이렇게 큰 수술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집에서도 운동을 적극적으로 안 하시고, 활동도 아주 적으셨다면서 보호자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입원했을 때도 청력이 안 좋으셔서 항상 큰 소리로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좀 더 '큰소리'로 말씀드렸습니다.


"환자분.

수술 아주 잘 됐어요.

암 깨끗이 제거됐으니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제는 식사 잘하시고, 운동 많이 하시면 됩니다."


이전 입원할 때도 환자가 보호자 말은 안 들어도 제 말은 잘 듣는다고 환자에게 운동 많이 하시라고 얘기 좀 해달라고 하셨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후 한 번은..


수술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난 후 환자가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고, 장루로 잘 안 나온다고 하여 입원 치료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입원 후 금식과 운동 치료하고 증상이 좋아져서 퇴원했었는데..


최근 다시 같은 증상이 발생해서 입원한 후 콧줄과 금식, 수액 치료하면서 장폐색증이 좋아지기를 기다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증상이 좋아지는 것이 좀 더딘 것 같아 보였습니다.


보호자와 상담할 때도.

"만약에 저번처럼 좋아지지 않으면 수술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연세도 많으시고, 배 속의 유착 때문에 수술하게 되면 개복 수술해야 하는데, 큰 수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배 수술을 다시 하면, 장루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배 안쪽의 유착이 심하지 않으면 장루 연결술 할 수도 있지만.

만약, 배 안의 유착 때문에 소장이나 다른 장기 손상이 있어서 그 부분을 수술해야 한다면.

장루 복원술은 힘들 수도 있어요."


이렇게 수술하게 되면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보호자와 함께 미리 이야기한 상태였습니다.


입원 후 8일이 지난 아침.

회진하면서 환자 얼굴을 보니 어제보다 더 안 좋아 보였고, 복부 촉진에서도 통증을 좀 더 심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로 복부 CT를 촬영하였고 검사에서 유착과 폐색 부위가 확인되어 보호자와 상의 후 바로 응급수술을 들어갔습니다.


수술하면서 복강 안을 접근할 때 보니. 역시 유착은 아주 심했고, 소장을 누르고 있는 두꺼운 "띠"를 제거하고 보니 다행히 소장이나 다른 장기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환자의 현상태와 장루 복원술을 상의하기 위해서 수술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를 만나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착은 아주 심했습니다.

다행히 소장은 이상이 없어서 소장 절제 및 문합술은 안 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장루 연결술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근데.

어떤 수술도 항상 100%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연결 부위가 터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보호자는 잠시 생각한 후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는 연결해볼 만한 상황인가요??

네.

그럼. 해주세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고. 모두의 바람처럼.

장루 복원술도 잘 마무리됐습니다.


환자가 나이가 많고, 응급으로 큰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며칠 보기로 했습니다.


대부분 수술 직후와 수술 후 하루, 이틀은 환자분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수술이기에 몸에서 이겨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도 위험한 고비 잘 넘기시고, 일반 병실로 옮기시는 날. 아침 회진 온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 살려줘서 고마워.."


이 환자는 저에게 총 3번의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급성 담낭염으로 복강경 담낭절제술.

왼쪽 대장암(하행 결장암)에 의한 장폐색 및 장천공으로 결장아전절제술과 회장루 조성술

장유착으로 유착박리술과 장루 복원술


암 진단도 받고, 장루도 있었지만 80이 넘는 연세에도 힘든 수술을 3번이나 받고 잘 이겨내셨습니다.


청력이 안 좋으신 것도 있었지만, 항상 말씀이 별로 없으셨던 환자분이 처음으로 저런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니 수술했던 저로서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습니다.


외과의사로 사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맘 아플 때도 많습니다.

최선을 다한 수술일지라도 그 결말이 Happy ending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힘든 과정에서도 이렇게 좋아지는 환자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메스를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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