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말하자면... 불행한 가족사
제주의 그 집은 일본의 우리 집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멀리서 바라보면 제법 웅장한 양옥집이었다. 일본에서 부모님이 몸이 부서져라 일해 번 돈을 한국으로 송금해 미리 사두었다는 집. 겉으로 보기엔 번듯했고,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는 부잣집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
집은 넓었지만, 사람의 온기를 붙잡아 둘 가구 하나 없었다. 빈 공간은 거대한 동굴처럼 입을 벌리고 우리를 삼킬 듯 서 있었다. 벽은 차갑고 단단했고, 바닥은 발끝으로 냉기를 그대로 밀어 올렸다. 아무리 뛰어도 일본 집에서처럼 몸을 받아주던 다다미나 카펫은 없었다.
가구가 없으니 소리는 숨을 곳을 잃었다.
작은 외침 하나도 벽을 타고 돌아 집 전체를 울렸다. 그 메아리는 어린 우리에게 놀이가 되었다.
“아! 야호!”
언니들과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이 나 소리를 질렀다.
“야, 이제 우리 진짜 큰 집에서 산다! 일본 집보다 훨씬 넓어!”
언니의 들뜬 목소리가 거실을 몇 번이고 왕복했다.
그 소리 너머로, 부모님의 얼굴이 잠시 스쳤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안개처럼 가라앉은 수심이 이내 얼굴을 덮었다. 허울만 큰 집은 없는 것보다는 나았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삶을 버텨줄 가장 기본적인 것들조차 없었다.
부엌에는 냉장고도 없었고, 당장 허기를 달랠 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집은 넓었지만 풍요롭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빈곤의 크기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전시장 같았다. 메아리가 커질수록, 부모님의 어깨는 더 깊이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날 저녁, 엄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랫동네 고모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한참 뒤 돌아온 엄마의 품에는 고모할머니에게 빌려온 쌀 한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그 바가지는 그 집에서 가장 귀한 물건처럼 조심스레 안겨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부엌, 낯선 싱크대 앞에서 엄마는 쌀을 씻었다.
솨아솨아—
물소리가 텅 빈 집안에 고독하게 울렸다. 어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집 전체가 숨을 죽인 채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일본에서 들고 온 코끼리 밥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휑하던 집 안에 비로소 사람 사는 냄새가 아주 조금 스며들었다.
우리는 텅 빈 거실 한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모할머니 댁에서 얻어온 쌀로 지은 첫 밥을 기다렸다. 마룻바닥의 냉기는 여전했지만, 밥물이 밥통 입구에서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소리는 배고픈 내 배를 먼저 데워 주었다.
밥 냄새가 퍼지자 언니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 안의 냉기와 섞여 어딘가 허공에 매달린 소리처럼 흩어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타국에서 돌아온 이방인 가족이 고향 땅에서 맞이한 첫 식사였다.
가난했고, 어설펐지만, 살아야 했기에 치열했다. 텅 빈 집안을 가득 채우던 우리의 함성은 배고픔과 함께 서서히 잦아들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묵직한 밥 냄새와 말없이 오가는 부모님의 눈빛이었다.
낙원은 지도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이 휑한 양옥집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 집이 아무리 비어 있어도, 우리는 살아야 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도 우리만의 낙원이 될 거라는 믿음이, 비행기 안에서 떨어뜨린 빨간 사탕처럼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묵직하게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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