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은 안 할 뿐이야, 왜냐하면…
1. “우리가 어떤 걸 선택하고 싶은데, 좀처럼 결단이 서지 않는다면, 그것을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2. “운동을 하고 싶은데, 자꾸 운동을 미루고 좀처럼 시작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너무 늦기 전에 적절한 순간 운동을 시작할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3.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은 안 할 뿐이야,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라는 끊임없는 내면적 '면책'이 우리의 변화를 막고 합리화한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를 막는 것은 가능성이다.”
4. “그 '가능성의 희망'이 아마 죽을 때가지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면책적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오늘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운동을 할 수 없다면? 오늘 쓰지 않는다면 영원히 글을 쓸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면? 이 가능성의 절망을 믿을 수 있다면, 인간은 변한다.”
5. (이처럼) “오히려 변화와 결단에 필요한 건 면책이 아닌 순수한 죄책감일 수 있다. 필요한 건 ‘면책 없는 절망’이다. 나는 할 수 없어, 죽을 때까지 불가능할거야, 라는 절망 앞에서 '면책의 달콤함'은 사라진다.”
6. (여기서부터 나) 나를 소개할 때 ”돈으로 의지를 사는 스타일”이라 말하곤 하는데, 이 글에 빗대어 보면 나는 돈으로 ”가능성의 희망”을 차단해왔던 것 같다.
7. ‘운동?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은 안 할 뿐이야. 그런데 이게 웬걸? 연간 회원권 200만 원을 결제해버렸네?! 너 부자야? 아니면 가서 운동해’ 뭐 이런 흐름이었달까.
8. 그리고 바로 어제, 또 하나의 “가능성의 희망”을 차단했는데. 그동안 말만 했지 나도 모르게 ‘언젠가는 하겠지’하며 넋놓고 있던 철인 3종 대회 신청을 (당)해버렸다.
9. 신청 시간이 회의 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신청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철인을 더 미룰 가능성의 희망이었달까). 회의 후, 카톡방에 덩그러니 올라와있던 내 이름 박힌 신청서 사진.
10. 참가 신청에 필요한 내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등을 다 알고 있던 친구가 대신 신청을 해준 것. 그렇게 철인 3종 경기를 미룰 혹은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의 희망”이 25.02.26에 사라져버렸다.
11. 어제도 야근 후, 집에 오니 11시. 그 어느 때보다 운동이 가기 싫었으나… 가능성의 희망을 잃은 나는 꾸역꾸역 아침 수영을 가며 이 글을 쓴다 ㅎㅎㅎ.
(참고)
인스타그램(@jungjiwoowriter), "결단을 미루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